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일터]②한국타이어 긴급점검, 현장 빠진 ESG 보고서, ESG 외부 평가서 B+→B→C로 연달아 등급이 떨어져도 보고서는 자화자찬 일색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이하 한국타이어)가 발간한 2024/25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보고서는 각종 정책과 수치, 선언적인 구호로 가득하다. 임직원 건강 증진, 안전경영, 지속가능성, 글로벌 친환경 표준, 다양한 사회공헌과 조직문화 혁신 등 화려한 내용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어진 산재·집단사망, 생산현장의 위험 실태, 노동자와 유족의 분노, 그리고 연이은 사망과 사고는 이 보고서의 현실성에 깊은 의문을 던진다.
■한국타이어 ESG 보고서 미사여구와 현실, 그 끝없는 괴리
한국타이어 ESG보고서를 펼치면 이 회사가 임직원 건강관리, 안전·복지, 최적의 근무환경 제공, 혁신 성장 지원 등 모든 측면에서 ‘모범생’이라 여겨질 만큼의 스토리가 빼곡하다. 보고서에는 건강검진 강화, 맞춤형 심리상담, 근골격계 재활 시스템, 가족친화제도, 유연근무제, R&D 인재 육성, 협력사 안전교육, 글로벌 표준 경영이 줄줄이 소개된다.
하지만 이 같은 ‘겉 포장’이 무색하게도 현실에선 ‘산업재해왕’, ‘죽음의 공장’, ‘산재 반복 기업’이라는 오명이 따라붙는다. 특히 2021~2023년 한국타이어 ESG 외부 평가에서 B+→B→C로 연달아 등급이 떨어지고, 지배구조(G) 부문은 D등급까지 추락하며, 사회(S) 영역도 현실과 괴리된 A를 받는 등 ‘등급 논란’까지 이어졌다. 대한민국 산업사에서 이처럼 보고서와 실태가 따로 노는 사례는 손에 꼽는다. 일각에선 “한국타이어가 ESG를 말할 자격이 있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한국타이어 반복되는 산재·사망, 그리고 통계가 증명한 비극
팩트는 더욱 냉정하다. 2015년부터 2023년 8월까지 산업재해로 최소 13명의 노동자가 사망했고(언론에 확인된 것만), 같은 기간 매년 수십~수백건의 산재가 꾸준히 반복됐다. 예컨대 2015년 71건, 2016년 153건, 2017년 102건, 2018년 126건, 2019년 193건, 2020년 217건, 2021년 300건, 2022년 460건 등 꾸준히 증가세에 있다. 특히 2023년엔 497건이 신청되어 2년 새 111% 급증, ‘사흘에 한 명씩 다친다’, ‘3.5일에 한 명씩 사고가 난다’는 현실이 단순 수사가 아님을 증명한다.
이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2006~2007년 대전·금산공장에서 1년여 만에 15명이 돌연사·자살·심근경색·암 등으로 숨졌다는 집단사망 사태다. 20년간 160명에 달하는 사망, 2020년대 들어서도 여전히 반복되는 사망·부상, 그리고 온갖 사회적 논란이 잇달았다.
■보고서로는 가릴 수 없는 현장, “누가 이 죽음을 기억하는가”
노동자와 유족, 노조의 증언을 빌리면 “생산성 압박, 고강도 교대제, 설비 노후화, 위험공정 하청화, 구조적 대안 실종”이 현실의 본질이다. 노동자들은 쉬지 못하고, 구조적으로 위험한 작업에 내몰리며, 사고가 나도 ‘산재 인정’이나 치료비, 보상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다. 산재처리의 지연과 종결 통보는 상시화됐고, 사고 대책을 새로운 결의문과 보고서로만 갈음하는 행태도 반복되고 있다. 휴게시간 미비, 현장 관리 부실, 정작 개선돼야 할 작업현장 구조는 10년, 20년 전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 그들의 공통된 외침이다.
“이렇게 죽어나간 이들을 두고 매년 ESG 보고서만 ‘더 좋아졌다, 더 안전하다’고 하니, 도저히 낯뜨겁지 않은가”라는 유족, 노동계의 탄식은 사회와 미래세대에 깊은 울림을 남긴다. 일터에서 부모를, 형제를, 친구를 잃은 사람들은 이 화려한 한국타이어 ESG 성적표가 얼마나 공허한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사회적 신뢰 잃는 한국타이어 ESG…등급 하락·금융, 투자위험 가중
ESG지표 등 외부 평가에서도 이런 문제점들은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 한국타이어는 2023년 C등급(7등급 중 5위, ‘취약’)·지배구조 D등급으로 평가됐고, 안전 리스크, 오너 리스크, 현장 개선 부진이 등급 하락의 주원인으로 지적됐다.한국ESG기준원은 “체제 개선과 구조개혁이 시급하다”고 경고했고, 금융기관과 투자기관도 ‘산재왕’ 리스크, 지배구조 불신을 경고하기 시작했다. 사회(S) 등급이 A였다는 평가에도 노동계와 시민단체·언론은 “실태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등급마저 쇼윈도”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ESG 보고서의 ‘가면’을 넘어, 진짜 변화와 존중 필요
한국타이어의 불행한 기록은 단순히 한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2025년 현재, ESG 공시 의무화, 산업안전보건법·중대재해처벌법 등 제도 강화에도 불구하고, 실제 현장에선 산재와 사망, 안전 경시, “생산성과 효율 우선”이 만연하다. 그 간극을 메우지 않는 한, 아무리 화려한 글로벌 표준의 보고서도 ‘허구’일 뿐이다.
보고서가 진짜 변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책임과 구조개혁이 선행돼야 한다. 노동자 생명과 안전, 피해자 구제, 현장 환경 개선 같은 본질이 빠진 ESG는 아무 의미가 없다. 수치, 지표, 매뉴얼, 표창장, 보고서보다 더 소중한 것은 “오늘도 무사히 퇴근할 수 있는 노동자의 일상”임을 사회 전체가 잊지 않아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수치와 포장 아닌, ‘사람’과 ‘실질 변화’가 ESG의 기본
수많은 정책과 제도, 보고서, 수치들은 결국 현장의 목숨과 안전이 희생될 때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한국타이어 건은 '포장된 ESG'의 한계를 넘어, 진심 어린 변화와 실질적 존중이 필요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진짜 ESG’는 보고서가 아니라, 노동자의 삶과 안전, 구조적 개혁, 그리고 오늘도 무탈히 귀가하는 수많은 가족의 꿈에서 시작된다. 변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성적표도, 보고서도 신뢰받을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