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길40코스

[뉴스클레임]
해파랑길40코스는 사천진해변공원에서 주문진해변에 이르는 12.3km의 해변길이다. 조금은 지루한 해변길이지만 주문진 등대와 소돌해변의 웅장한 기암이 인상적인 길이다.
강릉 해변의 항구는 거의 바다로 흘러드는 하천을 끼고 있다. 남대천이 바다와 만나는 곳엔 강릉항이 있고, 사천천 해변엔 사천진항, 연곡천엔 영진항, 신리천 해변엔 주문진항이 있다. 해파랑길40코스가 시작되는 사천진항은 상대적으로 작은 항구지만 주변에 제법 괜찮은 식당들이 여럿 있어 외부 방문객들이 적지 않은 곳이다.

사천진해변공원의 바닷가에서 출발 준비를 하며 살펴보니 모래밭 가에 둥글둥글한 바위가 여럿 모여 있다. 바위 머리에 永樂臺 (영락대)가 새겨져 있고 그 아래 이름 많이 새겨져 있다. 융희2년이라는 표기가 보였다. 순종이 즉위한 다음 해인 1909년이다. 1910년에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다. 이때 이 바위에 영락(永樂)을 새기고 그 아래 이름을 남긴 이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해변 모퉁이를 돌아서면 북쪽으로 멀리까지 해변이 거의 일직선으로 뻗어 있다. 사천진해수욕장과 하평해수욕장이 이어지는데 아직은 충분히 개발된 관광지는 아닌듯하다. 숙박시설과 식당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경포대 주변의 해변보다는 한가하게 휴가를 즐길 수 있는 해변이다. 바닷가로 채 1km도 걷지 않았는데 길이 바다를 벗어난다.

바닷가 길이지만 바다를 벗어나 3km쯤 숲길을 걸어 연곡천을 건넜다. 그리고는 새로 생긴 도로변을 걸어 내륙으로 걷는다. 해파랑길이 아니면 외부인이 찾아와 걸을 길은 아니다. 지루함을 느끼기 시작할 즈음에 길이 숲으로 들어간다. 입구에 영진리고분군 안내문이 보인다.

1993년 영진리 도로 확장과정에서 고분군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는데,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 시대까지의 고분을 확인했다고 한다. 항아리 접시 등 유물이 수백 점 출토되었다. 특히, 토기류는 신라 시대 토기이면서도 이 지역의 지방색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설명이다. 경상도 지역의 고분군들과는 달리 고분의 규모는 매우 작아 보였고, 그나마 숲이 울창해 자세히 살피지 않고는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

이 숲에는 고분 외에도 축성 시기와 내력이 아직 밝혀지지 않은 옛 토성의 흔적도 남아 있었다. 바다로 들어오는 왜구의 침입으로부터 영진리 일대를 지키기 위한 향토 수호성으로만 짐작된다고 한다. 서쪽 대관령 산줄기를 바라보는 경치가 멋진 곳이다.

숲에서 나와 다시 맞이한 바다는 영진해변이다. 주문진항까지 바닷가 길로 약 2.5km다. 이날 새파란 하늘에 드문드문 흰 구름이 멋진 날이었다. 제법 따가운 햇볕을 즐기며 걸었다. 바닷가에 카페와 상점들이 시작되는데 길이 다시 바다를 벗어난다. 강원도청 제2청사와 중고등학교, 마을 골목길을 지나 주문진항으로 들어가는 다리를 건넜다.
주문진수산시장, 좌판풍물시장, 종합시장, 건어물시장, 어민수산시장 등 온통 상가다. 한때는 해마다 오징어 축제가 열렸고, 명태, 꽁치 등의 해산물이 넘치던 곳이었다. 길에서 벗어난 곳의 시장은 살펴볼 생각도 하지 못하고 걸어 나가는데 상인들이 계속 불러세운다. 코로나19로 관광객의 발길이 뜸해지면서 타격이 컸을 듯하다. 애써 무표정으로 걸어 항구 끝에서 겨우 식당 하나를 찾아냈다. 제법 큰 식당이었지만 점심시간이 아직 지나지 않았는데 텅 비어 있었다. 주문진항이 참 어려운 시절을 견디고 있었다. 다시 관광객과 상인들이 북적거릴 날을 기대해 본다.

주문진항 북단에서 길이 향하는 입구에 주문진등대 새뜰마을이라는 안내표지판이 서 있다. 골목길을 이리저리 걸어 주문진성황당을 만났다. 현감의 욕심을 뿌리치고 목숨을 버림으로써 절개를 지킨 아름다운 여인, ‘진이’의 이야기와 훗날 이 여인을 위로하기 위해 사당을 지어준 강릉 부사의 이야기를 가졌다. 이곳 사람들이 목숨을 버린 ‘진이’라는 이름의 여인과 사당을 지은 강릉 부사를 위해 제사를 지내오고 있다.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위한 이 제사에서 펼쳐지는 동해안 별신굿은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성황당을 지나 주문진등대로 향해 가는 길은 낙후된 옛 마을의 골목길인데 곳곳에 벽화로 장식되어 있다. 벽화만으로 허름함이 심해지고 있는 골목을 다 가릴 수는 없을 것인데, 벽화를 보라고 외부 사람들을 들인다. 이곳 주민들의 눈에 지나가는 외지인이 반가울 까닭이 없다. 조용히 발걸음을 재촉했다.

주문진항은 부산과 원산 항로의 중간 기항지로 발전하기 시작했으며, 1918년 강원도에서는 처음으로 등대가 설치되었다. 해발 30m에 불과한 봉구미라는 언덕 위의 등대에서 발하는 불빛은 바다 멀리 37km 떨어진 곳에서도 볼 수 있다고 한다. 근처 바닷가에 이곳보다 높은 곳이 없다 보니 남쪽 멀리까지 강릉 해변이 한눈에 보인다. 주문진을 지나가는 길이라면 꼭 한 번쯤 가볼 만한 곳이다.

등대에서 내려와 바닷가를 걷는데 흩어져 있는 바위들이 예사롭지 않다. 장수바위는 바닷가로 길이 나며 조금은 옹색해졌지만, 여전히 기품을 잃지 않았다. 복을 빌면 영험함이 있다 기도하러 오는 사람이 많았었다는 거북이 모양의 바위는 길가의 어느 식당 앞에 겨우 자리를 잡았다. 여전히 누군가 복을 빌며 뚝배기에 정화수를 담아 올려 두었다. 소돌항에 이르러 아들바위공원에 들어서며 바위의 아름다움과 기묘함이 절정으로 향했다. 어느 조각가가 이리도 거대한 바위를 웅장하고 기기묘묘한 모습으로 조각할 수 있을까. 길고 긴 세월 오직 바람과 물이 바위를 깎고 다듬어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있다.

주문진등대에서의 해변 경치와 소돌항 아들바위공원이 해파랑길40코스의 중심이었다. 바위공원 모퉁이를 돌아 주문진해변에서 걷기를 마쳤다. 여전히 바위의 형상이 아른거린다. 이제 강릉을 떠나 양양으로 들어선다.
글쓴이 오근식=1958년에 태어나 철도청 공무원, 인제대학교백병원 그리고 건국대학교병원에서 일했다. 2019년 2월 정년퇴직하고, 제주 올레, 고창과 통영의 길과 섬을 걸었다. 이후 해파랑길 750km를 걷기 여행을 마치고 현재는 1,470km의 남파랑길을 걷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