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클레임]
워싱턴발 한미 관세 협상이 사실상 결렬됐다. 지난 7월 합의한 ‘상호 관세 인하’ 초안에 양측 실무진은 의견을 모았으나 막판 서명만 남겨둔 단계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서명을 거부하면서 국면이 틀어진 것이다. 일본은 이미 미국과 합의해 자동차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혜택을 얻었지만, 한국은 무거운 불확실성을 떠안게 됐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14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과 후속 협상을 진행했지만 성과 없이 귀국길에 올랐다. 정부는 자동차와 철강 등 주요 품목의 상호 관세를 기존 25%에서 15%로 낮추는 협정을 추진해왔으나 정치적 변수가 발목을 잡았다.
대통령실 강유정 대변인은 15일 브리핑에서 “양국은 서로 조건을 조율하며 협상의 균형점을 찾고 있다”며 “결렬이라기보다는 타결을 위한 시간이 더 필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협상장에 참여했던 복수 관계자는 “일본은 사실상 미국이 원하는 수준을 모두 수용했고, 한국은 일부 조건을 거부해 트럼프 대통령이 반감을 드러낸 것”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는 양국에 뚜렷한 대조를 드러냈다. 일본의 경우, 이날부터 미국 수출 자동차 관세율이 25%에서 15%로 낮아지는 대신 미국 내 직접 투자를 확대하는 조건을 받아들였다. 반면, 한국은 3500억 달러 규모의 현금성 투자를 요구받았으나 “국내 재정 부담이 지나치게 크다”며 난색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 정가의 한 소식통은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 대선을 앞두고 미국 경제 성과를 부각하기 위해 동맹국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려는 의지가 강하다”며 “일본은 현실을 택했고, 한국은 버티는 전략을 택한 셈”이라고 말했다.
국내 산업계의 우려는 커지고 있다. 자동차와 전자 업계 관계자들은 “관세가 25%로 유지될 경우 미국 수출이 줄어드는 것은 불가피하다”며 “투자와 관세 사이에서 어느 쪽이 더 합리적인 손실인지 정부가 명확히 선택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협상 결렬 직후 여의도 정치권은 상반된 목소리를 냈다. 여당은 “트럼프식 거래에 쉽게 굴복할 수는 없다”며 정부 방침을 지지했지만, 야당은 “일본과 달리 한국만 소외되는 외교 참사”라며 비판을 제기했다.
당분간 양국 간 협상이 재개되더라도 전망은 밝지 않다. 미국의 대선 일정, 한국 재정의 한계, 그리고 일본의 선제적 합의가 얽히면서 한국의 입지가 더욱 좁아지고 있어서다. 서울 정부 관계자는 “현 시점에서 ‘서명 없는 합의문’만 남아 있는 상태”라며 “단기간 논의 재개는 어렵고, 장기적인 전략 수정도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