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암호수공원을 벗어나 오른 신선봉 바위 위에 신선정이라는 정자가 서 있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선암호수공원을 벗어나 오른 신선봉 바위 위에 신선정이라는 정자가 서 있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뉴스클레임]

해파랑길6코스는 동해선 덕하역에서 선암호수공원까지 3.9km, 선암호수공원에서 울산대공원까지 6.3km 울산대공원에서 고래전망대까지 3.6km 그리고 태화강전망대까지 1.8km로 안내하고 있다. 그날 15.6km의 산길을 한 번에 다 걷기는 어려웠다. 간밤에 잠을 설쳐서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정신이 몽롱했기 때문에 걸을 수 있는 곳까지만 걷고자 했다. 여행하면서 늘 좋은 날만 있는 것이 아니므로 이것도 추억이라 생각했다.

신선정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울산 중심부에 오직 아파트만 눈에 들어온다. 중심부를 흐르는 태화강마저 보이지 않는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신선정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울산 중심부에 오직 아파트만 눈에 들어온다. 중심부를 흐르는 태화강마저 보이지 않는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산길이라고는 하지만 처음 오른 함월산이 해발 138m, 선암호수공원을 지나 오른 신선산이 해발 79.7m이니 등산이라는 표현이 어색하다. 산의 높이는 낮지만 품고 있는 산길의 정취는 어느 유명한 산보다 못하지 않았다. 산들이 잘 가꾸어진 호수를 품고 있었고 호수를 벗어나 오른 산길의 숲과 경관은 수려했다. 외지 사람들에게는 거의 숨겨진 보물 같은 길이다.

솔마루길에 마련된 숲속 작은 도서관인데 이날은 날이 흐린데다 걷는 이도 많지 않아 책을 읽는 사람은 없었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솔마루길에 마련된 숲속 작은 도서관인데 이날은 날이 흐린데다 걷는 이도 많지 않아 책을 읽는 사람은 없었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호수공원을 지나고부터 산길에 솔마루길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첫 번째 솔마루길 위의 신선정에 서면 북쪽으로 울산광역시가 거의 다 보인다. 산의 높이는 낮지만 펼쳐놓고 있는 도시경관은 웅장했다. 1km 남짓한 숲길을 걷고 내려와 도로를 따라 몇 걸음 옮기면 숲으로 들어가며 솔마루길이 다시 시작된다.

산골짜기 사이를 통과하는 도로를 가로지르는 육교를 설치함으로써 솔마루길이 끊어지지 않고 10여 킬로미터 넘게 이어진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산골짜기 사이를 통과하는 도로를 가로지르는 육교를 설치함으로써 솔마루길이 끊어지지 않고 10여 킬로미터 넘게 이어진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태화강 남쪽에 작은 산줄기 서넛이 북서에서 남동 방향으로 뻗어 있는데 해파랑길6코스는 가장 북쪽의 산등성이 오솔길을 잇고 있다. 큰 도로는 대부분 이 산줄기 사이의 골짜기를 동서로 달리고 있다. 산줄기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도로 때문에 길이 끊어지는 곳이 있지만, 이 도로 위에 다리를 놓아 솔마루길을 연결해 10여km의 산길을 가꾸었다.

울산의 태화강 남쪽에 동서로 흐르는 얕은 산줄기의 능선에 가꾸어진 솔마루길엔 곳곳에 운동시설과 고래모양의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울산의 태화강 남쪽에 동서로 흐르는 얕은 산줄기의 능선에 가꾸어진 솔마루길엔 곳곳에 운동시설과 고래모양의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솔마루길에서 무엇인가 특별한 볼거리는 없다. 그저 산등성이 오솔길을 걸으며 점점 울창하게 변하는 소나무숲을 보고, 때로는 잡목이 무성한 숲을 마주하기도 한다. 길 곳곳에 고래 모양의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어서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걷는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색다른 경험을 안겨주기 위해 숲속의 작은 도서관도 만들고 크고 작은 골짜기와 길의 이름도 설명해주고 있다.

해파랑길6코스가 거의 끝나가는 마지막 봉우리에 서 있는 솔마루정자에서 보는 울산의 풍경은 도심와 숲이 어울려, 선암호수공원 근처의 신선봉에서 보는 풍경보다는 훨씬 아름답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해파랑길6코스가 거의 끝나가는 마지막 봉우리에 서 있는 솔마루정자에서 보는 울산의 풍경은 도심와 숲이 어울려, 선암호수공원 근처의 신선봉에서 보는 풍경보다는 훨씬 아름답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개가 엎드린 모양의 구북이골은 소똥비알의 북쪽에 있는데, 소똥비알은 소를 매어두던 비탈이고 거기에 소똥이 많아서 소똥비알길로 불렀다고 한다. 범이 살았다던 범무골 남쪽에는 범장굴도 있다. 조선시대에 풍수로 유명한 풍수가 성지대사가 머물며 울산의 지세를 파악했던 곳은 성지골이지만 이젠 울산 공원묘지가 되어 사라졌단다. 

솔마루길이 내려올 준비를 끝내고 마지막으로 보여주는 울산의 경치에 비로소 태화강의 물이 보인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솔마루길이 내려올 준비를 끝내고 마지막으로 보여주는 울산의 경치에 비로소 태화강의 물이 보인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태화강을 따라 동해까지 꽤 넓은 평야 지대에서 살던 사람들로서는 굳이 이 산을 넘어 다닐 일이 거의 없었겠지만, 그 시대에 비옥한 평야 지대에 남지 못하고 산에 기대어 살던 사람들에게 골짜기 이름은 중요했을 듯하다. 이제는 그 골짜기, 바위 그리고 길 이름을 부르며 살았던 사람들이 사라지고, 누구도 그 이름을 사용할 필요가 없어졌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흥미에 기대어 그 이름들이 아직은 살아 있다. 

태화강변으로 내려오기 전 마지막으로 솟아 있는 곳에 고래전망대가 있다. 고래를 볼 수 있는 곳은 아니지만, 울산의 동쪽 경관이 눈에 잘 들어오는 곳이다. 왼쪽에서 두 물줄기가 합쳐지고 작은 숲과 숲 사이의 도시와 저 멀리 북쪽의 산들이 잘 어울려 있다. 솔마루길에서 마지막으로 멋진 경치를 즐기고 나니 마음이 바빠진다. 태화강전망대가 발아래 있었다.

려말 이곡 선생의 시 은월봉이 태화강변 대숲 아래에 있었다. 이곡 선생의 아들이 목은 이색이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려말 이곡 선생의 시 은월봉이 태화강변 대숲 아래에 있었다. 이곡 선생의 아들이 목은 이색이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강변도로에 내려서자 길 건너 대숲 아래 둥근 돌비석이 보인다. 고려말의 이곡 선생이 지었다는 은월봉에 관한 한시가 새겨져 있다. 은월봉은 성지골 설명을 읽었으니 울산의 3대 명당으로 아직 기억에 남아 있는데 걷는 동안 지난 기억이 없었다. 해파랑길이 은월봉 입구에서 강변으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곡은 고려말 중소지주 출신의 신흥사대부였다. 당시 고려를 지배하고 있던 원나라에서 과거에 급제해 실력을 인정받았고 고려에 와서도 관직 생활은 순탄했다. 유학의 이념을 바탕으로 현실문제 해결에 노력했으니 그의 이상이 실현되지는 못했다. 그의 아들이 수많은 제자를 길러내어 조선의 건국과 그 이후의 세상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목은 이색이다.

글쓴이 오근식=1958년에 태어나 철도청 공무원, 인제대학교백병원 그리고 건국대학교병원에서 일했다. 2019년 2월 정년퇴직하고, 제주 올레, 고창과 통영의 길과 섬을 걸었다. 이후 해파랑길 750km를 걷기 여행을 마치고 현재는 1,470km의 남파랑길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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