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김충현 노동자, 생전 한전KPS 측 작업 요구에 "절차대로 해달라"
대책위 "정식 작업지시 없이 구두·카톡 지시 반복 확인돼"

[뉴스클레임]
"절차대로 해달라"는 외침은 무시됐다. 결국 또 한 명의 하청노동자가 작업장에서 생을 마감했다.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혼자서 일하다 숨진 하청노동자 고 김충현 씨가 원청인 한전KPS로부터 절차를 위반한 무리한 작업 지시를 받아왔다는 정황이 공개됐다. 절차를 지키려 애썼고 위험 앞에서 멈추고자 했던 고인의 노력에도 작업은 관행대로 밀어붙여졌다. 그렇게 김충현 씨는 혼자였고, 구조는 그렇게 방관했다.
지난 17일 태안화력 고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고 김충현 씨가 원청 관계자와 나눈 카카오톡 메시지 내용을 공개했다.
공개된 메시지 내용을 보면, 한전KPS 직원은 김충현 씨에게 "※긴급 스페이서 제작요망 내경 13.5mm*외경28mm*두께 13.5mm(재질무관). 수량 4개"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저희도 외주가공 하고 싶은데 너무 긴급이고 주말에 시간적 여유가 정지기간에 진행해야 해서 사정이 좀 많습니다", "무진이 주말 가공이 불가능해서 피치 못하게 진행입니다. 뭐 걱정하시는지도 알고 저도 깔끔하게 외주주고 싶은데 상황이 아무리 알아봐도 해결이 안되서요" 등의 대화 내용도 있었다.
대책위는 "김충현 씨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작업에 대해 '오앤엠 현장 소장을 통해 업무절차를 진행'해달라고 요청, '작업지시서를 소장에게 드리며 업무 협조를 지시하시면 될 거'라고 절차대로 진행할 것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KPS 측은 '무진이 주말가공이 불가능해서', '저도 깔끔하게 외주 주고 싶은데'라며 재차 작업 강행을 요구하고 있다"며 "외주 의뢰가 필요한 작업도 ‘빨리빨리 관행’에 따라 고인에게 작업을 강요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김충현 씨의 업무를 이전에 했던 동료는 "(작업의뢰서 가져오는 게) 1년에 서너번, 5% 안 됐다. 현장대리인 작업자가 서명했고. 작업기일은 협의해서 요청기한보다 더 걸릴 수도 있다. 급하게 올 때도 작업의뢰서는 1%도 안 된다. 쓰라고 해도 안 쓰더라"며 "처음 입사해서 시스템을 모르는 상태에서 일을 하게 되는데, 인수인계해주는 사람도 없고 신경 안 쓰고 해버린 것이다. 지금 생각하니 섬짓하다"고 증언했다.
팀간의 업무범위와 관련된 대화에서는 김충현 씨가 직접적으로 한전KPS의 관리를 받는 정황이 더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공개된 메시지에서 김충현 씨는 "업무회의시간에 소장님께서 앞으로는 팀 구분 없이 일을 해야 된다는 얘기를 하시며 크레인 용접 선반도 예외없이 기계쪽 일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일의 진행이 팀 직군 구분 없이 다 해야 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제가 협력사 외에 관리감독? 받고 있는 곳이 기술팀으로 알고 있는데 업무(구분)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어 얘기를 나눌 수 있을까 해서 연락드려 본다"라고 말했다. 이에 KPS 측은 "곧 찾아뵙겠다"고 답했다.
대책위 또 한전KPS 측의 "그런 문제는 감독하고 다 협의했고, 제작이나 사용 중 문제에 대해선 감독이 책임지기로 했습니다"라는 발언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책위는 "해당 작업은 상당히 급하게 이뤄진 작업이었고, 주말 제작을 강요할 정도로 원청의 압박이 센 상황이었다. 책임의 부담을 느낀 김충현 씨가 작업거부와 같은 의사표시인 '오앤엠 현장 소장을 통해 업무절차를 진행'해달라고 요청하자, 한전KPS 측은 '감독과 다 협의한 부분', '감독사에서 책임질 것'이라는 말로 재차 설득에 나서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언급된 ‘감독’이 서부발전 원청 소속의 현장 감독인지, 혹은 KPS 또는 하청의 감리 감독인지는 명확히 밝혀져야 할 핵심이다"라며 "만약 실질적인 작업 지시와 승인, 책임 협의가 서부발전 감독과 이뤄졌다면, 이는 단순한 하청의 문제가 아닌 원청이 개입된 구조적 강요였음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러한 정황은 위험하고 무리한 작업이 서부발전-한전KPS-오앤엠으로 이어지는 하청 구조 속에서 관행처럼 반복됐을 가능성을 보여준다"며 "수사당국은 이 지점을 집중적으로 조사하고, ‘감독’의 정체와 지시 권한, 책임 소재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고 발생 16일 만인 지난 18일, 침묵과 울음 속에서 김훙현 씨의 영결식이 열렸다.
그의 동료들은 김충현 씨를 “항상 성실하고 따뜻한 사람”, “법 없이도 살 사람”으로 기억했다. 동료들은 “항상 절차와 원칙을 중시하며 후배를 잘 챙겨줬다”고 회고하며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김충현 씨 고향 친구가 전한 "그 곳에서는 차별도, 아픔도, 고통도 없이 살았으면 좋겠다"는 인사대로 더 좋은 곳에서 편히 잠이 들기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