핏자국 보았니? 시간이 지나도 공범이었던 동료들에게 반복해서 물었던 이야기

사진=최인기 빈민운동가
사진=최인기 빈민운동가

[뉴스클레임] 사진은 2017년 '인권재단 사람'에서 운영하는 남산안기부 인권기행 중 일부다.

최근 ‘국가보안법’ 폐지를 둘러싼 여론이 재점화 되고 있다. 내친김에 이어가면, 1994년 서강대 박홍 총장의 주사파 발언 후 파문이 있었고 “한총련 뒤에는 사노맹이 있고, 그 뒤에는 북한의 사로청이 있다”는 식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당시 운동권의 노선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정말 황당한 발언이었다.

보통 80년대와 그이전에는 비공개 비합법 조직에 대한 침탈이 있었다면, 90년대엔 많은 조직이 합법 공개 활동으로 전환하던 시절이었고, 따라서 진보적인 단체들이 국가보안법의 먹잇감이 되곤 했다.

단체에서 공개 강의를 하면 국정원과 대공분실 그리고 기무사에서 동시에 조직원을 보내 동향을 파악하게 했다.

안기부는 박홍 총장의 발언이 시작되자 '미국의 매카시 바람'처럼 대대적으로 국가보안법을 적용해 사건들을 만들었다.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 는 구호는 안기부 지하 취조실  입구에 걸려 있었다.

끌려들어 갈 때 묘한 기분이 들게 했다. 누가 음지고 누가 양지란 말인가? 지하로 향하는 철문이 열리자 일자 형태로 복도가 양옆으로 뚫려 있었고, 방마다 폐쇄된 밀실이 있었다.

방안은 소음을 차단하기 위해 방음벽으로 되어 있고, 화장실도 자해를 막기 위해 변기와 벽에 스펀지로 둘둘 말아 있었다. 약 4평가량의 방에는 책상과 작은 침대가 놓여 있었으며 천장과 붙어 있는 창문이 있었지만, 하늘은 볼 수 없었다. 8월이 끝나가던 날이라 바깥에서 매미 울음소리가 들렸던 거 같기도 하다.

구로지역에서 활동하던 나는 지역 사업장 실태조사와 활동가 동향을 플로피 디스크에 저장해 놓았는데, 연행되던 날 뺏기지 않으려 저항했다. 이로인해 부천 집에서 남산 안가까지 옷으로 얼굴을 가리 우고, 손을 수갑으로 결박당한 채 얼굴과 목은 안기부 직원의 무릎과 차에 처박혀 끌려가야 했다.

푸른색 체육복으로 갈아입혀 한 명의 조사관이 책상에 앉아 취조하고, 우측에 젊은 조사관이 앉아 나의 태도를 관찰했다. 처음부터 빡빡하게 질문하고 답하는 방식으로 며칠을 조사하다 나중에는 살아온 전 생애를 백지에 반복해 쓰게 했다. 이들은 이미 노트북을 닮은 컴퓨터 같은 것을 사용했었는데 그야말로 복장과 말투까지 영화 속 한 장면이었다.

플로피 디스크는 이틀쯤 되던 날 모두 복구됐다. 이를 알리려고 식사를 마친 후 감시가 소홀해진 틈을 타 나무젓가락을 싸고 있는 종이에 메모하여 면회하러 온 가족에게 전달하려다 발각됐고 뺏기지 않으려고 물컵을 던지는 등 저항했다.

그러자 조사관이 나에게 행동 하나하나 모두 녹화되어 있다고 말하며 진정시키려 들었다. 나는 한동안 ‘묵비권’을 행사하자 바닥에 무릎을 끓기고 목을 조르거나 벽을 향해 오랜 시간 세워두었다.  "예전 같으면 너는 살아 못 나간다"는 말로 협박도 했다. 그때 분명 흰색 벽에 희미하게 붉은 핏자국을 보았다. 이 이야기는 오랜 세월이 지나도 공범이었던 동료들에게 반복해서 묻는 이야기가 됐다.

너희도 봤니? 내가 본 그 핏자국이 사실이었을까? 착각은 아니였을까?

가장 고통스러웠던 점은 열악한 노동현장에서 묵묵히 활동하던 또 다른 활동가들에게까지 불똥이 튀었다. 나로 인해 구로지역에서 수년째 활동하던 학생 출신으로 위장취업을 한 활동가들이 사업장을 그만두고 뿔뿔이 떠났다. 그중 구로지역 마이크로세라믹에 다니던 여성 활동가는 올봄 지인 아들의 결혼식에서 다시 만났다. 그녀는 같은 사업장 노동자와 결혼해 자녀를 두고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김영삼 정부 들어 안기부의 고문은 과거처럼 폭력적이진 않았지만 여전히 진행됐다. 잡혀 오는 과정부터 저항하고 뭔가 미심쩍은 행동을 한 나를 잠을 안 재우는 방식으로 괴롭혔다. 취침 전 손목에 찬 시계로 몇 시인지 보여주고, 깨우면서 몇 시라는 것을 확인시켜줬다. 나는 시간의 흐름을 전혀 알 수 없었다. 다만 졸음과 싸우며 조사를 받았다. 약 보름 가까이 밀폐된 남산 안기부에서 조사받고 서울구치소로 입감되는 날 쏟아지는 잠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후에 알았지만, 잠을 재우지 않는 ‘고문’의 일종이었다.

1995년 34년 동안 ‘남산 시대’를 이어온 안기부는 ‘내곡동’으로 장소를 옮기고, 김대중 정부 들어 1998년 현재의 ‘국정원’으로 바뀌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들은 이제 음지에서 양지로 나왔을까?

그후에도 지금까지 국가보안법은 여전하고 변한 게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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