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마기수들이 연이어 자살했다. 철밥통 마사회의 조직 내 비리 때문이다. 기수들의 자살로 마사회는 투명 살림을 약속했지만, 생각보다 그 골은 깊었다. <뉴스클레임>은 그간 왜 경마기수들이 극단적 선택을 해야 했는지 총 10회의 시리즈 기획기사를 통해 집중 조명한다. <편집자말>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제대로 된 역할을 하는 공공기관을 기대했지만 모든 것은 허상이었다. 지금도 알려지지 않은 곳에서 노동자들은 어둡고 위험한 노동 환경에 노출돼 있다. 마사회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죽음과 맞바꾼 마사회의 비리 폭로에도 책임을 회피 중인 마사회를 바라보고만 있다.
마필관리사와 기수들은 생계에 어려움을 느끼고 부당한 지시에 시달리며 노동 안전에 큰 위협을 받는다. 변화를 추구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만들었지만 노동자들은 결국 죽음을 택하게 된다. 모두 부산경남경마공원 소속이었던 7명의 마필관리사와 기수들도 무한경쟁과 승자독식 체제를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노동자들은 주요 문제점으로 △승자독식 구조 △일방적인 권력 구조 △변화 없는 현실 등을 꼽고 있다. 한국마사회는 1993년 개인마주제 전환과 함께 조교사와 기수, 마필관리사와의 고용관계를 해지하고 외부화했다. 그러나 직접 고용돼 있던 기수와 마필관리사들이 고용·소득의 불안정성을 제기하자 마사회는 마필관리사들의 경우 조교사협회를 만들어서 고용하는 형식을 택했다. 또한 순위상금의 일부를 분할해 기본급 형태로 마필관리사들과 기수들에게 지급하도록 했다. 서울경마공원의 기수와 말 관리사의 기본급이 월 300만원 이상인 이유다.
부산경남경마공원은 2004년 개장 당시부터 ‘선진경마’라는 무한경쟁체제를 도입하고자 했다. 마필관리사의 경우 서울경마장처럼 조교사협회 고용이 아닌 조교사 개인들이 고용하는 형태를 취했고 부가순위상금도 없앴다. 비경쟁성 상금을 줄이는 반면 경쟁성 상금을 확대했다. 그 결과 부산경마공원은 순위에서 밀려나면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생계유지가 어려워지는 구조가 됐다. 하지만 조교사에게 종속돼있고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상황이 조성되면서 마필관리사와 기수들은 부당한 지시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일방적인 권력 구조에서 변화를 만들지 못하는 상황도 지적했다. 마필관리사와 조교사와 갈등이 생길 경우 실직이 위험이 높아진다. 기수들도 막강한 조교사의 권한에 눌려 불이익을 받더라도 수용하며 넘어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반대 의견을 내면 기승 기회 자체가 박탈되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부당한 지시라는 것이 분명하지만 그것을 거절할 수 없는 상황을 겪고 나면 남는 것은 억울함과 분노뿐이다”라며 “개인의 능력으로 치부하는 분위기 때문에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기대하기엔 여러모로 어렵다”고 토로했다.
기수들은 경쟁구조와 권력 관계의 불균형에 대해서 심각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나마 서울경마공원은 문제가 발생해 기승을 못하게 되더라도 부가순위 상금에 의해 기본적인 생계는 보장받을 수 있다. 반면 부산경남경마공원은 생계 자체를 유지할 수 없어 강제적으로 조교사들에게 순응하게 된다. 전 기수였던 A씨는 “이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하위성적이 계속될 경우 면허 갱신도 문제가 돼 대응하기 더 어렵다”며 “기수가 경마의 꽃이라지만 사실상 경마장 일회용이다”며 “기수의 면허를 마음대로 쥐락펴락하는 마사회는 개선돼야 한다”고 밝혔다.
故 문중원 기수를 죽음에 이르게 만든 불합리한 구조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기수들은 노동조합을 통해 권리를 찾고자 했으나 ‘특수고용 노동자’라는 이유로 마사회가 교섭에 임하지 않고 있다. 조교사는 마사회가 정한 교육을 이수해야 면허를 딸 수 있고 마사회로부터 마사를 대부받아야만 가능하다. 하지만 마사대부 발탁을 좌우하는 정성평가 속 불공정과 비리가 발생해 일부 노동자들은 실패를 맛보게 된다. 문씨 역시 조교사 면허 취득이후 4년간 마사대부 심사에서 발탁되지 못했다.
현재 조교사 면허를 취득하고도 마사대부로 발탁되지 못한 인원은 총 17명으로 서울경마본부 소속 10명, 부산경마본부 7명이다. 이중 마필관리사가 10명, 기수가 7명이다. 이들은 “마사회와의 친분 여부가 마사대부 발탁을 결정한다”며 “노조를 통해서, 개인적인 노력으로 불합리한 구조를 변화시킬 수 없다는 점이 절망스럽다. 옥상옥 심사의 필요성과 공정성 문제가 계속적으로 제기되는 만큼 강력한 변화가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