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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부상과 난전은 지금의 노점상을 말한다. 

사극을 시청하다 보면 종종 '장터'가 등장한다. 왁자지껄 생기 넘치는 곳을 배경으로 등짐과 봇짐을 든 '보부상'과 '난전'을 볼 수 있다. 이들이 지금의 노점상인데, 오래전부터 자생적으로 상거래를 통해 생계를 유지하던 사람들이다. 보부상은 육체노동을 이용해 전국을 돌아다니며 상품을 공급했던 사람이다. 그리고 소작농을 겸하며 소비하고 남은 잉여물을 내다 팔아 생계를 유지하던 사람을 난전 상인이라 일컫는다. 이들과 관련하여 대표적인 정책으로 조선 22대 왕‘정조’시기 1791년 '신해통공'을 통해 '금난전권'을 폐지하게 된다. 이에 따라 조선 후기 보부상의 활동 반경은 커지게 되고, 부를 축적한 상인은 전국적인 유통망을 넓혀가며 '신흥세력'으로 부상했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계급구조가 파괴되어 가기 시작했다. 노점상은 저소득 상인의 생계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 1930년대는 약 11만3000명으로서 전체 상업인구의 23.8%나 차지한다. 이들은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각처의 문물을 유입하는 상업자본의 토대를 형성해 가기 시작한 것이다.

노점 거리가 형성됐던 장터는 경제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장소로 기능을 했다. 축제의 장이자 동시에 억울함과 분노를 토로하는 장이었고, 세간의 정보가 집중됐다. 대전의 유성 오일장은 1919년 기미년 3월 16일 대형 태극 깃발이 올려지고 만세운동이 전개된 곳이다. 마침내 전국적인 시위로 확산하고 독립운동이 시작됐다.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80년대는 '이촌향도'와 '경제적 호황'으로 노점상이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정부는 '거리환경정화'를 명분으로 경찰, 자율방범대를 동원하고, 특히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앞두고 '용역반'을 고용해 대대적으로 단속한다. 이 시기 노점상은 스스로 단체를 조직해 '민주화운동세력'과 연대해 저항했고, 사회적 여론도 '생존권 보장'을 옹호했다. 그러자 정부도 방편을 내오는데 합법적으로 '가로가판대' 설치를 추진하고, 전국적으로 '5일장과 풍물시장' 조성을 진행한다. 그 가운데 안산시민시장과 오일장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안산 유일 전통시장인 '시민시장'

경기도의 남서부에 있는 안산시는 바다가 인접해 있어 오래전부터 수산물과 소금으로 유명한 지역이었다. 1970년대 후반 서울의 인구문제 완화 및 구로공단 일부를 이전 하기 시작하며 본격적인 도시 계획 개발이 시작됐다.

1976년 12월 일대에 ‘반월신공업도시 건설계획’을 발표하였고, 1986년 1월 안산시로 승격됐다. 지금은 경제적 자립도가 큰 주요 공업 핵심 신도시로 성장했다. (위키백과 인용)

이밖에도 1980년대 들어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중앙역 일대와 단원구 원곡동 라성호텔 주변 등 곳곳에 상권이 번성했다. 이 주변에 자연스레 노점상이 조성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지만 뒤이어 단속 또한 이어지고 반복되다가 1997년 안산시청에 의해 실제 강제로 이주당하다시피 '시민시장'이 들어선다. 안산 단원구 초지동 공공부지에 형성된 시민시장은 대부분 이주단지가 그렇듯 형태도 없는 불모지에 차량 출입과 인적이 드문 부지였다. 장이 형성되고 시간이 흐른 후 명물로 부상하자 안산시는 재정을투입하고 관련 조례를 만들어 안산 유일 '전통재래시장' 이라며 홍보에 나섰다.

나물을 팔고 있는 안산 5일장 노점상. 사진=최인기 빈민운동가
나물을 팔고 있는 안산 5일장 노점상. 사진=최인기 빈민운동가

■오일장 노점상 유치 과정과 운영

안산시는 시장 개장 초기 활성화 목적으로 '전국 전통시장연합'에 제안하여 5일 장을 개장한다. 1998년도부터 3개 구간으로 오일장 노점상이 배치되면서 시민시장은 비로소 활기를 찾았다.

하지만 상인 한기남씨는 " ‘안산시 시민 시장 관리 운영 조례’ ‘제19조(오일장 운영) 시장은 시민시장 활성화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는 부지 안에 오일장을 운영할 수 있다’ 에 따라 오일장이 운영됐다. 그러나 운영 비용은 별도 조례에 명시되지 않았음에도 상인회가 오일장 노점상에게 청소, 관리비 명목으로 비용을 징수해 최초 월 200만 원에서 2001년에 400만 원으로 늘어나고 2005년 800만 원으로 인상해 징수했다”고 말한다.

한 씨는 관리비 지출명세가 제대로 처리 되지 않고 일부는 목적과 다르게 사용됐음에도 안산시는 묵인해 왔고, 부당이득을 방조했다고 덧붙였다.

시민시장 상인과 오일장 노점상 간의 갈등이 매우 심각했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무엇보다 타 지방자치단체처럼 오랜 전통을 가진 시장을 지원하는 과정이 아니라, 처음부터 ‘도시 정비’ 목적으로 노점상 이주단지로 출발한 시민시장은 관중심의 탁상행정으로 운영됐다. 세월이 흐르자 여러 차례 시설을 보완해야만 했고, 3평도 안 되는 점포 공간과 온갖 규제가 뒤따랐으며, 다양하지 못한 물품 배치로 소비자의 외면을 피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조례 개정을 반복하며 원칙 없는 운영이 됐다. 현재까지 약 200억 넘게 투입하고도 시장은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19년 상반기 인근 아파트 입주와 함께 전체 350명가량의 노점상과 오일장 상인들을 대상으로 단속과 정비를 시작했다. 급기야 2020년 1월 코로나 방역을 이유로 전체 오일장 상인에게 휴장을 요구하더니 같은 해 4월 조례를 개정해 5 일장을 폐쇄하기에 이른다.

이미 안산은 ‘마트’를 비롯해 ‘거대 유통자본’이 차곡차곡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과거 불모지나 다름없던 시민시장 인근은 지금 빼곡히 고층 아파트가 병풍처럼 들어서, 선거 때마다 철거가 공약으로 오르내리고 시청은 인근 아파트 주민을 의식해 지원을 삭감했다.

5일장 상인들은 코로나 방역이 풀리자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장사를 시작했지만, 폐쇄 직전의 시장이 새로 활성화되는 것을 우려한 듯 안산시청은 용역반을 동원해 집중 단속을 자행했다.

용역반과 대치 중인 안산 5일장 노점상. 사진=최인기 빈민운동가
용역반과 대치 중인 안산 5일장 노점상. 사진=최인기 빈민운동가

■안산 화랑유원지로 집단 이주한 오일장 상인들. 

오일장 노점상은 결단을 내리게 된다. 시민시장 터전을 포기하고 새로운 곳으로 이전하게 되는데 그곳이 현재의 '화랑유원지' 주변이다. 

오일장 상인 이규호씨는 "오랜만에 5일 장이 들어서자 지나가던 어르신은 그동안 심심했는데 이제 좀 신명 나는 도시가 된 거 같다며 좋아한다. 하지만 전체 상인들은 1억 가까운 과태료 폭탄이 부과된 상태다. 게다가 지방선거가 있기 전에 우리보고 대책을 내놓으라 했지만, 선거가 끝난 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저희는 안산시민 6000여 명의 서명을 받아 어디든 좋으니 오일장이 설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다"고 말했다.

과태료 뿐만 아니라 화랑유원지에도 어김없이 용역반은 나타나 장사를 방해했다. 

지역주민과 어우러지는 안산 전통오일장은 진정 어려운가?

이 씨는 "안산 오일장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구상을 내오고 있다. 지역주민 특히 청년들이 참여하는 바자회, 프리마켓 등을 함께 진행한다면 좋겠다는 의견과 볼거리, 먹을거리, 즐길 거리의 3대 요소가 어우러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안산시청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는 오일장 노점상. 사진=최인기 빈민운동가
안산시청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는 오일장 노점상. 사진=최인기 빈민운동가

현재 장사하는 화랑유원지 옆 인도는 폭이 넓어 충분히 시장을 조성 하는 데 무리가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사업 제안서를 안산시에 제출했지만 돌아온 건 오일장을 허가할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지난 2022년 12월 30일 상인들은 시청 앞 농성에 돌입했다. 그리고 해를 넘겨 2023년을 맞이했다. 

상인들은 여전히 화랑유원지 주변 오일장에 장을 펼치고 있다. 뻥튀기는 소리와 함께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고소한 냄새는 바삐 걷는 이들의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한다. 

다시 옛날이야기로 돌아가 오래전  '정조'는 어려운 시절 '금난전권'을 폐지해 가난한 이들이 삶을 이어가도록 정책을 펼쳤다. 노점상은 자신의 생존권을 위해 ‘생계보호 특별법’을 내놓고 있지만 정치인들은 무관심이다. 

안산 화랑유원지 근처로 고층 아파트가 즐비한 채 찬 바람이 분다. 아직 따뜻한 봄이 오려면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

계절이 바뀌듯 이들의 생존권도 훈훈해지기를 기대해 본다.

*이글은 2022.10.28. 안산시청에 제출한 ‘안산 전통 오일장 조성을 위한 토론문과 제안서’ 자료를 인용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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