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길31코스

[뉴스클레임]
해파랑길31코스는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의 무덤이 있는 궁촌에서 맹방해수욕장 입구까지 9.5km의 길이다. 궁촌에서 바다를 슬쩍 보고는 맹방해변에 이르러서야 다시 만난다.
초곡항과 궁촌항은 직선거리로 3km가 채 되지 않는데 바닷가 백사장으로 이어져 있다. 동해안의 다른 해수욕장이나 관광지와 비교하면 거의 개발이 되지 않은 해변이나 다름없다. 특히 궁촌항 주변엔 변변한 숙박시설은 거의 없고 주민들이 운영하는 민박집이 몇 있을 뿐이다. 2024년 말 삼척과 포항을 잇는 동해선 철길이 열리고 초곡항과 궁촌항 중간쯤에 근덕역이 문을 열면 알음알음 이곳의 멋진 백사장과 방풍림을 알고 찾아오는 이들이 늘어날 듯하다.

해파랑길31코스는 삼척의 공양왕릉을 이야기하기 위한 길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이 길이 시작되는 곳에서 동쪽으로 약 200여 미터의 언덕에 공양왕의 무덤이 있다. 언덕이 동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아주고 남쪽에서 서쪽으로 살짝 방향을 틀고 있으니 사철 볕이 좋은 곳이다.
이날 해파랑길30코스 7.1km를 걷고 그대로 하루를 마무리하기는 아쉬워 31코스를 이어서 걸었다. 31코스 주변에 관한 사전 조사를 전혀 하지 않고 즉흥적으로 계속 걷기를 결정한 탓에, 주변에 레일바이크 궁촌정거장만 보았을 뿐 200여 미터 떨어져 있는 삼척공양왕릉에 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 채 걸어 나갔다. 그리 길지도 않고 걷기에 어려운 지형도 아니지만, 오후가 되어 새로운 코스를 걷기 시작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바빴다.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은 걸음이었다.

공양왕은 고려의 마지막 왕이다. 이성계를 중심으로 한 세력이 고려의 실권을 차지하고, 평범하게 살고 있던 그를 찾아내 왕의 자리에 앉혔다. 왕이 되기를 원하지 않았던 필부였다. 공양왕을 통해 새로운 나라 건설을 위한 기반을 다진 후, 공양왕은 폐위되었다.
45세에 왕위에 올라 2년 8개월 만에 이성계에게 양위하고, 그는 공양군이 되어 강원도 원주에 유배되었다. 간성을 거쳐 1394년 최후로 유배된 곳이 삼척 궁촌리다. 이곳으로 유배되고 한 달쯤 후에 공양군은 일행과 함께 살해되어 이곳에 묻혔다. 궁촌리의 공양왕릉은 4기의 봉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공양왕릉과 왕자의 무덤 2기, 시녀 또는 말의 무덤 등이다.
이 무덤들은 조선말 현종 때인 1662년 정비되고 1942년 2차 정비 후 1977년 현재의 봉분 형태로 정비되었다고 한다. 1977년 정비할 당시 기초발굴을 추진했으나 마을 원로들의 반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분묘 내부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공양왕의 유배와 사망은 이곳의 지명과 풍습에도 반영되어 있다. 왕이 유배되어 머물던 마을이라 해서 궁촌이라는 지명을 얻었고, ‘궁기’는 공양왕의 아들이 살았던 곳, ‘원평’은 마방이 있던 곳이다. 또, 궁촌리에서 3년마다 어룡제(漁龍祭)를 지내는데, 이 제를 지내기 전에 반드시 이 무덤에서 먼저 제사를 지내오고 있다.
공양왕릉은 경기도 고양시에 하나 더 있는데, 현재까지는 이곳이 공식적인 공양왕릉, 고릉이다. 『세종실록』의 기록을 근거로 문화재청에서 공식 인정했고, 1970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삼척의 공양왕릉은 처음 묻힌 곳이고, 고양시의 묘는 조선왕실에서 시신을 확인하기 위해 불러올린 뒤 이장한 곳으로 추정하고 있다.

해파랑길31코스 시작점에서 몇 걸음 걷지 않아 2차선 도로를 걷기 시작했다. 꽤 긴 오르막길이다. ‘황영조 국제마라톤 공인코스’라는 안내 표식이 보인다. ‘사래재’라는 이름을 가진 고갯길이다. 고개 너머 마읍천 가의 동막리까지 약 2.5km를 걷는다. ‘사래재’는 본래 ‘살해재’라 했는데 공양왕이 이곳에서 살해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황영조와 공양왕의 흔적을 보고 사래재를 넘으면 동해로 흘러가는 마읍천을 따라 걷는다. 바다가 그리 멀지 않은 듯 물은 잔잔하게 흐르고 있는데 꽤 큰 물고기 떼가 뒤엉켜 있다. 첨벙첨벙 소리가 들리는 듯 움직임이 격렬하다. 알을 낳기 위해 바다에서 강을 거슬러 오르고 있는 황어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이 물고기가 맛과 식감이 볼품없어 사람들이 잡지 않는다고 한다. 그 덕에 길을 걸으며 힘차게 요동치는 물고기 떼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는 특별히 기억할 만한 일 없이 마읍천이 동해와 만나는 곳 근처까지 걸었다. 이제는 하천 폭이 넓어졌고 물은 마치 호수처럼 잔잔했다. 서쪽 산 위의 햇살이 잔물결 위에 반짝이며 부서지는데 그 위로 젊은이 셋이 천천히 미끄러지고 있었다.

마읍천 가에 자연석을 다듬어 글씨를 새긴 비석이 보였고 작은 석판이 몇 개 더 세워져 있었다. ‘원전 백지화 기념탑’이었다. 2010년 삼척시가 원자력발전소 유치 뜻을 밝혔고 거의 동시에 ‘삼척핵발전소반대투쟁위원회’가 결성되었다. 이듬해 말 대진원전구역이 확정되었으나 끊임없는 반대에 부딪쳐 2019년 6월 삼척지역의 원전 건설 계획이 완전히 철회되었다.

작은 비석엔 ‘...후손에게 교훈으로 남기고자... 이 비를 세운다’라고 적혀 있다. 2018년 일본의 반핵운동가와 후쿠시마 청소년들이 이곳에 왔다 가며 기념으로 나무를 심었다. 삼척시는 원자력발전소를 세우고자 했고 이들은 ‘핵’을 반대하며 승리의 기념탑을 세웠다. 원자력발전소는 울진으로 넘어갔다.

글쓴이 오근식=1958년에 태어나 철도청 공무원, 인제대학교백병원 그리고 건국대학교병원에서 일했다. 2019년 2월 정년퇴직하고, 제주 올레, 고창과 통영의 길과 섬을 걸었다. 이후 해파랑길 750km를 걷기 여행을 마치고 현재는 1,470km의 남파랑길을 걷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