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클레임]
2021년 4월 초에 통영에 와서 느릿느릿 걷다보니 어느새 6월을 맞았다. 통영 석 달 여행의 마지막 달이었다. 연대도와 만지도, 한산도 그리고 사량도를 걸었고, 욕지도, 연화도, 매물도, 소매물도 그리고 비진도가 남았다.

사량도의 험준한 능선을 걷고 6월 첫 섬여행지로 욕지도를 선택했다. 이재언의 ‘한국의 섬 (2021년)’에 따르면 욕지항 안에 있는 작은 섬이 마치 거북이가 목욕하는 모양이어서, 또는 많은 사람이 이곳에 유배와 욕된 삶을 살았기 때문에 욕지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설이 있다. 다른 하나는 불교 경전인 화엄경의 ‘생(生)을 알고자(欲智) 한다’는 구절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이 설명이 사람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듯하다.

욕지도 가는 배는 통영항여객선터미널과 미륵산 남쪽의 삼덕항과 중화항에서도 탈 수 있으니 배편은 꽤 많은 편이다. 삼덕항에서 욕지도까지는 55분 걸린다. 걷기가 방문 목적이 아니라면 배에 차를 싣고 가서 일주도로를 따라 명소로 알려진 곳을 두루 보고 와도 의미 있는 여행이 될 듯하다.

어차피 한 번 방문으로 욕지도의 이곳저곳을 다 걸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 삼덕항에서 아침 8시30분 출발하는 배를 탔다. 한산도와 사량도에 갔을 때처럼 욕지도에도 도착하니 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동쪽 끝 일출봉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다시 욕지항까지 걸어오기로 했다. 다음에 다시 와서 모노레일을 이용하든 걸어서 오르든 항구 뒤의 대기봉과 약과봉까지 걸어 욕지도 숲길 걷기를 마무리할 생각이었다.

일출봉 근처에서 내려 바라보니, 욕지도 항구 뒤 대기봉에서 동쪽으로 가늘고 길게 뻗은 땅 줄기가 남쪽 바다의 파도와 바람을 막고 있어 배가 드나드는 내항의 바다가 호수처럼 잔잔했다. 그 평온한 바다에 양식장을 알리는 부표가 빼곡히 들어서 있다.

일출봉 오르는 입구를 찾아 두리번거리는데, 작은 트럭을 몰고 지나가던 주민이 멈추더니 태워주겠다고 한다. 아직 코로나 기승을 부릴 때인데 외지 사람에게 대한 호의가 고마웠다.

입구에 풀이 웃자라 있었지만 길을 오르면서 보니 정기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흔적이 보였다. 등산모임에서 셀 수 없이 많은 리본을 한곳에 달아 놓았다. 일출봉은 해발 200m도 되지 않는 봉우리여서 땀 흘리지 않고 올라섰다. 동쪽으로 연화도와 멀리 매물도 등이 바다에 떠 있을 뿐이어서 해 뜨는 장면을 보기에는 그만인 곳이다. 다만 나무들이 높이 자라있어 시야를 가리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일출봉에서 잠시 머물다가 다음 봉우리인 망대봉으로 향했다. 표지판이 0.84km라고 알려준다. 바윗길을 벗어나면서 순식간에 울창한 숲으로 들어섰다. 제주의 곶자왈 못지않은 숲이다. 참식나무 등 제주에서 보았던 식물들이 자주 눈에 들어온다. 망대봉 역시 고만고만한 높이여서 숲길이지만 오르막과 내리막이 거의 없는 평지길이다

망대봉에서 다시 노적고개까지는 0.5km 남짓한 거리다. 딱 필요한 곳에 안내 표지판이 잘 정비되어 있다. 숲이 울창하고 깊어 벗어나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듯한데 순식간에 벗어나 도로에 들어섰다. 첫 번째 출렁다리까지 0.45km라고 적힌 안내 표지판이 보인다. 채 2km도 걷지 않았는데 어느새 두 시간이 지났다. 보고 즐길 거리가 많은 숲이었다.
6월의 햇볕이 제법 따가웠다. 바닷가의 출렁다리까지는 꽤 거리가 있어 잠시 망설이다가 걸어 내려갔다. 출렁다리야 그리 신기할 것 없었지만 다리 건너 너럭바위 위에 서니 욕지도 남쪽 해안이 좌우로 보인다. 오길 잘했다. 해안에 길게 보이는 띠는 파도와 바람을 막느라 생긴 생채기다. 흙은 다 깎여나가고 바위만 허옇게 드러나 있다. 그 생채기 덕에 반대편 해안은 풍요롭다. 내 삶의 풍요도 누군가의 희생 덕분이다.

출렁다리에서 돌아 나와 보니 해변길이 보였다. 내려오길 정말 잘했다. 뙤약볕 속에서 무미건조한 도로를 걸을 뻔했다. 길을 다듬고 바다 쪽에 행여 미끄러지지 않도록 줄을 쳐두었다. 길을 따라 숲속에서 몇 번이고 오르고 내리며 출렁다리 둘을 더 건너고 나서야 모노레일 하부 정거장 근처에 올라섰다.
글쓴이 오근식=1958년에 태어나 철도청 공무원, 인제대학교백병원 그리고 건국대학교병원에서 일했다. 2019년 2월 정년퇴직하고 걷는 여행 중이다. 퇴직 첫 해 제주에서 1년 동안 걸었고 다음엔 고창에서 석 달 걸었다. 그리고 세 번째 여행지가 통영이었다. 현재는 부산 오륙도 선착장에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750 킬로미터의 해파랑길을 걷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