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문을 연 '도심 속 어촌 마을'

2024년 '도심 속 어촌 마을' 상인들 모습. 사진=최인기 빈민운동가
2024년 '도심 속 어촌 마을' 상인들 모습. 사진=최인기 빈민운동가

[뉴스클레임]

“구)노량진수산시장은 이제 끝났다. 노량진 전철역 육교 위에서 농성 중이던 골칫거리 상인들이 몇 남고 보이지 않는다.”

이런 이야기가 들려올 즈음 소문을 무색하게 할 일이 벌어졌다. 윤헌주 공동지역장은 우리의 ‘투쟁’은 멈추지 않았다고 힘주어 말한다.

“수협중앙회는 47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습니다. 2016년부터 구)노량진수산시장 상인들이 시장 부지 주차장 무단 점용했다는 이유고, 철거 과정에서 용역시설 관리비를 상인들에게 전가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계속 덤덤히 다양한 방식으로 장기적인 투쟁을 이어가고자 ‘회 센터’를 차렸습니다.”

노량진역 7번 출구 바로 코앞에 3층짜리 건물을 새롭게 단장했다. 여의도가 인접해 있고 오래전부터 교통의 중심지에다가 근처엔 학원이 밀집해 있는 곳이다.

상호는 ‘도심 속 어촌 마을’. 달궈진 도심 속 무더위를 시켜 준다는 뜻인가 보다. 1호선도 그리 멀지 않아 단체 회식이나 모임으로 좋을 듯해 보였다. 홀 서빙은 상인들이 앞치마를 둘렀다. 다들 표정이 여유로워 보인다. 맞다! 이분들 본모습이다. 하루의 일을 마치고 돌아온 가족에게 맛난 음식을 만들어 주던 어머니의 모습.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강연화 부지역장은 정말 몇 년은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동안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들인데 힘들게 뭐가 있겠냐고 그런다. 한상범 공동지역장도 거든다.

벌금이 주는 압박감도 크지 만 일부 상인은 오랜 농성으로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고 생계에 어려움을 겪어 자구책으로 묘안을 짜낸 것이라 한다.

2024년 '도심 속 어촌 마을' 메뉴. 사진=최인기 빈민운동가
2024년 '도심 속 어촌 마을' 메뉴. 사진=최인기 빈민운동가

마침, 음식이 나왔다. 보기만 해도 푸짐하다. 그리고 정갈하다. 물 회는 시원하고 생선은 누가 봐도 싱싱해 보인다. ‘와사비’를 살짝 발라 ‘우럭’ 한 점 입에 넣으니 쫀득한 살점이 입안에서 감돈다. 코끝이 시큰 해지면서 울컥 가슴에서부터 뭔가가 치밀어 오른다. 10년을 싸웠던 사람들이다. 농성만 5년째. 용역의 폭력이 삶의 터전을 휩쓸었다. 법원조차 상인의 삶을 외면해 47억 벌금을 물어야 할 처지다. 세상은 이들에게 폭력을 자행했고, 노량진 육교 농성장으로 내몰았다. 쏴아~ 하고 퍼지는 한 잔의 소주가 입속을 또 흔들어 놓는다. 서민의 주머니 사정을 감안해 소주는 3000원 받는 것으로 결정했다고 너털웃음을 짓는 한상범 지역장의 얼굴 한구석에 삶에 밧줄을 놓지 않으려는 비장한 눈빛이 반짝인다. 광어회가 하도 두꺼워 일부러 나에게만 이렇게 썰어 주냐고 물으니 그럴 리가 있겠냐며 옆 테이블을 슬쩍 가리킨다. 어느덧 손님이 가득 들어찼다.

화제를 바꿔 현안에 관해 물었다. 윤헌주 공동지역장이 비교적 상세히 법리적인 문제를 따졌다. “노량진수산시장 도매시장은 서민 먹을거리를 직접 책임지는 곳입니다. 관이 직접 개설하게 되어 있습니다. 전국의 모든 지방 도매시장도 마찬가지입니다.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농안법)’에 따르면 시장 개설자는 수협중앙회가 아닌 서울시입니다. 종합적이고 총체적으로 관리하고 집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농안법 제21조(도매시장의 관리)와 제22조(도매시장의 운영 등)로 별도의 조항을 두어 도매시장의 관리 업무와 운영을 명확히 구별합니다. 이에 근거해 볼 때 서울시가 직접 운영하든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처럼 공공출자법인을 지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운영은 ‘적정 수의 도매시장 법인·시장도매인 또는 중도매인’을 두어 이를 운영해야 합니다.”

2018년 구)노량진수산시장 투쟁. 사진=최인기 빈민운동가 
2018년 구)노량진수산시장 투쟁. 사진=최인기 빈민운동가 

상인들의 주장은 한결같다. “저희는 끝없이 전개되는 탈법적이고 무법적인 수협중앙회에 분노할 따름입니다. 어떻게 노량진 수산물도매시장의 개설자인 서울시를 보조자로 전락시키고 스스로 시장의 주인행세를 하면서 현대화 사업을 주도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것도 고령의 상인들을 폭력적인 방법으로 내 쫓는 거죠? 지금도 몇 년 전 싸움을 떠올리면 잠자리에서 소스라치게 놀라 깨어납니다. 언젠가 한번은 생선을 파는 어시장에 수협에서 ‘단전’과 ‘단수’를 했습니다. 한마디로 죽으라는 거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시장 주변을 거대한 시멘트콘크리트로 에워싸 출입을 막았습니다.” 

소위 ‘신시장현대화사업’ 도 당연히 서울시가 주도하여 추진해야 할 사업인데, 국고보조금 1,540억 원을 정부가 수협에 직접 집행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이런 내용이 알려지면서 구 시장 부지에 대한 개발 수익을 모두 수협이 차지하게 만든 것이 아니냐며 의구심을 들게 했다. 문제가 발생하면 해결의 실마리도 생기는 법 2019년 4월 시민사회와 함께한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사업 평가와 대안 찾기’ 국회공청회에선 ‘동작역사문화연구소 소장 김학규씨‘는 공공도매시장의 역할을 되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시민의 먹을거리를 자본의 논리와 이윤을 쫓는 방법으로 가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최근 들어 노량진수산시장에서 판매하는 수산물의 가격이 높아지고 질이 저하 되는 실정이다. ‘공공의 기능’이 사라진 곳에 ‘이윤’을 쫓는 돈벌이에 혈안이 되면 가격이 올라 결국 불이익은 소비의 대상인 서울 시민이 그 짐을 지게 된다.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2019년 서울시의회 긴급토론회에서는 ‘협치 서울의 민낯을 말한다.’ 라는 주제로 여러 진보정당이 참석해 노량진수산시장현대화 사업이 절차에 협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음을 지적했다.  

2018년 구)노량진수산시장 모습. 사진=최인기 빈민운동가
2018년 구)노량진수산시장 모습. 사진=최인기 빈민운동가

“노량진수산시장이 상인들과 서울 시민들의 시장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농안법에 명시된 대로 서울시에서 공공 출자법인을 설립해 시장을 공공재로 거듭나게 해야 합니다. 더불어 구)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 사업으로 인해 시장에서 쫓겨 난 상인들은 2만5000 볼트 고압선 위 노량진역 육교 위에서 5년째 농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상인들은 장기간 농성으로 생계는 물론 건강마저 위태로운 상황입니다.”

반복되는 이야기지만 상인들은 한목소리로 이야기한다. 그동안 수도 한복판에서 벌어지고 있는 갈등을 서울시는 외면해 왔다. 늦었지만 시장 개설자로 갈등 해결에 나서야 할 것이라는 뜻이다. 대안은 제대로 된 ‘공공 출자법인’ 설립이 답이라고 한다. 그리고 서울 시민의 ‘도매시장’이 되고 상인들의 ‘생존권’이 보장돼야 한다. 법이 차별적으로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상인들은 늦은 밤 노량진 전철역 육교 위에서도 농성을 이어간다. 천막을 들추니 모기장을 치고 한상범 공동지역장이 막 잠자리에 들고 있다. 그 아래로는 덜컹거리며 기차가 지나간다. 진동으로 육교가 미세하게 흔들거린다. 모기도 극성이다. 한상범 씨에 따르면 2015년 9월 ‘노량진수산시장 생계대책위’가 결성되면서 현대화 사업을 둘러싼 갈등이 시작되자. 당시 만해도 수많은 정치인이 구노량진수산시장을 방문 해 상인들의 저항을 지지했다고 한다. 현대화 사업을 바로 잡겠다 공언했지만, 그 후 갈등이 길어지고 격화되자 하나둘씩 외면하고 돌아섰다. 

이제 상인들에게 상처는 오히려 마음의 굳은살이 되었다.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새롭게 전열을 다지고 있다. 한 잔의 술과 회를 곁들인 안주가 누군가의 시름을 덜어주고 의식 있는 술자리가 되길 원한다면 7호선 노량진 전철역 출구 바로 옆 ‘도심 속 어촌 마을’을 찾아주면 좋겠다. 그래서 상인들의 어깨에 힘을 실어 주면 더욱 좋겠다. 

2024년 도심 속 어촌 마을전경. 사진=최인기 빈민운동가
2024년 도심 속 어촌 마을전경. 사진=최인기 빈민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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