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면 중단’과 ‘무기한 가동’ 사이의 길
멈추되, 무너뜨리지는 말 것

포스코이앤씨 DL이앤씨 DL건설은 전국 모든 현장의 공사를 무기한 중단했다. 건설업 폐업도 늘면서 건설업 위기가 심각한 상화에서, KDI는 가 올해 건설투자 증가율을 -8.1%로 하향 조정했다. 이재명 대통령을 향해 일부 언론과 지식인들은 서너명 살리려고 다죽일거냐는 엄포를 놓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산성’을 이유로 죽음의 일터를 돌리는 선택은 정당화될 수 없고, 동시에 ‘공사 전면 중단’이 장기화돼 경제·고용·세수를 연쇄 타격하는 것도 책임 있는 해법이 아니다.
해답은 멈춤과 전환의 사이, 즉 “무사고 생산성”을 강제하는 제도·가격·책임 구조로 즉시 갈아타는 데 있다.
우리는 아침마다 기도를 한다. 오늘 아무도 다치지 않기를.
수도권 한 현장 안전관리자 박철기(42 용인시)의 말이다.
그는 "멈추거나, 바꾸거나 두 길뿐이라는 현장의 결론은 분명하다"며"한 사람의 생명은 총량 효용으로 상쇄할 수 있는 변수가 아니다"라고 토로한다.
‘몇 명의 희생으로 수천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명제는 인간을 수단화하는 논리이자, 안전을 비용으로 오해한 계산법일 뿐이라는 거다.
반복되는 중대재해는 프로젝트 지연, 보험료·금융비용 급증, 소송·형사 리스크, 브랜드 훼손으로 이어져 사회적 총비용을 폭증시킨다. 안전은 비용 항목이 아니라 생산 함수의 핵심 투입요소라는 점을 경제학적으로도 다시 확인해야 한다는 게 산업안전학계의 중론이다.
안전값은 늘 먼저 깎인다.
지방 대형 현장 정원길(47, 순천) 작업반장의 직설이다. 낙찰하한제·저가 투찰 구조에서 안전비는 가장 먼저 줄어든다. ‘전면 중단’과 ‘무기한 가동’ 사이의 길은 여기서 시작된다.
정 반장은 "동일 공종·공법·중장비가 쓰이는 공정은 즉시 멈추고 위험성 평가, 설계·공법 재검토, 시공계획 변경 승인, 작업자 재교육을 거친 뒤 조건부 재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때 체크리스트로 끝내지 말고, 현장소장·안전관리자·원청 임원이 각자 법적 책임을 지는 합동 인증으로 서명하고, 허위·부실이면 형사·재정 제재가 즉시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는 게 법조·노무 전문가들의 일치된 권고다.
가격 구조를 고치지 않으면 현장은 제자리다. 위험 공종(타워크레인, 거푸집·폼, 고소작업, 해체·굴토 등)에 표준원가+안전비 최소치(직접공사비 고정 비율+공정별 가중치)를 법정 의무 반영하고, 하도급 단계에서도 분리 보전되는 ‘안전비 추적계좌’를 의무화해야 한다. “중단 기간 기성이 끊기면 바로 사람부터 잃는다. 대지급 장치와 표준계약이 있어야 안전 리셋이 가능하다.” 중견 하도급 대표의 호소다. 공사 중단 기간에도 기성·어음 만기를 지키게 하는 보증·대지급 장치를 가동하고, 안전 개선에 따른 공기·공사비 조정 절차를 표준화해 ‘안전하면 손해’라는 왜곡을 없애야 한다.
데이터·기술을 기본값으로 바꾸는 일도 미룰 수 없다.
근접경보·출입통제만 제대로 켜도 ‘끼임’ 반은 줄어든다.
16년차 장비기사 김선우(44ㆍ고양시)씨의 체감처럼, 출입·가동·근접 경보를 OT/IT로 통합하고, 추락·협착·끼임을 줄이는 센서·영상·지능형 차단을 기본 장비로 의무화하면 사망·중상 위험은 구조적으로 낮아진다.
김 씨는 "위험 작업은 디폴트로 로프액세스·MEWP·프리캐스트·모듈러로 전환해 현장 위험 자체를 낮추고, 기술 채택률을 인허가·평가·보증료와 연동해 ‘안전 투자=비용’이라는 인식을 ‘안전 투자=가격 이득’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융·보험의 가격 시그널이 바뀌어야 CFO의 의사결정이 바뀐다. “재해 빈도·심각도가 PF 금리·보증료에 붙는 순간, 이사회가 먼저 바뀐다.” 프로젝트 파이낸스 애널리스트의 말처럼, 중대재해 지표를 금리·보증료·보험료에 즉시 반영하면 안전 우수 현장은 비용이 내려가고 불량 현장은 올라가는 구조가 된다. 공공 발주도 최저가 중심을 버리고 안전성·품질성(결함률·중대재해율·하자비용)을 강하게 반영해 불량 이력 업체는 일정기간 입찰을 제한하는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멈추되, 무너뜨리지는 말아야 한다. 현장의 즉시 멈춤은 정당하지만, 업계 연쇄부도·대규모 실직은 또 다른 사회적 피해다. 안전 리셋 기간에는 공정 재설계·교육·설비 투입에 드는 직접비의 일부를 ‘성과 연동’으로 한시 지원하고, 하도급 결제의 안전판을 확실히 세워야 한다. 현장에서는 “멈추면 굶는다”는 말이 자주 나온다. 그러나 더 정확한 말은 “멈추면 고친다”이다. 오늘의 멈춤이 내일의 무사고 생산성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제도 설계가, 지금 필요한 결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