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클레임]
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밥은 먹고 다니냐?"
송강호의 애드립이라고 알려진 이 명대사에는 여러가지 해석이 따라붙었다. 끔찍한 사실을 저지르고도 밥이 넘어가느냐느 뜻, 당시 아직 잡히지 않은 진짜 범인에게 던지는 메시지라는 해석 등이다.
여러 해석이 붙는다면, 스태프에게 던지는 메시지라고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창작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스태프들이 없다면 제 아무리 좋은 시나리오, 배우 라인업, 촬영현장이 갖춰져 있어도 명작이 탄생하기란 힘들다. 하지만 일부 영화 스태프들은 낮은 임금과 과도한 근로시간으로 인해 어렴움을 겪고 있다. 영화 제작 현장에선 촬영 일정이 길어지거나 촬영장에서의 무리한 근로가 문제로 대두되기도 했다.
봉준호 감독의 '표준근로게약서 준수'가 미담으로 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그는 그간 표준근로계약을 준수해온 감독으로 주목받아왔다.
이에 대해 봉준호 감독은 "표준근로정착에 있어서 저희만 특별한 선구자적 노력을 했던 건 아니다. 국내 영화계에선 2014~2016년부터 논의가 됐고, 2017년 정도부터는 근로 시간이나 급여에 대해 잘 정리돼서 전체 영화계가 그렇게 움직여는데 규정을 지키면서 작업을 잘 해냈다"며 "TV, 드라마 쪽도 그런 논의가 진행된다고 들었고 빨리 협의가 잘 이뤄져서 영화계처럼 표준근로제가 정착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실제 봉 감독의 말대로 지난 10년간 영화산업 스태프의 노동환경이 완만하게 개선되고 있었다. 종사자의 참여 작품 수와 종사기간이 늘어나는 등 고용이 안정되고 작업시간이 감소했으며 수입이 증가했다는 실태조사 분석결과가 나왔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는 지난 12일 월간 이슈페이퍼에서 최근 10년간의 영화스태프 노동조건 실태 추이를 이같이 분석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2012년부터 2022년까지 총 9차례 진행한 영화스태프 근로환경 실태조사를 살핀 결과다.
1주 작업일수와 하루 작업시간을 곱하면 1주 작업시간을 추정해볼 수 있는데, 1주 작업시간을 계산해 보면 2022년 기준으로 57.1시간이다. 이는 근로기준법상 주당 최대 한도인 52시간을 초과한 것이다.
하루 작업시간은 2022년 평균 11.1시간이었다. 1일 8시간 근로기준을 3.1시간 초과한 것으로 지속적인 개선이 필요하지만, 2012년 13.9시간에서 2.8시간이나 감소해 상당한 개선이 이뤄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2022년 기준으로 1주 야간 작업일수를 구간별로 살펴보면 '1일~2일 미만'이 47.1%로 가장 많았다. '2일~3일 미만'은 28.3%, '3일~4일 미만'은 15.5%였다.
하루 작업시간과 달리 1주 야간작업시간은 2012년 5.5시간에서 2022년 5.7시간으로 0.2시간 증가하는 등 개선된 것으로 보기 어렵다. 202년 기준 1주 야간 작업시간을 구간별로 나눠서 보면 '6시간~8시간'이 39.5%로 가장 높았다. 이어 '3~5시간' 36.1%, '3시간 미만' 18.7%, '9시간 이상' 5.6% 순으로 나타났다.
부당행위를 당했다는 스태프들도 꾸준히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1년간 '스태프로서 당한 부당행위'에 어떤 것이 있는지 조사한 결과(복수응답 허용), '없다'는 응답은 2022년 63.3%로 가장 높았다. 2012년 29.8%와 비교하면 2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부당행위를 경험한 응답자들은 '폭언·욕설·폭행'(11.9%) 등을 가장 많이 선택했다. 2016년과 비교해 점차 감소하고 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가장 심각한 부당행위 중 하나였던 '임금체불'은 2012년 39.3%에서 2020년 4.7%, 2022년 2.7%로 감소했다.
4대보험 가입율은 2012년 29.1%에서 2018년 78.1%로 증가했고, 2022년까지 유사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2022년 기준으로 4대보험에 가입했다고 응답한 비율이 높은 부서는 소품(89.3%), 미술(87.2%), 의상(85.7%), 조명(85.3%) 등이었다. 반면 제작(65.4%), 동시녹음(64.0%) 등 부서는 4대보험에 가입했다는 응답률이 70% 미만이었다.
4대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고 응답한 스태프들에게 그 사유를 물어보자 '사업주가 원하지 않아서'라는 응답이 대체로 가장 높았다. 2022년 조사에선 '근로계약을 작성하지 않거나 용역계약이라서', '넷플릭스 또는 드라마라서', '예술인보험 가입자' 등의 응답이 있었다.
4대보험 가입률은 증가했지만, 2022년 조사에서 '최근 1년간 실업급여를 지급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19.2%에 불과했다. 실업급여 받은 경험이 없다는 비율은 무려 80.8%였다. 실업급여를 미수급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는 '실업상태에 있지 않아서'가 66.8%로 가장 높았다. 이는 참여 작품 수의 증가로 인해 구직활동이 불필요했기 때문이라고 풀이된다.
정리해보자면, 지난 10년간 영화 스태프들의 참여작품 수와 종사기간이 증가됐고, 영화 제작 참여로 얻은 수입도 꾸준히 늘었다. 다만 실질임금으로 계산할 때 영화 스태프 임금은 2018년까지 임금노동자 전체의 임금상승률보다 높게 상승했지만, 2022년 이후 보수수준의 정체 또는 감소가 나타났다.
또 작업시간 측면에선 1주 작업일수, 1주 야간작업일수, 1일 작업시간은 감소 추세가 명확히 확인됐다. 4대보험 가입률도 70%대로 증가했고, 2022년까지 유사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스태프들이 당한 부당행위가 현재 진행 중이라 직장내괴롭힘 예방과 성차별, 성희롱, 성추행 예방을 위한 노력이 필요해보인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는 "영화스태프 근로환경 실태조사 결과를 연도별로 살펴볼 때 임금과 작업시간 등 중요한 근로조건에서 최근 10년간 상당한 개선이 이뤄졌다. 영화산업에서 종사자의 처우가 크게 개선된 것은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영화산업 노사정이행협약, 영화비디오법에 사회적합의의 중요한 사항을 명문화한 법률 개정 등이 주요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정부는 취약계층의 보편적 노동권보호와 취약근로자 보호 강화를 국정과제로 제시한 바 있다. 취약근로자 지원을 위한 다양한 정부 정책들이 어떤 성과를 내고 있는지 등은 결국 실태조사를 통해 확인될 수밖에 없다"면서 "매년 정기적으로 실태조사를 추진한 사례를 살펴볼 때, 취약 노동자가 많은 업종에서 처우개선과 노동환경의 개선은 정기적 실태조사를 통해 단초가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