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리 해파랑길 해파랑길23코스

영덕 북쪽의 ‘고래불’은 목은 이색 선생이 이곳 앞바다에서 노니는 고래를 보며 마치 고래불(불은 벌판을 뜻하는 옛말) 같다고 해서 이곳의 지명이 되었다고 한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영덕 북쪽의 ‘고래불’은 목은 이색 선생이 이곳 앞바다에서 노니는 고래를 보며 마치 고래불(불은 벌판을 뜻하는 옛말) 같다고 해서 이곳의 지명이 되었다고 한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뉴스클레임]

해파랑길23코스는 영덕의 고래불해변에서 울진의 후포항까지 특별히 눈이 번쩍 뜨이는 장면 없이 편안하게 걷는 11.6km의 길이다. 해안을 벗어나지 않으니 오르막과 내리막이 거의 없다. 오른쪽엔 푸른 바다가 늘 가까이 따라오고 왼쪽에선 멀리 평야 너머에 있던 산들이 점점 가까이 다가온다.

뇌동맥류 시술 후 잘 회복되었다고는 하지만, 9개월 만에 걸은 영해 괴시리마을에서 고래불해변까지 약 8km의 해변 길을 걷는 동안 여간 조심스럽지 않았다. 한눈팔지 않고 쉬엄쉬엄 3시간을 걷고 첫날 일정을 마쳤다. 아내는 힘든 기색 없이 걸었지만 9개월 전보다는 활발하지는 않았고, 걷고 난 후에는 갑작스러운 피로가 몰려오는 듯했다.

고래불해변 끝의 용머리공원 아래의 제당인데 이곳에서 5년마다 마을 풍어제가 시작되며 무속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 한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고래불해변 끝의 용머리공원 아래의 제당인데 이곳에서 5년마다 마을 풍어제가 시작되며 무속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 한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숙소를 울진군 평해읍의 평해버스터미널 근처에 마련했다. 지금까지 전혀 알지 못했고 관심도 없었던 지역이었다. 이곳으로 정한 이유는 고래불해변, 후포항 그리고 다음 코스까지 교통이 가장 편했기 때문이었다. 그간 걸으며 묵었던 여러 형태의 숙소 중 가장 저렴했지만, 그 어느 곳보다 더 깔끔했다. 저녁 식사를 위해 마땅한 식당을 찾아 낯선 거리와 골목을 어슬렁어슬렁 걷는 걸음도 한없이 편안했다. 그날 일찍 잠든 아내는 뒤척임도 없이 12시간 넘게 자고서야 겨우 잠에서 깼다.

2월 27일 아침 10시가 되어서야 고래불해변에 다시 섰다. 햇살이 좋은 날이었다. 어느 곳을 보아도 하늘엔 구름 한 점 없었다. 아홉 달 전 영해 괴시리전통마을에서 걷기를 마쳤을 때부터 이곳의 이름, ‘고래불’이 궁금했다. 고래불은 고려말 많은 신진 유학자를 길러낸 목은 이색 선생이, 이 해변 앞바다에 고래가 하얀 분수를 뿜으며 노는 모습을 보고 ‘고래불 (불은 벌의 옛말)’이라 해 그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이 앞바다에 고래는 사라지고 이름만 남았다.

용머리공원을 지나며 보이는 서쪽의 산줄기가 마치 논밭의 울타리처럼 보인다. 동해안에서는 드물게 넓은 평야가 이곳까지 이어지고 있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용머리공원을 지나며 보이는 서쪽의 산줄기가 마치 논밭의 울타리처럼 보인다. 동해안에서는 드물게 넓은 평야가 이곳까지 이어지고 있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영해평야 동쪽 끝 바닷가에 4km가 넘는 모래 해변이 펼쳐지고 소나무 숲속에 야영장과 해수욕장이 이어져 있지만 고래불해변의 배후 마을에서 관광지의 번잡함은 찾을 수 없었다. 해수욕장마다 흔한 숙박시설조차 거의 보이지 않았다. 아직은 바닷가의 농촌 마을이다.

바닷가에 잘 정리된 밭이 보이고 그 가장자리에 소나무 몇 그루가 아직은 남아 방풍림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지만 오래지 않아 이 멋진 바다 풍경도 어느 숙박시설의 전유물이 될 듯하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바닷가에 잘 정리된 밭이 보이고 그 가장자리에 소나무 몇 그루가 아직은 남아 방풍림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지만 오래지 않아 이 멋진 바다 풍경도 어느 숙박시설의 전유물이 될 듯하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고래불해변을 돌아나가는데 작은 포구가 보인다. 그 뒤 낮은 언덕 위에 용머리공원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돌 비석이 서 있다. 소박한 정자가 하나 보일 뿐이다. 계단을 오르기 전 판자 문으로 보호되고 있는 바위는 틀림없이 바다에 나간 이들의 무사를 빌던 곳일 것이다. 누군가는 외지에 나간 가족들을 위해 빌었을 것이고. 아직도 5년에 한 번씩 열리는 마을 풍어제가 이곳에서 시작된다고 한다.

이곳 자루실마을 소개 비석의 글에 따르면, 자루실마을 바닷가 용머리처럼 생긴 영험한 바위 위에 일제강점기에 팔각정을 짓고 마을쉼터처럼 위장하여 큰 인물 나는 것을 막았는데, 후에 주민들이 이를 알고 1960년대 초 일제의 총독부 비석과 함께 철거해 지금의 해안도로에 매립했다고 한다. 

아직은 멀리 후포항이 아득한데 논과 밭은 거의 사라지고 산 아래 드문드문 집들만 흩어져 있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아직은 멀리 후포항이 아득한데 논과 밭은 거의 사라지고 산 아래 드문드문 집들만 흩어져 있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용머리공원엔 마을 주민들이 운동할 수 있는 기구가 몇 가지 있을 뿐 공원이라 하기엔 작은 공간이었다. 그 뒤의 마을 골목길을 빠져나가며 보니 서쪽 멀리 서 있는 산줄기가 편안하다. 동쪽엔 가없는 푸르름이 펼쳐져 있다. 문득 사유지이니 출입하지 말라는 팻말과 함께 길이 막혔다. 바닷가에 펜션이 들어서며 편안히 걷던 길이 사유지로 들어가 막히고 이리저리 다른 길을 찾아 걷기 시작했다. 다행히 멀리 돌지는 않았다.

파도를 막기 위한 구조물 위엔 갈매기들이 해바라기를 하는 중이고 하늘과 바다는 끝없이 푸르기만 했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파도를 막기 위한 구조물 위엔 갈매기들이 해바라기를 하는 중이고 하늘과 바다는 끝없이 푸르기만 했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그리고 후포항까지 11km 남짓한 길은 딱히 기억할만한 지명이나 장소 없이 바닷가의 여러 마을을 지났다. 2km 남짓 걸어 백석리에 이를 때까지는 서쪽으로 산 아래까지 농사 지을 땅이 제법 넓었지만, 그 이후엔 논이 사라지고, 밭은 점점 옹색해졌다. 울진군으로 접어들어 후포리에 이르기까지는 산과 바다 사이의 길에 드문드문 보이는 집들을 바라보며 부지런히 걸었다.

일망무제(一望無際), 창해무변(滄海無邊), 어떤 말로도 다 설명할 수 없는 푸르름이 좋은 날이었다. 미당의 시를 흥얼거린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일망무제(一望無際), 창해무변(滄海無邊), 어떤 말로도 다 설명할 수 없는 푸르름이 좋은 날이었다. 미당의 시를 흥얼거린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후포항까지 11.6km를 4시간에 걸어 냈다. 그런 아내가 대견해 대게 식당에 들어섰다. 대게 가격은 부담스러운 수준이지만, 아직은 따뜻하지 않은 바닷바람을 안고 4시간 넘게 걸었으니 이 정도의 사치를 즐길 자격은 얻었다. 기분 좋게 매우 이른 저녁을 먹고 숙소에 돌아왔다. 

후포항에 정박해 있는 큰 배가 보이는 해변에 섰을 때는 오후가 기울고 있었는데 아직 하늘엔 구름 한 점 없고, 아무렇지도 않은 바닷새들은 아무렇게나 모래 위에 모여 편안함을 즐기고 있었다. 아무런 일없이 걷고 있으니 다행이다 싶은 날이었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후포항에 정박해 있는 큰 배가 보이는 해변에 섰을 때는 오후가 기울고 있었는데 아직 하늘엔 구름 한 점 없고, 아무렇지도 않은 바닷새들은 아무렇게나 모래 위에 모여 편안함을 즐기고 있었다. 아무런 일없이 걷고 있으니 다행이다 싶은 날이었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딸이 전화를 했다. 엄마가 전화를 받지 않는단다. 

“여보 전화기 확인해봐.”

“전화기가 없네.”

식당에 두고 왔다.

글쓴이 오근식=1958년에 태어나 철도청 공무원, 인제대학교백병원 그리고 건국대학교병원에서 일했다. 2019년 2월 정년퇴직하고, 제주 올레, 고창과 통영의 길과 섬을 걸었다. 이후 해파랑길 750km를 걷기 여행을 마치고 현재는 1,470km의 남파랑길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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