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클레임]
아파트를 지키는 경비원. 좁은 경비실 공간에서 주변 청소, 택배업무 등 잡다한 업무를 해결한다.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임에도 경비원에겐 더운 여름날 시원한 에어컨 바람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관리비 올라서 싫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입주민들이 뜻을 모아 경비실에 에어컨을 설치해줬다는 미담은 어렵게 않게 찾지 않을 수 있다. 평범하다면 평범한 일인데, 미담처럼 소개된다.
평범한데 무거움이 느껴지는 말이 또 있다. "경비 아저씨들도 누군가의 남편이고,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한 명의 소중한 인간입니다."
모르는 말도, 어려운 말도 아닌데 왜 이 문장에서 무거움이 느껴지는 걸까. 그 이유는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바로 떠올랐다.
지난 3월 발생한 사건이었다. 서울 강남의 한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서 70대 경비원이 투신해 숨지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해당 경비원은 사망 전 동료 경비원에게 '관리책임자의 갑질 때문에 힘들다'는 내용의 호소문을 휴대전화로 전송했다.
동료 경비원들은 관리소장이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의 비호 아래 고인을 부당하게 인사조처하고 인격을 모독해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주장했다. 또 3개월짜리 단기계약 등으로 고용 불안에 시달려왔다고 호소하며, 관리소장의 퇴진을 요구했다. 이들은 "10여년간 경비원으로 근무해 온 동료가 부당한 인사 조처와 인격적 모멸감을 견디지 못하고 투신했다"며 "법의 보호와 인격을 보장받는 자랑스러운 일터가 되게 해주시길 호소한다"고 밝혔다.
그로부터 50여일이 지났지만, 달라진 건 없다. 관리소장은 여전히 출근하는데 동료의 죽음을 추모한 경비대장은 해고됐다. 경비원들은 여전히 3개월 초단기 근로계약에 고통받고 있다. 지난달 16일 아파트 관리소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결의대회를 연 후 매주 화요일마다 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소장 등 관리담당자만 경비원에게 갑질을 행하는 건 아니다. 입주민들의 폭언, 멸시, 갑질도 상당하다.
직장갑질119가 지난 3월 발표한 '2023 경비노동자 갑질보고서'에 따르면 심층 면접에 참여한 공동주택 종사 노동자 9명은 입주민 갑질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괴롭힘 내용은 ▲고성·모욕·외모 멸시 ▲천한 업무란느 폄훼 ▲부당한 업무지시·간섭 등이었다.
9명 중 4명은 입주민과 갈등이 발생해 해고를 종용당하거나 강제적으로 근무지를 변경당했다. 다른 2명은 실제 동료가 입주민의 민원으로 인해 근로관계가 종료됐다고 답했다.
면접 조사에 참여한 한 경비원은 "여의도 아파트에서 젊은 입주민에게 차를 "빼달라고 요청했다가 경비 주제에 무슨 말을 하냐며 관리사무소에 이야기해서 그만두게 하겠다며 협박한 경우가 있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경비원은 "입주민이 특별한 이유 없이 밉게 봐서 관리사무소에 가서 '경비원을 다른 데로 보내라, 짤라라'는 해고 종용을 1년 넘게 계속 당했다. 유명한 악성 민원 입주민이라 경비과장, 관리사무소도 이 사실을 알고도 무시했다"며 "결국 근무하던 동을 변경하게 됐다. 최근에도 그 입주민은 갑질을 한다"고 했다.
갑질이 발생해도 경비원들은 신고 등 대응을 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해고의 두려움 ▲해결 능력이 없어 대응을 포기한 경우 등이었다.
한 경비원은 "입주민과 싸우겠다는 것은 사직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무 힘이 없다. 대응방법도 없다"며 "정식 직원이면 뭐라도 하는데 단기 계약이어서 연장이 안 된다"고 토로했다.
직장갑질119는 "위탁관리 구조로 경비, 청소에 대해 용역을 별도로 하는 다단계 구조에서 입주민 갑질이 발생했을 때 노동자들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사용자가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경비원들을 갑질로부터 보호하는 방안으로는 ▲실효성 있는 노동자 보호 체계 마련 ▲직접 서비스 제공받는 입주민 및 입주자대표회의에 대한 책임 강화 ▲직접 고용 구조로의 전환 등을 제시했다.
직장갑질119는 "공동주택관리법에 공동주택 노동자에 대한 금지 행위로 '폭언, 폭행 그 밖에 적정 범위를 벗어난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유발하는 행위를 하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괴롭힘 행위'를 예시로서 명문화하고, 과태료 처분 등의 적극적인 행정 재제를 통해 경비노동자들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 "책임은 회피하고 이윤은 극대화하는 간접고용, 즉 원·하청 구조를 사실상의 중간착취로 보아 불법으로 엄단하는 입법적 대안이 필요하다"면서 "간접 고용이 사라지는 과도기로서 하청업체가 변경되더라도 공간적·인적 동일성이 유지되는 경우 노동자의 고용 승계를 전제해 노동자가 상시적인 고용불안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단이 갖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