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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의 거리 한복판에서 울려온 피해자들의 수요집회. 그 지난한 삶과 투쟁, 그리고 우리 사회의 시선은 무엇을 묻고, 무엇에 답해왔는가.  

일본군 '위안부'라는 이름은 1932년 상하이에서 시작된 전시 성노예제도의 조직적, 구조적 착취를 상징한다. 일본군의 '위안소' 정책은 침략전쟁의 일환이자, 여성의 인격을 물건으로 취급하고 식민지 여성까지 범죄에 동원했다. 피해자들은 질문했다.  

"이 끔찍한 국가 범죄에 일본인들은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하지만 일본의 '응답' 소녀상 철거 요구, 책임 회피, 매스미디어의 역사 왜곡은 수십 년간 이어졌다. 여기에 일부 한국 지식인은 나지막이 ‘모든 일본인을 미워해서는 안 된다, 진짜 해결을 위해선 피해자가 양보해야 한다’는 ‘화해론’을 내세웠다. 이런 타협의식을 피해자들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 문제는 반일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존엄의 회복’이라는 가장 본질적이고 보편적인 정의의 문제다.

『제국의 위안부』 같은 저작은, 피해자의 목소리가 아닌 ‘피해자 양보론’을 배경으로 초국적 수준의 ‘화해담론’·‘역사수정주의’에 힘을 실었다.

박유하 교수는 피해자를 ‘동지적 관계’ ‘자발성’ ‘매춘’ 등으로 해석하며, 오히려 일본군 “강제는 없었고 구조적 폭력에 일본과 조선 모두가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고, 소송 국면에서는 “내 주장을 오독했다, 내게 비판을 가하는 자들은 학문권력 내 민족주의의 광기에 휘둘리는 자들”로 몰았다.

그러나 실제로 저서 곳곳은 근본적으로 논리적 모순과 의도적 양면 서술(“정신대 소문은 오해, 거짓이 아니었다, 식민지 공포가 낳은 오해” 등)이 반복돼 온전한 역사적 책임과 반성을 회피한다.

이런 식의 담론은 피해자 분노와 사회적 의미, 학문으로서의 검증과 비판을 “감정적 오독” 또는 “집단 광기”로 몰아가는 비열함에 불과하다. 그 결과, 피해자나 대중을 ‘반일민족주의자’로 매도하는 것은, 인권의 최후 방어장벽마저 허물고 힘의 논리와 사회적 폭력을 또다시 재생산하는 일이다.

과거청산은 ‘위로부터 내려온 타협적 과거사 정책’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기억·직접적 대면, 피해자 주체의 존중으로부터 시작된다. 피해자는 단순 통계가 아니라, 인권의 주체로서 세상에 목소리를 내는 존재다.

한국 사회가, 혹은 학문과 언론이 <제국의 위안부> 같은 담론을 실무나 명예의 자유 뒤에 용인할 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누가 말할 권리가 있고, 누가 침묵당했는지’다.

비판적 학문과 시민사회의 책무는, 피해자의 인간성이 왜곡되지 않도록 ‘오독’이란 말로 모든 의문을 덮지 않는 데 있다.

힘의 논리를 정당화하는 지식인의 비겁함, 피해자 역사와 기억을 희롱하는 사법의 폭력 앞에, 우리가 말해야 할 것은 정의다.

이것이 바로 사회가 야만을 넘어 인간다움으로 나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며, 진정한 과거청산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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