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렛츠런파크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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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마기수들이 연이어 자살했다. 철밥통 마사회의 조직 내 비리 때문이다. 기수들의 자살로 마사회는 투명 살림을 약속했지만, 생각보다 그 골은 깊었다. <뉴스클레임>은 그간 왜 경마기수들이 극단적 선택을 해야 했는지 총 10회의 시리즈 기획기사를 통해 집중 조명한다. <편집자말>

“미래가 없는 노동이다.” 100여명의 기수들이 말한 마사회의 실태다. 렛츠런파크 부산·경남 렛츠런파크에서는 2004년 개장 이래 총 7명의 기수와 말 관리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년에 한 명꼴로 죽음을 택한 것이다.

지난달 16일 마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비판하며 극단적 선택을 한 부산·경남 렛츠런파크(부산경남경마공원) 소속 기수 故 문중원 씨의 49재가 열렸다. 유족 측은 마사회 측에 재발 방지 대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장례를 치르고 있지 않다. 유족들은 고인이 유서에 언급한 마사회 불법 상황에 대한 진상규명과 부조리 행위 당사자 처벌, 적극적 제도 개선, 마사회의 공식적 사과, 유족 위로보상 등을 요구하고 있다. 설 전에 문씨의 장례를 치르고 싶다는 입장을 내보였지만 사측은 여전히 묵묵부답을 보였다.

경마산업 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환경과 부당한 임금 실태에 노출돼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1993년 7월 개인마주제로 전환한 후 마사회 말 관련 근로자의 지위는 변화됐다. 마주와 조교사가 위탁계약을 맺고 말 관리사는 조교사가 고용하게 됐다. 기수는 개인사업자 형태로서 조교사와 계약을 체결하는 형태로 자리 잡았다. 다만 제주와 부산경남경마공원의 마필관리사는 2017년 말 고용구조개선협의체 논의 끝에 조교사협회와 고용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마사회는 기수와 조교사의 면허를 교부하고, 마방을 임대하며 경마를 시행해 상금을 지급한다. 마주들은 조교사와 경주마 위탁계약을 체결한다. 조교사들은 마필관리사들을 고용하고, 기수와는 기승계약을 체결해 경주에 출전하도록 한다. 기수들은 조교사와 마찬가지로 시행체로부터 면허를 교부 받고 기승계약을 체결하는 등 조교사와 동등한 관계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마사회는 면허와 마방임대를 매개로 조교사와 기수, 마필관리사를 통제하고 있다. 조교사가 기수와 마필관리사를 통제하고 있어 기수들은 조교사와 기승계약이 없으면 말을 타지 못한다. 조교사들은 마필관리사와 고용계약을 맺고 이들을 지휘 명령하지만 마사회로부터 마방을 임대하지 못하면 일을 할 수 없다.

노동자들은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해 생계유지가 어려운 점도 호소했다. 개인사업자인 기수들은 수입에서 상해보험 등 여러 비용을 스스로 충당해야 한다. 그러나 상위권에 들어야만 소득이 높아지는 노동 형태로 인해 출전의 기회를 얻지 못한 기수들은 기승계약료와 기승료만으로 생활을 이어나가야 한다. 마필관리사는 기본급이 최저임금에 맞춰져 있으나 상금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생활이 어려운 경우가 많은 실정이다. 전 말 관리사였던 A씨는 “최저임금과 수당을 다 합쳐도 200만원이 되지 않는다. 하위 조에서는 생활이 불가능한 정도다”며 “기수의 기승 회수에도 격차가 커 기승을 한다고 해도 소득 격차가 크고 그 중에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기수들이 많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노동자들은 부당하고 불합리한 지시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고 입 모아 말한다. 지시를 거부하면 기승기회 박탈, 문제 말 배정 기수에게 책임전가, 명예훼손 등 불이익을 받기 때문이다. 문씨가 남긴 유서에도 ‘요즘에도 승군해서 조금 못 뛰면 레이팅을 낮춰서 하위군으로 떨어트린다고 작전 지시부터 아예 대충 타라고 한다. 하위군으로 떨어지면 부담 중량이 너무 많으니 중량이 떨어질 때까지 몇 번 더 바닥을 치거나 아예 감량기수를 태운다고 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마필 능력이 있지만 그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도록 하거나 말을 살살 타게 해서 승군을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출주율이 마방대부심사에 반영되기 때문에 다리가 안 좋은 말을 출전시키기도 한다.

물론 기승계약서에는 ‘부당한 지시를 거부할 의무가 있다’는 내용이 있다. 하지만 ‘정당한’이 무엇인지에 대한 규정도 없고 이에 따른 책임소재와 불이익 금지를 다루고 있지 않아 형식적 조항에 불과하다는 게 노동자들의 주장이다. 이들은 “지금의 권련관계는 조교사의 지시에 일방적으로 따라야 하고 그것은 곧 인격적인 모멸감으로 나타나기도 한다”며 “말 관리사와 기수들의 고용이 안정되고 조교사에 의해 삶이 휘둘리지 않으며 위상이 높아져야 한다. 그래야 부당한 지시도 사라지고 경마에서의 비리도 근절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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