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리 해파랑길… 해파랑길16코스②

철구조물에 조명을 설치해 포항의 야간 명소가 태어났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철구조물에 조명을 설치해 포항의 야간 명소가 태어났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뉴스클레임]

호미곶에서 연오랑세오녀테마공원까지 해파랑길15코스와 해파랑길16코스 일부까지는 호미반도 영일만 해안길의 아름다운 바다건너 풍경과 해안의 기기묘묘한 바위와 절벽을 보고 즐기느라 힘든 줄 모르고 걸었다. 해파랑길16코스를 연오랑세오녀테마공원까지 끊은 이유는 단 하나, 택시호출이 쉬울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늦은 오후 택시를 불러 호미곶 주차장에 가서 세워두었던 차를 타고 포항 영일만의 해안도로를 따라 송도해수욕장까지 오다가 본 석양이 기억에 남은 날이었다.

16코스가 끝나는 송도해수욕장 근처에 숙소를 잡았다. 낯선 거리에서 날이 이미 어두워지기 시작했으니 눈에 들어오는 제법 큰 모텔로 들어갔다. 숙박비는 예상보다 저렴했고, 주차장도 넓었으며 방도 깔끔하고 시설도 나무랄 데 없었다. 저녁 먹고 창밖을 보니 멀리 포항제철의 야경이 일부 눈에 들어왔다. 카운터에 부탁해 옥상에 올라서서 보니 이 근처에서는 가장 높은 곳이어서 시야를 방해하는 건물 하나 없이 야경이 멋지게 펼쳐진다. 운이 좋아 마주한 또 하나의 행운이었다.

연오랑세오녀테마공원은 신라시대에 있었다는 전설에 기초해 다양한 볼거리를 마련해 두었지만, 바다 건너에 어렴풋하게 보이는 포항시 모습이 단연 최고의 볼거리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연오랑세오녀테마공원은 신라시대에 있었다는 전설에 기초해 다양한 볼거리를 마련해 두었지만, 바다 건너에 어렴풋하게 보이는 포항시 모습이 단연 최고의 볼거리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다음 날 아침 비교적 이른 시간에 연오랑세오녀테마공원을 다시 찾아갔다. 송도해수욕장까지 남은 거리는 14km 정도였다. 출발하기 전 공원 안내문을 살펴보았지만, 개인적으로 크게 흥미를 가질 만한 내용은 없었다. 이 전설에 가까운 이야기를 전날 걸으며 이미 읽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공원에서 바라보는 바다건너 풍경은 여전히 아련히 아름다웠다. 아마도 호미곶반도의 영일만 해변 가까이 사는 사람들도 늘 같은 느낌으로 바다건너를 바라보았을 것이다.

호미곶해안길이 끝날 무렵 작은 항구근처에서 만난 고목이 묵묵히 이 마을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전하고 있었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호미곶해안길이 끝날 무렵 작은 항구근처에서 만난 고목이 묵묵히 이 마을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전하고 있었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공원을 벗어나 아직은 다듬어지지 않은 마을을 지났다. 작은 포구가 있고 커다란 나무를 보아 꽤 오래된 마을인 듯했다. 모래밭 길이가 거의 3km에 가까운 도구해수욕장에 서면 영일만 입구가 정면으로 보이고 포항제철의 건물이 조금 더 잘보이기 시작한다. 겨울이 가까운 때였는데 이미 다음해 여름을 준비하느라 덤프트럭이 계속 들어와 싣고온 모래를 내려놓고 있었다. 편의시설 공사도 곳곳에서 진행중이어서 어수선했다.

도구해수욕장 초입에 서니 지나온 연오랑세오녀테마공원과 그 너머의 영일만 입구가 내다 보인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도구해수욕장 초입에 서니 지나온 연오랑세오녀테마공원과 그 너머의 영일만 입구가 내다 보인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아직은 어린 소나무가 울창한 방풍림을 지나며 우렁찬 함성을 들었다. 군에 입대한 신병들이 훈련을 받고 있는 듯했다. 오래 전, 아주 오래 전에 강원도 깊숙한 곳에서 훈련을 받던 여름날을 생각하며 걸었다. 이제는 아들이 병역의무를 마친지 오래 되었으니 이 군인들은 아들보다 훨씬 나이가 어릴 것이다. 어느새 아들보다 어린 젊은이들의 보호를 받는 나이가 되었다. 저 어린 젊은이들의 희생을 고마워하며 살아야 할 노인이 되어가고 있음을 문득 다시 깨닫는다. 힘들고 고단해도 건강하고 씩씩하게 견뎌내기를!

백사장 길이가 약 3km에 이르는 도구해수욕장엔 아직은 어린 모습의 소나무들이 서로 얽혀 영일만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아주고 있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백사장 길이가 약 3km에 이르는 도구해수욕장엔 아직은 어린 모습의 소나무들이 서로 얽혀 영일만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아주고 있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포항제철 근처 마을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다시 길을 나서는데 피로가 몰려온다. 오른쪽은 울타리로 심은 나무가 높고 왼쪽엔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들이 이어진다. 커다란 트럭이 지날 때마다먼지 바람이 일었다. 이미 울산에서 현대자동차공장과 조선소 담장길을 걸으며 경험을 했었지만 이러한 도심 길 걷기는 쉽지 않다. 

제철소 담장길은 끝이 없는 듯 계속되다가 형산강에 이르러서야 방향을 바꾸었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제철소 담장길은 끝이 없는 듯 계속되다가 형산강에 이르러서야 방향을 바꾸었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거의 5km 넘는 지루한 길 끝에서 강을 건너는 다리를 만났다. 형산강이 흘러와 영일만을 만나고 있었다. 다리를 건너 다시 영일만 바다를 향해 곧게 뻗은 강둑길을 걸었다. 잘 정돈된 길에서 사람들은 자전거를 타거나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강둑 아래 넓은 평지에선 사람들이 파크골프에 열중하고 있었다. 잔잔히 흐르는 강 건너 제철소의 구조물들이 잘보인다. 어제 밤 야경으로 보았던 그 구조물이다.

형산강을 건너 바다를 향해 걷는 강둑 길에서 정면에 보이는 건물이 포항운하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포항운하관이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형산강을 건너 바다를 향해 걷는 강둑 길에서 정면에 보이는 건물이 포항운하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포항운하관이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강둑을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정면에 보이기 시작한 건물 가까이 와서 보니 ‘포항운하관’이다. 포항운하는 2014년 준공되었고 북쪽 영일대해변의 포항구항에서 죽도시장 앞을 지나 운하관 근처의 형산강으로 이어지는 1.3km의 물길이다. 땅을 파서 없던 물길을 새로 낸 것이 아니라 본래 있었지만 포항제철이 들어서며 사라졌던 물길을 복원해 이 일대의 옛 모습을 되살렸다고 한다. 산업 또는 상업용 선박을 위한 물길이라기보다는 레저와 관광을 위한 길이다. 

포항운하관에는 이 물길을 복원할 당시 이곳에 터를 잡고 생활했던  상인들과 주민들의 이름을 벽에 새겨두었다. 그들의 양보와 협조 덕에 많은 사람들이 이 운하 가장자리의 길을 즐기고 있다. 운하의 야경이 멋지다고 하는데, 어두워지면, 특히, 타지에서 절대로 외출을 하지 않으니 누군가 찍어서 공개한 사진으로만 즐겼다.

구룡포와 호미곶 해안길, 도구해수욕장과 송도해변, 포항운하, 영일대해변 등 포항이 철강도시에서 멋진 관광도시로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형산강변길이 끝나고 포항의 새로운 명소로 떠오르는 송도해수욕장으로 들어서기 전 만난 조형물이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형산강변길이 끝나고 포항의 새로운 명소로 떠오르는 송도해수욕장으로 들어서기 전 만난 조형물이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글쓴이 오근식=1958년에 태어나 철도청 공무원, 인제대학교백병원 그리고 건국대학교병원에서 일했다. 2019년 2월 정년퇴직하고, 제주 올레, 고창과 통영의 길과 섬을 걸었다. 이후 해파랑길 750km를 걷기 여행을 마치고 현재는 1,470km의 남파랑길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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