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클레임]
해파랑길 시작되는 약 5km의 이기대 해안산책로는 울창한 숲, 문득 스치는 상쾌한 바람, 멋진 해안과 바다경치, 멀리에서 기다리는 광안리와 해운대의 초고층 건물들까지 합세해 걷는 이를 행복하게 해주고 있었다. 걸으며 이보다 더 큰 호사가 또 없을 듯했다. 게다가 길을 벗어날 염려도 없으니 그저 편안했다.

해안산책로가 끝날 때쯤 출렁다리를 건너고 굽은 길을 돌아가니, 퍼뜩, 전혀 다른 세상으로 풍덩 빠져든다. 길이 이리 갈라지고 저리 향하니 아직도 낯선 해파랑길 안내 리본과 스티커를 찾아 두리번거려야 하고, 가까운 곳에 보이지 않으면 스마트폰을 꺼내 길을 찾아야 하니 피로가 배가된다. 언제 숲 속에 있었는지 까마득히 잊었다. 해운대해변까지는 길이 바닷가를 크게 벗어나지 않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광안대교의 웅장함과 그 뒤로 보이는 초고층 건물들이 걷는 내내 지켜보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바다 위를 높이 가로지르는 다리는 더욱 웅장해지고 건물들은 커졌다. 초고가의 차들이 길가에 아무렇지도 않게 늘어서 있다. 해는 많이 남아 있었지만 더위가 여전히 심했다. 동백섬 입구에서 해파랑길 첫날 걷기를 마쳤다.

두 번째 날 오전 동백섬으로 들어갔다. 소나무와 동백나무 숲이 울창한 멋진 숲이다. 그 숲 사이로 산책로를 굽이굽이 잘 닦아 놓았다. 사람들이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하늘과 나무와 숲을 살핀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되어 느릿느릿 걸었다.
갈맷길 안내 표지판이 보인다. 갈매기와 길을 합성해 갈맷길이라는 명칭을 만들었단다. 해파랑길도 부산에서는 기장까지 바닷가의 갈맷길과 함께 간다. 2009년부터 해안길, 숲길, 강변길, 도심길 등을 조성해 2023년 현재 9 코스 21개 구간의 총 연장 278km를 운영하고 있는데, 기장에서부터 시작해 가덕도까지의 바닷가 길과 부산 북부의 산길로 이루어져 있다.

동백나무 숲 사이로 잘 다듬어진 산책로를 따라 오르면 고운 최치원 선생을 기리는 비석과 동상이 보인다. 이곳에서 고운 선생을 소개하는 글을 찬찬히 읽었다. 자자한 명성에 비해 그에 관해 알고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운은 12살에 중국으로 건너가 29살에 귀국해 신라의 변화를 모색했으나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기 불가능함을 깨닫고는 만년에 은둔의 삶을 택했다. 그의 발자취는 경주 남산, 합천 청량사, 지리산 쌍계사 등에 남아 있다. 특히, 함양의 상림을 조성해 홍수 문제를 해결했다. 천년이 훨씬 더 지난 지금 상림은 더욱 더 아름다워지고 있다. 이곳의 지명인 해운대는 그의 호 해운(海雲)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2005년 APEC 정상회담을 개최했던 누리마루를 둘러보고 바닷가에 서니 멀리 태종대까지 바라보는 맛이 시원하다. 돌아나오며 고운 시대에 새겼다는 암각자, ‘海雲臺(해운대)’를 보려했으나 접근이 어려워 보여 포기했다. 동백섬의 산책로를 걸으며 도심길에서의 자동차 소음과 배기가스 냄새와 시멘트 구조물로부터 잠시 벗어나 평온함을 되찾았다.

해운대 백사장길에 접어들어 암각자 ‘海雲臺’의 모각을 잠시 보고 걷다보니 ‘돌아와요 부산항에’ 노래비가 눈에 띄었다. 통영의 서피랑공원에는 ‘돌아와요 충무항에’라는 노래비가 있다. 통영 출신의 가수 김성술이 작사하고 황선우가 작곡했다고 소개한다. ‘꽃 피는 미륵산에 봄이 왔건만 님 떠난 충무항은 갈매기만 슬피우네. 세병관 둥근 기둥 기대어 서서 목메어 불러 봐도 소식 없는 그 사람...’ 이 노래를 작사하고 불렀던 김성술은 26세 때인 1971년 서울 대연각호텔 화재 사고로 사망했다. 그 후 ‘돌아와요 부산항에’로 노래 이름과 가사가 일부 바뀌어 조용필을 통해 잊혀지지 않을 국민가요가 되었다.

노래비를 지나며 나지막하게 읊조려 본다. ‘꽃 피이는 미륵산에 봄이 왔거어언만 니임 떠난 충무항은...’ 해파랑길1코스 걷기를 김성술의 노래와 함께 해운대백사장 중간쯤에서 마무리 되었다. 16.9km인데 실제 체감 거리는 훨씬 더 멀었다.

글쓴이 오근식=1958년에 태어나 철도청 공무원, 인제대학교백병원 그리고 건국대학교병원에서 일했다. 2019년 2월 정년퇴직하고, 제주 올레, 고창과 통영의 길과 섬을 걸었다. 이후 해파랑길 750km를 걷기 여행을 마치고 현재는 1470km의 남파랑길에 위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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