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의 성자 노무라모토유키-2

[뉴스클레임]

전시중인 갤러리 인덱스 사진=최인기
전시중인 갤러리 인덱스 사진=최인기

“1970년대 그 어려운 시절, 몰래 찍어두었던 이 사진들을 한국인들에게 다시 돌려드릴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일본이 저지른 침략의 역사에 대해 나와 내 가족은 통한의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사죄의 뜻으로 삶을 바쳐 한국에 봉사하고자 1968년 처음 한국을 방문했고, 전국을 돌며 침략의 상흔과 분단의 비극, 군사독재의 억압을 목격했습니다. 그 참담한 현실을 기록해야 할 필요를 절감했습니다.”

- 노무라 모토유키 -

도시에 대한 권리를 주장한 프랑스의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모든 공간이 특정한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힘으로 만들어진다고 했다. 노무라 목사가 천작했던 서울, 그 가운데 청계천 일대가 바로 그런 곳이다. 박정희 독재는 한국의 발전을 상징하는 곳으로 사대문 가운데에서도 청계천 개발에 집중했다. 악취를 풍기며 썩은 물이 흐르는 곳을 시멘트와 콘크리트로 덮고 그 주변에 평화시장, 삼일 아파트, 삼일 고가도로를 세워 반공 이념과 자신이 친일반민족행위자였던 것을 은폐하고 건국의 이념을 설파했던 것이다.

“1970년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한 청년 노동자의 죽음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가 일했다는 공장을 찾아가 카메라 셔터를 눌렀지요. 한국 정보기관의 감시가 흔하던 시절이었고 그들에게 발각되면 큰 고초를 받게 될지 모르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후에 알았지만, 그 청년 노동자는 전태일이었습니다.”

노무라 모토유키의 사진은 빼어난 조형미와 상징성 그리고 표현에 있어서 실험 정신이 드러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장소성을 드러내는 역사적 사실로서의 가치는 매우 중요하고 비교 평가절하 될 수 없다. 무엇보다 사진 속에 드러나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성은 눈부시다. 자신의 기나긴 세월 속에서 만났던 인연들이 차곡차곡 담겨있으며, 흔적의 사연은 형언키 어려우리만큼 커다란 사건 속에 용해되어 있다. 그의 손에는 펜과 카메라가 항상 들려 있어, 평범해 보이는 사물의 이면을 살폈을 것이고, 장소를 점유하고 삶을 일구어 가는 사람들의 처지와 특수한 조건을 해석했을 것이다. 이렇게 노무라 모토유키의 사진 속 공간은 그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사회의 모습에 따라 만들어진다는 것을 증명하는 소중한 기록물이 된다.

전시중인 갤러리 인덱스 사진=최인기
전시중인 갤러리 인덱스 사진=최인기

전시를 기획한 이규상 사진 전문 눈빛 출판사 대표는 서문에서 노무라 부부는 일본 내에서 양심적 시민운동과 평화운동, 그리고 한일 간의 역사적 화해를 위해 긴 세월을 헌신해 왔다고 말한다. “강제 동원 피해자들과의 연대, 진실을 향한 집요한 기록, 그리고 평화를 위한 실천은 많은 한국인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그의 삶과 사진은 한국과 일본 사이에 놓인 아픔의 강을 건너는 다리가 되어주었고, ‘함께 아파하고 기억하는 일의 가치를 일깨워주었습니다.” 라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이번 전시는 한국의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기리는 헌정의 전시로 1968년부터 1980년대까지 직접 촬영한 청계천 빈민촌, 근대화 이전의 한국 농촌 풍경, 유신체제 아래 민중의 삶 등 50여 점의 사진이 소개된다고 기획 의도를 밝히고 있다.

렌즈 너머로 전해지는 그의 따뜻한 시선은 억압과 가난 속에서도 존엄을 잃지 않았던 한국인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그의 진심 어린 회한과 깊은 연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 사진전은 현재 병상에 있는 노무라 목사 부부의 쾌유와 평안을 기원하며 마련되어, 노무라 목사님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618() 오후 5시에 갖게 된다. 그의 삶에 공감하는 사람은 누구나 참석할 수 있다. 전시는 23일 월요일 11:00-18:00 (마지막 날은 16시까지) 인사동 갤러리 인덱스에서 열린다. 관람은 무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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