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통계에 걸리지 않는 사각지대, 자립 가로막는 제도 장벽
숨은 위기가구 실상, 맞춤 지원 아우르는 제도개혁 절실

[뉴스클레임]
부모, 자녀, 혹은 형제와 함께 살지만 스스로를 가족 구성원이 아니라 ‘숨은 독립자’라고 부르는 이들이 있다. 경제적 이유로 독립을 포기하고 다인 가족 내에서 자신만의 생계를 이어가는 이들이 바로 ‘비자발적 다인가구’다. 이들은 행정상 가족에 포함되지만, 사실상 복지정책의 지원 대상에서 빠져 있다.
서울 도봉구의 20대 취업준비생 박효주 씨는 어머니, 남동생과 3인 가구로 살지만, “진짜 가족은 각자 방에서 밥도 따로 먹고 서로의 존재를 거의 의식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혼자 독립해 보고 싶어도 월세, 취업 불안 때문에 방법이 없다”며 “복지 상담을 받으러 가도 ‘가구원’이라는 이유로 주거지원 대상에서 모두 탈락했다”며 막막함을 드러냈다.
부모를 부양하는 30대 여성 양지은 씨는 “아버지 병간호와 동생 학업 지원, 본인 생계까지 한꺼번에 책임지며, 사실상 ‘숨은 가장’이 됐지만 제 이름으론 어떤 지원도 받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정책 빈틈은 이처럼 현실에서 반복된다. 주거지원, 긴급생계지원, 청년수당, 의료 바우처 등 대부분의 공적 복지는 ‘가구 단위’ 기준으로 설계돼 있다. 가구 내 취업·소득·재산을 합산해 가족이 있으면 사실상 지원받기 어렵다.
가족센터 관계자는 “아버지가 소득이 있어도 산재·질병 등으로 실질적으로는 자립이 불가능한데, 행정 기준상 탈락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고 말했다.
비자발적 다인가구의 규모를 보여주는 정밀한 전국 단위 공식 통계는 아직 마련돼 있지 않다. 다만 서울 중구에선 지난해 실태조사와 복지상담을 통해 별도로 확인된 위기가구만 653곳에 이르렀다. 복지 현장에서는 “가구 단위 기준으로 지원에서 제외되는 사례가 각 지역에서 반복되고 있으며, 전국적으로 수만 가구에 이를 가능성이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자체 긴급복지와 주거지원 상담, 현장 발굴 통계에서도 행정 체계에 아직 편입되지 않은 사각지대의 존재가 확인된다. 복지 현장 실무자들은 “서류상 다인가구로 분류돼도 경제적 자립이 어려운 청년, 소득이 끊긴 중장년, 가족이 있어도 돌봄이 부재한 노인 등 다양한 위기계층이 실제로 지원에 접근하지 못하는 일이 반복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비자발적 다인가구가 행정 기준에 가려 실제 생활의 고립과 빈곤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복지 현장 관계자도 “독립할 경제 여유가 없는 청년, 질병이나 실직으로 소득이 끊긴 중장년, 돌봄 없이 방치된 노인 등, 실제 복지 사각에 놓인 이들 대부분이 통계상 다인가구라는 이유로 지원에서 배제되고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