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 그의 확신
-CJ전직임원 이재현을 4차원적 천재'라고 한 이유
-지금의 K-컬쳐가 글로벌로 진화하기까지

CJ 이재현 회장. CJ그룹 제공
CJ 이재현 회장. CJ그룹 제공

[뉴스클레임]

"문화가 미래다." 1995, 35세 청년이 던진 이 한 마디가 세상을 바꿨다

20241120, 서울 중구 CJ인재원. 당시 나이 64세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계열사 CEO들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30년 전과 같은 절박함이 있었다.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할 마지막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절실하게 임해달라."

왜 하필 '마지막'일까? 손발이 굳어가는 유전병을 앓으며 휠체어에 의존해야 하는 몸으로, 그가 간절히 붙잡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그 답은 30년 전, 아무도 믿지 않았던 한 남자의 꿈에서 시작된다.

■1995,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 그의 확신

"이제는 문화야. 그게 우리의 미래야."

19953, 미국 로스앤젤레스행 비행기 안에서 이재현이 누나 이미경에게 한 말이다. 당시 35, 제일제당 상무였던 그는 회사 연매출의 20%에 달하는 3억 달러를 드림웍스라는 신생 영화사에 투자하려 했다.

주변 모든 사람이 미쳤다고 했다. 설탕 만드는 회사가 웬 영화냐는 반응이었다. 심지어 할아버지 이병철이 세운 삼성그룹과 갈라서며 홀로서기를 시작한 지 겨우 2. 생존도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그 거액을 문화에 쏟아 붓겠다니. 하지만 이재현에게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이 보였다.

그는 스티븐 스필버그를 만났을 때 정장 대신 청바지를 입고 갔다. 고급 레스토랑 대신 햄버거를 같이 먹었다. 반도체나 수출 이야기 대신 오직 '이야기의 힘'에 대해서만 몇 시간을 얘기했다.

"이 사람은 정말 문화를 이해한다." 스필버그가 나중에 한 말이다.

■4차원적 천재'라고 불리는 이유

전직 CJ 임원은 이재현을 이렇게 평가했다.

"회장님을 4차원적인 천재라고 말하고 싶다. 그분은 우리가 못 보는 걸 보시니까."

'4차원'의 실체는 무엇일까?

첫째, 시간을 뛰어넘는 직관이다. 1995년 당시 한국에는 멀티플렉스 극장이라는 개념조차 없었다. 하지만 이재현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러 가는 게 아니라 문화를 경험하러 갈 것"이라고 확신했다. 1998CGV강변11 개관 첫해 350만 관객이 몰렸을 때, 그제야 사람들은 그의 예견이 맞았다는 걸 깨달았다.

둘째, 역발상의 사고다. 외환위기가 터져 모든 기업이 문화사업에서 철수할 때, 그는 오히려 더 과감하게 투자했다. "지금이야말로 기회"라며 국내 최초 멀티플렉스 건설을 밀어붙였다. 남들이 위험하다고 할 때 기회를 보는 눈, 그것이 그만의 특별함이었다.

셋째, 본질을 꿰뚫는 통찰력이다. 그는 일찍이 "콘텐츠의 힘은 감정"이라고 봤다.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결국 이야기라는 믿음. 이것이 훗날 "기생충"의 오스카 4관왕으로 증명됐다.

■삼성가 장손이 선택한 다른 길

이재현의 특별함은 그의 출생에서부터 시작된다. 삼성 창업주 이병철의 장손. 하지만 그는 당연히 주어질 기득권을 거부했다.

"덕 본다는 얘기 싫어."

대학 졸업 후 삼성이 아닌 씨티은행에 취직한 이유다. 할아버지 이병철이 "나의 장손이 남의 회사에서 일하는 것이 말이 되냐"며 호통쳐도 굽히지 않았다. 2년 뒤에야 제일제당에 입사했지만, 그때도 평사원으로 시작했다.

누나 이미경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누나가 문화사업의 전면에 나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동안, 그는 '은둔의 경영자'로 뒤에서 큰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실제로는 모든 중요한 결정의 중심에 그가 있었다.

■25년간 적자를 감수한 진짜 이유

"기생충"이 오스카를 휩쓸기까지 CJ는 한국 영화에 25년간 적자를 감수하며 투자했다. 왜일까?

이재현에게는 남다른 철학이 있었다. "문화는 당장 돈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100년을 내다봐야 한다."

그는 문화를 단순한 사업이 아니라 '문명의 투자'로 봤다. 한국이 진정한 선진국이 되려면 경제력만으로는 안 된다. 세계가 존경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신념이었다.

실제로 그는 "기생충" 오스카 마케팅에만 100억원을 쏟아 부었다. 수익성만 따지면 말이 안 되는 투자였다. 하지만 그 결과는? 한국 영화 전체의 위상이 바뀌었다. 그의 '비합리적' 투자가 전체 산업의 '합리적' 발전을 이끈 것이다.

■아픈 몸으로 그린 마지막 설계도

샤르코-마리-투스 병. 이재현이 50대 초반부터 앓고 있는 유전병이다. 손발이 점점 굳어가 지금은 휠체어 없이는 이동이 어렵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 설계도는 오히려 더 선명해졌다. 2021년 발표한 'CPWS 전략'(Culture, Platform, Wellness, Sustainability)이 그것이다. 2025년까지 20조원을 투자하겠다는 이 계획에는 그만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특히 문화사업에 12조원, 전체의 60%를 배정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아픈 몸을 이끌고도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여전히 '문화'라는 뜻이다.

■'절실함'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이유

2024년 그가 "마지막 기회"라고 표현하며 "절실하게 임해달라"고 한 말에는 특별한 무게가 있다.

첫째, 물리적 한계다. 유전병으로 인해 그에게 남은 현역 시간이 많지 않다는 자각이다.

둘째, 시장의 변곡점이다. K-컬처 붐이 일시적 유행으로 끝날 수도, 영구적 문화 경쟁력으로 정착할 수도 있는 갈림길에 서 있다는 판단이다.

셋째, AI 시대의 도래다. 기술이 콘텐츠 제작까지 바꿔놓는 시대, 인간의 감성과 창의성이라는 K-컬처의 핵심 경쟁력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의 문제다.

■그가 정말로 꿈꾸는 미래

이재현의 진짜 꿈은 단순히 CJ를 글로벌 기업으로 만드는 게 아니다.

"한국이 문화 강국이 되는 것." 이것이 그의 궁극적 목표다.

그는 일찍이 '문화보국'을 꿈꿨다. 경제 발전으로 배를 채웠다면, 이제는 문화로 마음을 채워야 한다는 철학이다. K-pop, K-drama, K-food가 단순한 한류 상품이 아니라 세계인이 존경하는 문화 자산이 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래서 그에게 CJ의 성공보다 중요한 건 '한국 문화 전체의 성공'이다. 경쟁사가 잘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파이 자체를 키우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30년 후에도 남을 유산

이재현이 30년 전에 뿌린 씨앗들이 지금 열매를 맺고 있다.

CGV에서 영화를 보고, tvN 드라마에 열광하고, CJ제일제당 음식을 먹으며, KCON에서 K-pop을 즐기는 전 세계 사람들. 이들은 모르겠지만, 그 모든 경험의 설계자는 한 명이었다.

휠체어에 앉아 있지만 그의 시선은 여전히 30년 후를 바라보고 있다. 2050, 그때도 한국 문화가 세계를 감동시키고 있을까?

'마지막 기회'라고 말하는 그의 절박함은 바로 여기서 나온다. 자신이 시작한 일을 후배들이 완성해주기를, 한국이 진정한 문화 강국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30년 앞을 내다본 남자의 꿈이 현실이 되는 날까지, 그의 여정은 계속된다.

"문화가 미래다." 1995년 그가 한 말이 2025년 현실이 됐다. 그렇다면 지금 그가 그리는 2055년의 모습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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