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클레임]
4월부터 6월까지 석 달 계획의 통영 여행이 보름 정도 남아 있을 때였다. 6월 초 두 번째 욕지도를 걷고 나서 마음이 급해져 매물도와 소매물도를 걸었다. 이제 연화도와 비진도를 걸으면 통영 바다의 주요 섬 걷기가 끝난다. 그런데 여전히 욕지도가 마음에 걸린다. 욕지항을 감싸고 있는 또 하나의 봉우리인 약과봉을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삼덕항을 출발하는데 날씨가 참 좋아서 멀리까지 시야가 또렷했다. 대기봉에 오르면 동쪽의 바다경치가 멀리까지 잘 보일 듯했다. 바다 안개에 슬쩍 숨은 모습을 보았으니 이번엔 욕지도의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있을 듯했다.

이번엔 욕지항을 굽어보는 대기봉까지 모노레일을 이용했다. 통영에서는 미륵산 케이블카와 욕지도 모노레일을 관광객들에게 애써 알리고 있어 처음 욕지도에 오기 전부터 알고는 있었다. 다만 하필이면 기존에 있던 등산로를 폐쇄하고 그 자리에 설치한 모노레일이 그리 달갑지 않아서 두 번이나 와서도 애써 모른 체 했었다.
그해 11월 말 이 모노레일에서 사고가 나 타고 있던 사람들이 다친 뒤 현재까지 1년 9개월째 운행이 중단되어 있다. 들리는 소식으로는 다시 시공해서 머지않아 다시 운행할 계획이라고 한다.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산꼭대기에 올랐다. 기대 이상의 전경이 펼쳐져 있었다. 바다 안개가 거의 없어 그간 걸었던 욕지도 동쪽 산줄기와 해안의 모습이 또렷했다. 산줄기가 감싸 안은 바닷길이 북쪽에서 빠끔히 열려 욕지항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조금 떨어진 바다엔 연화도의 모습이 길게 펼쳐져 있고 멀리 아스라이 매물도와 소매물도까지 한 눈에 들어왔다.

천왕봉 계단도 다시 올라 욕지도 서쪽의 풍경을 멀리서 다시 한 번 보았다. 적어도 저 아래 바닷가에서 바라보는 석양은 일출만큼이나 아름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꼭 걸어야 할 약과봉 입구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온 까닭에 산 위에서의 경치에 취해 긴 시간을 보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욕지도 전체 등산길이 표시된 지도를 우연히 보고 카메라로 찍어 둔 덕에 약과봉 가는 길 입구를 의외로 쉽게 찾았다. 임도에서 숲속으로 길의 흔적이 어렴풋했는데 얼마 가지 않아 시금치재를 소개하는 표지판을 만났다. 여기서부터는 외길이니 길 잃을 염려는 없다.

시금치재는 천왕봉과 약과봉 사이의 고개다. 동항(욕지항)과 서쪽 서산리의 북쪽 도동으로 가는 길과 남쪽 덕동으로 가는 길이 여기서 갈라진다. 이제는 해변의 순환도로가 있으니 모두들 차를 타고 다니기 때문에 이 고개를 넘어 다니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옛날에 있었다던 서낭당도 보이지 않고, 오가던 사람들이 던져놓아 쌓였다는 커다란 돌무더기 위에는 덤불이 우거져 있다.

약과봉은 우뚝 솟은 산봉우리가 아니었다.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경사진 숲길을 걷다가 약과봉이라는 표지판을 만나고 나서야 약과봉에 닿았음을 알게 된다. 시금치재에서부터 그리 멀지 않은데, 걸으며 보니 좌우에 많은 무덤이 수풀에 덮여 있었다. 아마도 욕지도 사람들의 공동묘지인 듯했다.
표지판 뒤로 몇 걸음 더 올라보니 대기봉보다 훨씬 낮은 약과봉에서의 욕지항 전경이 장관이다. 욕지항 뒤의 마을이 훤하게 보이고 항구 앞바다와 일출봉까지의 땅줄기는 물론 그 너머의 연화도가 가깝게 보인다. 참 편안한 경치다.

능선을 잠깐 걷고 욕지항을 향해 숲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느닷없이 어디서도 보기 어려운 숲속의 황홀경에 빠졌다. 축축한 땅엔 키 낮은 풀이 가득하고 둘러선 나무마다 덩굴이 기어오르고 있어 온통 고요한 초록세상이다. 길에 사람이 다닌 흔적도 거의 사라졌다. 문득 중국 당나라 시인 이백의 시가 생각났다.

問余何事栖碧山 문여하사서벽산
笑而不答心自閑 소이부답심자한
桃花流水杳然去 도화유수묘연거
別有天地非人間 별유천지비인간
어찌해 푸른 산에 사느냐고 묻기에
대답 없이 그저 웃으니 마음은 한가해.
복사꽃 물 따라 멀리 흘러가니
사람이 사는 곳과는 다른 세상이라.
온통 초록으로 물든 고요한 숲속에서 문득 마음이 한가해지며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을 보았다.

글쓴이 오근식=1958년에 태어나 철도청 공무원, 인제대학교백병원 그리고 건국대학교병원에서 일했다. 2019년 2월 정년퇴직하고 걷는 여행 중이다. 퇴직 첫 해 제주에서 1년 동안 걸었고 다음엔 고창에서 석 달 걸었다. 그리고 세 번째 여행지가 통영이었다. 현재는 부산 오륙도 선착장에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750 킬로미터의 해파랑길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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