한국 팝 선도, '영원한 디바' 현미

[뉴스클레임]

"마음에 욕심이 없어야 좋은 목소리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가수는 목소리를 잘 보존해서 싱싱한 노래를 들려드리는 게 최선입니다. 앞으로 열심히 노력해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때까지 노래하겠습니다."

이 말은 가수 현미가 지난 2007년, '자신의 50주년 기념 콘서트' 기자회견에서 한 말입니다.

그로부터 15여 년이 지난 현재, 현미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가수 현미가 4일 오전 별세했습니다. 향년 85세.

특유의 허스키한 재즈풍 보컬로 1960년대 한국 가요계를 선도한 디바로 평가받는 현미는 지금까지도 큰 사랑을 받는 '영원한 디바'였습니다.

현미의 가수 생활은 지난 1957년, 그 당시 음악인들이 으레 그랬던 것처럼 미8군 무대를 통해 시작됐습니다.

처음부터 마이크를 잡은 건 아닙니다. 칼춤 무용수로 무대에 올랐던 현미는 일정을 펑크낸 어느 여가수의 대타로 우연히 마이크를 잡게 됐습니다.

가수 현미의 인생은 그때부터 시작됐습니다.

"밤안개가 가득히 쓸쓸한 밤거리

밤이 새도록 가득히 무심한 밤안개

임 생각에 그림자 찾아 헤매는 마음

밤이 새도록 하염없이 나는 간다."

최근 막을 내린 '미스터트롯2'에서 에녹, 춘길, 이승환이 부른 노래이기도 하죠.

가수 이름은 몰라도 '밤안개~가 가~득히 쓸~쓸한 밤~거리'라는 한 소절만 들으면 '아, 이 노래!'하며 무릎을 치게 될 정도로 '밤안개'는 오랜 시간 사랑받는 명곡 중 하나입니다.

현미의 발성이 얼마나 쩌렁쩌렁한지 '밤안개'를 녹음할 때 마이크에서 두세 걸음 떨어져 불렀다는 일화도 전해져 옵니다.

더 놀라운 건 이 노래가 실린 현미의 앨범은 당시로선 엄청난 숫자인 '5만장'이 판매됐습니다. "밤안개를 불러 눈뜨고 보니 인기 가수가 됐다. 이때부터 15년을 휩쓸었다"는 그의 인터뷰만 봐도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현미는 '밤안개'를 비롯해 '보고 싶은 얼굴', '애인', '두 사람', '몽땅 내 사랑', '왜 사느냐고 묻거던' 등을 잇달아 히트시키며 국민 가수 자리에 올랐습니다. 당대 최고의 가수로 손꼽혔던 이미자, 이금희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남편 이봉조의 제안으로 해외 무대에도 자주 올랐습니다. 그리스 국제가요제에 참여해 주요 부문을 수상했고,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의 취임 파티에 초청받아 기립박수를 끌어냈습니다.

사진=KTV 문화영화, 편집=강민기 기자
사진=KTV 문화영화, 편집=강민기 기자

그러나 그의 가수 생활은 1970년대부터 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고 노래 인생이 끝난 건 아니었습니다.

현미는 국내 최초로 '현미 노래교실'을 만들어 제2의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각종 토크쇼에 출연해 만담꾼으로 인기를 끌면서 '가수 현미'와는 또다른 모습을 보였습니다.

도전과 변화에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재즈, 팝 풍의 보컬로 한국가요, 팝을 불러 히트쳤다면 1990년대 이후부터는 성인가요 트롯장르로 전향했습니다.

한계 없는 역량을 자랑한 그는 1997년 제11회 예총예술문화대상, 1999년 제6회 대한민국연예예술상 특별공로상 등 다수 상을 휩쓸었습니다.

꾸준히 무대에 올라 마이크를 잡은 현미는 2007년에 데뷔 50주년 기념 앨범이자 53번째 음반 '마이 웨이'를 발표했습니다. 

같은 해 한국 가수로는 처음으로 50주년 기념 콘서트를 개최해 건재함을 알렸습니다. 당시 그는 "은퇴는 목소리가 안 나올 때까지 할 것이다. 멋지고 떳떳하게 사라지는 게 참 모습"이라며 음악을 향한 열정을 보였습니다. 

2017년에는 80세를 기념한 신곡 '내 걱정은 하지마'를 발표하며 노래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습니다. 

현미는 최근에도 방송에 출연해 재치 있는 입담을 과시했습니다. 지병도 없었고, 전날까지만 해도 지인과 저녁 식사를 할 정도로 건강했던 터라, 현미의 갑작스러운 비보에 가족들과 지인, 팬들은 충격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는 평생 유쾌하고 즐거운 모습으로 주변 사람을 웃고 울게 만들었습니다. '무던하게 살기', '되도록 많이 이해하기', '남 앞에서 울지 않기'라는 본인만의 세 가지 생활 철학을 평생 지켰다고 합니다.

이런 가수의 노래를 이제는 육성으로 직접 듣지 못하게 됐지만, 밤안개를 보게 된다면, 보고 싶은 얼굴을 보게 된다면 대중은 어쩌면 그를 떠올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목소리가 안 나올 때까지 활동하겠다고 말했지만, 이제는 TV와 라디오, CD, 테이프 속에서 노래를 부르게 될 그를 대중은 그리워할 것입니다. 

나이가 80이든 90이든 이가 확 빠져 늙을 때까지 '밤안개'를 부를 것이라고 말했던 그에게, 그의 노래를 듣고 울고 웃었던 한 사람으로서 인사를 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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