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리 해파랑길 해파랑길26코스

비바람 때문에 걷기를 쉬었지만 동해 어달해변의 숙소에서 들이치는 파도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비바람 때문에 걷기를 쉬었지만 동해 어달해변의 숙소에서 들이치는 파도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뉴스클레임]

해파랑길26코스는 왕피천과 남대천이 동해로 흘러드는 모습을 보고 울진 읍내의 호수공원을 지나 바닷길로 나서서 죽변항까지 12.7km의 길이다. 가벼운 운동화와 옷차림으로도 충분히 걸을 수 있다. 

마침내 이른 아침 먼바다의 구름 위로 오르는 해를 보았다. ‘동해의 떠오르는 태양’이었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마침내 이른 아침 먼바다의 구름 위로 오르는 해를 보았다. ‘동해의 떠오르는 태양’이었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25코스를 걸으며 미역을 한 아름 안고 동해시 어달해변의 숙소로 돌아온 후부터 비바람이 오락가락했다. 어달항의 방파제에 파도치는 모습이 제법 거센데 수그러들지 않았다. 다음 코스를 걷는 대신 숙소 주변을 기웃거리고, 망양정공원과 성류굴을 보았다. 3월 하순에 접어들며 벚나무 꽃망울이 크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며 25코스를 마쳤는데, 6일 후 26코스를 나섰을 때는 화사하게 핀 뒤여서 꽃잎이 날리기 시작했다.

왕피천을 건너 바다로 향하는 길엔 소나무 숲이 웅장하고, 바닷가에선 북으로 흘러온 왕피천과 남으로 흘러온 남대천이 동해를 만나고 있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왕피천을 건너 바다로 향하는 길엔 소나무 숲이 웅장하고, 바닷가에선 북으로 흘러온 왕피천과 남으로 흘러온 남대천이 동해를 만나고 있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해파랑길 26코스는 왕피천과 남대천이 동해로 흘러드는 모습을 보며 시작한다. 왕피천은 울진 서쪽의 여러 산골짜기에서 시작한 물길이 북으로 향하다가 성류굴 근처에서 합쳐지고, 남대천은 북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리다가 울진읍을 관통해 왕피천과 만나지 못하고 동해로 들어간다. 망양정에서 북쪽 해변을 보면 왕피천과 남대천이 각각 동해로 흘러들며 제법 넓은 평야를 이루고 있다. 백사장이 꽤 길지만, 북쪽과 남쪽에서 강이 흘러들고 있어 물놀이하기에 매력적인 곳은 아니다.

왕피천을 건너 바다로 향하는 길엔 소나무 숲이 웅장하고, 바닷가에선 북으로 흘러온 왕피천과 남으로 흘러온 남대천이 동해를 만나고 있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왕피천을 건너 바다로 향하는 길엔 소나무 숲이 웅장하고, 바닷가에선 북으로 흘러온 왕피천과 남으로 흘러온 남대천이 동해를 만나고 있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해변에서 1.5km쯤 떨어진 곳에 왕피천대교와 수산교가 울진 남북을 연결하는데 해파랑길26코스는 수산교 남쪽에서 시작한다. 이 다리를 건너 해변 쪽으로 향하면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이루어진 왕피천공원을 지난다. 이곳에서 왕피천을 가로질러 망양정공원까지 가는 케이블카 탑승장과 다양한 시설이 자리 잡고 있다. 울진읍으로 향하는 길 앞에 멋진 도보교가 나타나는데 보행자 전용 은어다리다. 

남대천 하류에 설치된 보행자 전용 은어다리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남대천 하류에 설치된 보행자 전용 은어다리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은어다리를 건너 남대천 가를 잠시 걸으며 강과 친해질 겨를도 없이 울진읍내에 들어서는데 번잡한 도로와 빼곡한 아파트 대신 눈앞이 시원한 호수가 걷는 이를 맞이한다. 연호다. 지난해에 사람들을 즐겁게 한 연꽃과 연잎 줄기가 아직 남아서 그 영화를 짐작할 수 있었다. 공원에서는 묘목 나누어주는 행사 중이어서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지만, 코로나19가 퍼지기 시작한 이후 어디에서든 외지인을 반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 부지런히 걸어 나갔다.

울진 읍내를 관통해 흐르는 남대천을 잠시 따라 걷다가 벗어나면 울진읍의 명물 연호를 만난다. 여름이면 연잎과 연꽃이 장관일 터이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울진 읍내를 관통해 흐르는 남대천을 잠시 따라 걷다가 벗어나면 울진읍의 명물 연호를 만난다. 여름이면 연잎과 연꽃이 장관일 터이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호숫가 소나무 숲에 단청이 선명한 정자가 눈에 들어왔다. 연호정이다. 이 자리엔 1815년 (순조 15년)에 향원정(香遠亭)이라는 이름의 정자가 들어섰었다. 그 후 향원정이 퇴락하자 일제강점기인 1922년에 옛 동헌의 객사 건물을 옮겨 정자를 다시 세우고 이름도 연호정으로 했다고 한다. 이 정자의 성명에 따르면 과거 이 호수는 울진 읍내의 중심부에 이를 정도로 컸었는데 오랜 세월 흙모래가 유입되며 현재의 크기로 줄었다고 한다.

연호 가장자리의 솔숲에 있는 연호정은 조선말 순조 때 처음 세워졌으나 퇴락하고 1922년 일제강점기에 동헌 객사 건물을 옮겨 다시 지었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연호 가장자리의 솔숲에 있는 연호정은 조선말 순조 때 처음 세워졌으나 퇴락하고 1922년 일제강점기에 동헌 객사 건물을 옮겨 다시 지었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연호정(蓮湖亭) 편액이 둘 있는데, 하나는 한일동(韓溢東)이라는 사람의 글씨를 받아 임경필(林敬弼)이라는 사람이 기증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윤용구의 글씨다. 한국학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윤용구는 고종 때 급제한 후 예조판서와 이조판서를 지냈다. 1895년 명성황후시해사건 이후 일체의 관직을 내려 놓고 서울 근교의 장위산에 은거했으며 국권침탈 이후에 일본 정부가 수여한 남작 작위도 거절하고 세상사를 멀리하였다고 한다. 

윤용구의 글씨는 순천 선암사의 강선루와 고창의 모양성 남쪽 노동저수지 가의 매월정(梅月亭)에서 본 적이 있어 단박에 알아볼 수 있었다. 덧붙이자면, 고창 노동저수지의 매월정은 알려지지는 않은 곳이지만 고창읍성에 간다면 꼭 한 번은 가서 볼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최근에 연호 가운데에 팔각정인 월연정을 세우고 이곳까지 다리를 연결해 많은 이들이 물 위에서 연호를 즐기고 있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최근에 연호 가운데에 팔각정인 월연정을 세우고 이곳까지 다리를 연결해 많은 이들이 물 위에서 연호를 즐기고 있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울진 연호에는 호수 한가운데에 월연정이라는 팔각정이 있고 이곳까지 다리가 연결되어 있다. 호수 한가운데에서 사방을 바라보며 즐길 수 있는 멋진 곳이다. 연호 주변에는 산책로가 마련되어 있어 많은 이가 걷기운동을 하고 있다. 

연호를 북쪽으로 벗어나면 울진과학체험관이 있고 이곳 야외에 우리 공군에서 운용했던 훈련기와 전투기가 전시되어 있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연호를 북쪽으로 벗어나면 울진과학체험관이 있고 이곳 야외에 우리 공군에서 운용했던 훈련기와 전투기가 전시되어 있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연호정과 월연정을 보고 호숫가를 잠시 걷다가 보니 길이 바다를 향해 나간다. 그러나 연호를 채 벗어나기도 전에 여러 대의 오래된 비행기가 걸음을 붙든다. 과거 우리나라 공군에서 운용하던 훈련기, 초음속 전투기 등의 실물이 퇴역 후에 이곳에 전시되어 있었다.

바닷가로 나서면 잠시 잊고 있었던 푸른 바다와 하늘이 반기고 파도가 바위와 만나 부서진다. 어느 마을에선 아무렇지도 않게 마르고 있는 미역이 ‘어린 왕자’의 글귀를 읽고 가라 한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바닷가로 나서면 잠시 잊고 있었던 푸른 바다와 하늘이 반기고 파도가 바위와 만나 부서진다. 어느 마을에선 아무렇지도 않게 마르고 있는 미역이 ‘어린 왕자’의 글귀를 읽고 가라 한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바닷가로 나서면 잠시 잊고 있었던 푸른 바다와 하늘이 반기고 파도가 바위와 만나 부서진다. 어느 마을에선 아무렇지도 않게 마르고 있는 미역이 ‘어린 왕자’의 글귀를 읽고 가라 한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바닷가로 나서면 잠시 잊고 있었던 푸른 바다와 하늘이 반기고 파도가 바위와 만나 부서진다. 어느 마을에선 아무렇지도 않게 마르고 있는 미역이 ‘어린 왕자’의 글귀를 읽고 가라 한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바닷가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보는 풍경은 익숙하다. 푸른 바다와 하늘, 바닷가 바위에 밀려와 부서지는 파도, 마을 양지바른 곳에 자리 잡은 해신당, 작은 포구 등 많이 보았지만, 여전히 새롭다. 

울진 죽변면 후정리의 향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수령 500년이 넘은 것으로 추정된다. 울릉도에서 자라다가 파도에 떠밀려와 이곳에 터를 잡았다는 전설과 함께 이 마을의 신이 되었다. 나무 옆에는 작은 사당이 있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울진 죽변면 후정리의 향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수령 500년이 넘은 것으로 추정된다. 울릉도에서 자라다가 파도에 떠밀려와 이곳에 터를 잡았다는 전설과 함께 이 마을의 신이 되었다. 나무 옆에는 작은 사당이 있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해파랑길26코스 바닷가 길에는 두 그루의 향나무 고목이 있다. 양정항이 있는 온양1리 마을회관 옆의 향나무는 수령 320여 년의 보호수다. 죽변항에 들어서기 전에 보이는 후정리 향나무는 나이가 500여 년 이상으로 추정되는데, 천연기념물 158호로 지정되어 있다. 울릉도에서 자라던 나무가 파도에 떠밀려와 후정리에 자리 잡았다는 전설과 함께 이 향나무는 오래전부터 이미 마을 사람들의 신이었다. 

글쓴이 오근식=1958년에 태어나 철도청 공무원, 인제대학교백병원 그리고 건국대학교병원에서 일했다. 2019년 2월 정년퇴직하고, 제주 올레, 고창과 통영의 길과 섬을 걸었다. 이후 해파랑길 750km를 걷기 여행을 마치고 현재는 1,470km의 남파랑길을 걷고 있다.

저작권자 © 뉴스클레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