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지희 사무장을 찾아서

세종호텔 정리해고 철회 구호를 위치는 허지희 사무장. 사진=비주류사진관 전병철
세종호텔 정리해고 철회 구호를 위치는 허지희 사무장. 사진=비주류사진관 전병철

[뉴스클레임]

명동에서 퇴계로 방향으로 이동하다 보면 눈에 띄는 지상 15층 호텔이 있다. 세종호텔이다. 1966년 12월 개관했으니 꽤 오래되었다. 1973년에는 ‘특등급 관광호텔’로 승격되었고, 여러 차례 ‘관광호텔 종합 평가 최우수업체나 모범업체’와 1998년에는 노동부 선정 ‘노사협력 우량기업’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호텔이 서울 한복판에 자리를 잡고 있으니, 청계천을 비롯하여 덕수궁 경복궁 등 서울의 명소를 두루 둘러볼 수 있단다. 무엇보다 명동이 가까워 백화점과 쇼핑센터, 남산이 맞은편에 자리 잡고 있어 많은 외국인이 이용하는 편이다. 이상 세종호텔에서 운영하는 ‘홈페이지’에 게재된 내용이지만 이제는 객실만 영업하는 3성급이 되었고, 실제 호텔이 유명해진 것은 해고 노동자를 비롯해 워낙 오래된 투쟁 사업장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구체적으로 알아보기 위해 최근 ‘1,000일’ 투쟁을 앞두고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는 조합원 ‘허지희’ 사무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1994년도 입사해 20년째 되던 12월 20일 20년 근속상을 받았어요. 오전에 행사가 있었는데 꽃다발과 메달을 주더니 오후에는 갑자기 객실청소 업무로 발령을 내더라고요. 그동안 전화 교환 업무를 하며 노동자로 자부심을 느끼고 정말 열심히 일해왔지만 잠시 ‘룸메이드’일을 맡았고 그 후 지금까지 많은 시간 노동조합 일을 해오고 있습니다.”

사무장과 관련된 잘 알려진 일화다. 

세종호텔 문제를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당시의 쟁점을 살펴봐야 한다. 참고로 사무장이 소속되어 있는 조합은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관광레저산업 노조 세종호텔지부(이하 민주노조)’다. 

처음 세종호텔 노조는 기업노조로 민주노총 소속은 아니었단다. 그러다 2006년 민주노조를 표방하고 출마한 ‘김상진’ 씨가 위원장으로 당선되었다. 호텔은 세종대학교 재단 산하에 있는 사업이다. 당시 이사장 ‘주명건’ 회장이 교육감 감사에서 113억을 공금 횡령한 사건이 발각되어 일선에서 물러났다. 노동조합에 훈풍이 부는 듯했다. 임시 경영진을 상대로 임금 인상 및 호봉제와 함께 1년 이상 비정규 직원을 정규직화하는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아 2009년 7월 주명건 회장이 세종호텔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2011년 시작한 ‘복수노조’는 안타깝게도 민주노조 에게는 악재였다. 허지희 사무장은 그동안 겪은 시련 가운데 이 시기 회사와 어용노조와의 갈등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세종호텔 측에서는 입맛에 맞는 ‘연합노조’를 만들어 우리를 차별적으로 대하더니 월급은 동결되고, 노동조건은 더욱 열악해졌습니다. 견디지 못한 전체 280명 조합원 중 무려 200명가량이 민주노조를 탈퇴하고 연합노조에 가입하자 그들이 ‘대표 교섭권’을 가져갔습니다. 호텔 측 탄압은 더욱 강경했어요. 열악한 업무로 강제 전보를 하거나 인사 발령을 냈지요. 민주노조는 탄압에 반발 2012년 1월 2일부터 38일간 로비를 점거해 청국장까지 끓여 먹으면서 파업을 벌였습니다. 마침내 ‘비정규직 정규직화, 고용 안정 협약, 공정한 인사 관리’를 합의했지만 호텔은 끝내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연합노조’였다. 이들과의 갈등은 더욱 심해지고 다시 ‘교섭권’을 빼앗겼다. 2012년 9월에는 비정규직 정규직화 조항을 삭제하고, 2014년에는 계장급 이상 직원에게 연봉제를 적용해 임금이 30퍼센트 가까이 삭감하는 단체협약을 체결하기에 이른다. 이런 불이익을 당해도 조합원들은 직장에서 쫓겨나지 않으려 눈치나 보는 신세로 전락 되었다. 민주노조가 힘들게 쌓아온 실리를 어용노조가 무위로 돌린 셈이다. 호텔 측은 멈추지 않고 조합원을 대상으로 인사 발령을 내고 객실 등 현장은 용역 직원으로 운영하자 호텔 서비스의 질도 점차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여기까지 간략하게 정리한 세종호텔 투쟁의 ‘전사’다.

다음은 코로나19 팬데믹이 휩쓸자, 호텔 측은 2021년 8월 경영 악화를 이유로 ‘구조조정 협의체’를 꾸려 희망퇴직과 전환 배치를 추진한다. 같은 해 11월 10일 29명이 희망 퇴직했고, 12월 민주노조 조합원 15명에게 해고를 통지한다. 이에 대해 허지희 사무장은 ‘이 시기 외국인의 발길이 뚝 끊긴 것은 사실이지만 대량 해고를 할 만큼 경영의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고 주장한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2012년 이후 호텔을 담보로 부채가 약 300억 가까이 쌓였지만, 2천억 원의 당진 목장 등을 매각하면 해결될 문제였습니다. 2013년에는 관철동 일대 땅을 매입해 호텔을 추가로 지으려 했고, 자회사에 투자한 20억이 그대로 묶여있습니다. 매출과 영업이익은 2016년부터 2019년까지 계속 상승했습니다. 게다가 약 2,000억 원의 부동산까지 있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일시적 현상으로 매출 감소는 있었으나 ‘고용유지지원금’을 정부로부터 받았어요. 그러나 그 후 이를 신청하지 않았어요. 2023년에는 영업이익이 21억이고 당기순이익 12억의 흑자를 기록했습니다. 백화점·유통·도소매를 하는 자회사 KTSC가 서울 지역 각 호텔에 소고기 등 물품을 공급해 1,000억의 매출을 올리고 있었어요. 하지만 벌어들인 이익을 모회사인 세종호텔에 배당도 하지 않으면서 자회사를 확대하고 지분율을 높여왔습니다. ”

‘구조조정 협의체’도 정당하게 구성되지 못하고 형식적이었다 한다. ‘노동자대표의 선정 과정에서 호텔 측 입장을 관철할 수 있도록 어용노조를 이용해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했다.’며 애초부터 내용적으로 제대로 된 논의가 불가능했다. 하지만 서울고법 행정7부는 2024년 7월 18일 2심에서 해고 노동자들이 중앙노동위원장을 상대로 낸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 재심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긴박한 경영상 필요성이 인정되고 회사가 해고 회피 노력을 했다’는 판결을 내린다. 법원은 사학 재벌의 미래 경영위기까지 고려해야 한다며 노동자의 ‘해고’가 적법했다는 판결을 내렸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삶에 많은 변화를 불러왔다. 확실히 삶이 하루아침에 불안전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고 미래는 정말로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법의 차별이 불안을 불러오고 노동자의 삶을 잠식해 들어간다.

곧 ‘대법원 선고’를 앞두고 있다. 9월 4일은 해고 ‘1000일’을 맞이한다. 조합원들은 오랜 투쟁으로 지쳐 갈 만도 한데 아침, 저녁으로 선전전을 하고, 세종대학교와 자회사KTSC, 그리고 주명건 회장 집까지 찾아가 시위를 한다. 매주 화요일에는 종교단체가 중심이 되어 ‘기도회’를 개최하고, 목요일 오후 6시 30분이면 퇴근을 마친 노동자와 시민들이 명동역 10번 출구 앞 세종호텔에 모여 집회를 개최한다. 이곳에서 벌어진 사건들, 어용노조를 이용한 탄압과 부당해고, 특히 2012년 이후 세종호텔의 월급은 동결됐다. 한때 280명이 넘는 조합원이 불과 22명으로 줄었다는 것은 충격이었다. 333개 객실을 지키는 프런트 야간근무자가 1명이라는 사실은 숨길 수 없는 치부가 되었다. 무엇보다 코로나 19 팬데믹 처럼 재난위기에 처하게 되면 경영상의 이유를 들어 누구든 해고 대상이 된다는 것은 공분을 사기 충분했다. 이제 세종호텔은 노동자 탄압 사업장이라는 악명과 소문으로 이어져 연대인의 발길이 이어져 지지 방문과 투쟁의 장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현재의 심정이 어떤지 물었다. 허지희 사무장은 주저 없이 ‘끝까지 싸울 것’이라 한다. 당연히 ‘사법부의 판결과 관계없이 복직 투쟁을 이어간다’는 입장이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작은 목소리로 ‘억울한 마음이 든다’며 일어섰지만 웃는 모습이었다. 그나마 조금 마음이 가벼워졌나 보다. 

많은 외국인이 세종호텔을 이용하고 있다. 호텔의 품격은 일하는 노동자의 헌신적인 서비스에서 나온다. 하지만 이곳의 실상은 재난 시기 경영위기를 빌미로 일방적인 해고와 민주노조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놀라운 것은 대한민국 법이 모든 것을 허용하고 있다. 문득 만원짜리 지폐에 새겨있는 ‘세종대왕’이 떠올랐다. 이 사실을 아셨다면 그가 ‘통곡’할 일이 아닐까? 인터뷰를 마치며 아이들처럼 그런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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