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인권침해… 일상이 된 폭력·차별
정부 대책 나왔지만 현장 체감은 '글쎄'
국제 기준에도 미달… “한국, 여전히 갈 길 멀어”
"존엄한 인간으로 대우해야" 목소리도

[뉴스클레임]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이 여전히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한국의 노동 현실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최근 공개된 한 제조업 현장 영상은 외국인 노동자가 관리자에게 폭언과 조롱을 당하는 장면을 생생히 보여주며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이는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는 구조적 인권침해의 일면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겪는 인권침해는 단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일상적인 경험에 가깝다. 관리자나 동료 한국인으로부터 “무능하다”, “쓸모없다”는 식의 언어폭력과 모욕은 빈번하게 발생하며, 일부 사업장에서는 공개적인 욕설과 인격 모독 또한 끊이지 않는다.
육체적 폭행 역시 심각한 문제다. 고용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외국인 노동자 10명 중 1명 이상이 신체 폭력 피해 경험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밀침, 협박, 가격(價擊) 등은 목격자 없이 벌어지기 쉬운 환경 속에서 자주 발생한다.
임금 체불과 불공정 계약 문제도 고질적이다. 계약서 미작성, 시간당 최저임금 미지급, 초과근무 수당 미지급 등은 농축산·제조·건설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보고된다.
이와 함께, 장시간 노동과 높은 산재율도 또 다른 문제다. 외국인 노동자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55시간 이상으로, 과로와 부상의 위험에 상시 노출돼 있다. 산업안전보건공단 통계(2023)에 따르면 산업재해 발생률은 내국인보다 1.5배 이상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언어 장벽과 부족한 안전교육은 사고 발생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외국인 노동자가 처한 사회·제도적 사각지대는 더욱 깊다. 이들은 인종·국적·성별을 이유로 상여금, 승진, 복지 등에서 차별을 겪고 있으며, 특히 사업장 이동이 제한된 비자 체계는 이들을 고용주에게 예속시키는 구조적 고리를 형성한다. 그 결과, 부당한 대우나 폭행을 당하더라도 쉽게 퇴사하거나 문제 제기를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조심스럽게 호소한다. "주 6일 새벽부터 밤까지 하루 12시간 가까이 일한다. 실수할 때마다 바보라고 욕을 듣는다. 말이 안 통해 결코 존중받지 못한다".
이 같은 현실에 대해 정부도 손을 놓고 있지는 않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번 나주 이주노동자 인권유린 사건과 관련해 사회적 약자에 대한 야만적 인권침해를 철저히 엄단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페이스북을 통해 "세계적 문화강국이자 민주주의 모범국가에서 벌어진 일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며 "소수자, 약자에 대한 용납할 수 없는 폭력이자 명백한 인권유린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신분이 불안정하다는 점을 악용한 인권침해와 노동착취가 벌어지지 않도록 고용노동부 등 관계 부처에서 적극 대응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한계점은 있다. 여전히 학교·현장에서는 언어 소통 미비, 단속 인력 부족 등으로 실질적인 변화 체감이 낮은 실정이다. 민간에서는 전국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및 시민사회단체들이 피해자를 위한 법률상담, 임시 보호, 인식 개선 활동 등을 진행 중이지만, 사업의 지속성과 확대를 위한 예산·인력이 크게 부족하다는 어려움이 있다.
국제노동기구(ILO), OECD 등에서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외국인 노동자의 권리 보장 수준에서 여전히 취약국에 속한다. 일본, 독일, 캐나다 등과 비교할 때 비자 체계 유연성, 주거권 보장, 안전망 구축 등 전반적인 구조 개선이 뒤처져 있다는 평가다.
전문가들은 현장 중심의 다국어 피해 신고 체계 구축, 체불임금 강제집행 장치 마련, 문화적 통합 프로그램 확대 등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무엇보다 외국인 노동자에게 자신의 권리를 알리고,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정책의 핵심이 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결국 외국인 노동자가 겪고 있는 고통은, 단지 노동 조건의 문제를 넘어 사회 전체가 ‘누구를 시민으로 바라보는가’에 대한 본질적 질문으로 확장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를 단순 저임금 노동력이 아닌 존엄한 시민적 주체로 인정하는 새로운 시선과 구조적 전환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의 조사와 제도 개선이 일회성 진단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이주노동자의 참여 권리 확대, 차별금지법 제정, 상시적 권익 모니터링 기구 운영과 같은 실질적 개혁이 병행돼야 한다.
한국 사회가 스스로 “이런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선, 지금이 바로 그 변화의 출발점이 돼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