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은 시혜와 후원으로 퇴치되지 않는다"

최인기 빈민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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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클레임] 2022년 빈곤철폐의 날, 가난은 시혜와 후원으로 퇴치되지 않는다.

2022년 ‘빈곤철폐의 날’ 행사로 분주한 ‘빈곤사회연대’ 사무실을 방문했다. 서울역과 숙대 전철역 사이 굴레방다리 밑에 ‘아랫마을’이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사무실에서 3분 거리. 점심시간에 맞춰 슬리퍼 차림으로 길을 나섰다. 정성철 사무국장은 이날도 후원받은 물품을 분주히 실어 나르고 있었다. 일을 부탁할 거 같아 슬그머니 건너편 골목길 근처  커피 집으로 피신 해 아메리카노 한잔 빼 들고 천천히 빈곤사회연대 사무실로 향했다. 시끌벅적한 자리를 피해 정성철 사무국장과 단둘이 자리를 잡았다. 키 큰 그는 내려 보고 작은 나는 올려보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빈곤철폐의 날이 뭐죠? 첫 번째 질문.

“1992년 UN은 매년 10월 17일을 ‘빈곤퇴치의 날’로 정했습니다. 하지만 유엔의 빈곤퇴치는 기아 문제에 초점을 맞춰 더 많은 원조와 구호를 통해 빈곤을 없애자고 캠페인을 하는 게 주요사업 입니다. 실제 빈곤 문제를 들여다보면 일시적인 후원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더군다나 제 3세계 나라의 기아뿐만 아니라 한국의 불평등도 매우 심각합니다. 일상을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의 삶이 변해야 하기 때문에 노점상·철거민·홈리스·쪽방주민과 장애인 등 가난한 당사자들이 ‘조직위원회’를 구성하여 ‘빈곤철폐의 날’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특히 노동자들이 마주하고 있는 불평등한 문제가 어떤 것인지 이야기하고 함께 연대함으로써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자 합니다.”

최인기 빈민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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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요구사항이 무엇인지 구체적 대답해 달라며 질문을 던졌다.

“빈곤을 둘러싼 문제가 다양하잖아요. 하나씩 살펴보면 ‘기초생활’은 권리이기에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와 ‘수급비’를 현실화하라는 것과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고 예산 권리입법’을 보장하라는 것입니다. 거리의 노점상에 대해서는 ‘관리대책’ 중단하고, ’생계 보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철거민은 '강제퇴거 금지하고 선대책·후철거 순환식 개발 시행하라.‘ 그리고 홈리스에 대해서는 ‘의료지원을 둘러싼 차별 철폐와 모든 쪽방에 공공주도 순환형 개발을 시행하라‘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내용은 당사자들이 오랫동안 주장해 온 권리로 아직도 정책으로 반영되지 않은 내용입니다. 그리고 올해 반지하에 살던 사람의 피해가 컷 습니다. ’기후위기‘와 관련된 재난으로 빈곤을 만들어 낸 ‘불평등’ 자체가 재난임을 선포하고 알리는 게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공공의 땅’을 시장화하려는 시도에 대해서도 반대합니다. ‘민간 매각 금지’ 그리고 ‘공공임대주택 대폭 확대와 사회서비스 시장화 중단’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가난을 둘러싼 이야기는 설명이 더 필요하다. 잘 알려진 사실 가운데 2021년 10월 25일 경제협력개발기구의 통계가 있다. 2018년 기준 한국의 상대적 빈곤율이 16.7%로 이는 37개 회원국 가운데 네번째로 높다. 한국의 전체 인구 가운데 중위소득 50%로 생활하는 인구가 국민 6명 가운데 1명으로 가난의 경계에 서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을 위한 제도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있다. 국가로부터 기초생활에 필요한 급여를 보장받을 수 있다. 수급자가 되려면 가구의 ‘소득인정액’이 급여별 선정기준 이하여야 한다. 소득인정액은 소득평가액과 재산의 소득환산액을 더한 값이다. 급여별 선정기준은 기준중위소득을 기준으로 생계급여는 30%, 의료급여는 40%, 주거급여는 46%, 교육급여는 50%다. 선정기준과 최저보장수준은 ‘중앙생활보장위원회’의 심의 의결을 거쳐 매년 8월 1일 보건복지부장관이 공표한다.

최인기 빈민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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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철 사무국장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 활동을 오래 해왔다. “올해 1인 가구 생계급여에서 고작 4만 원가량 오른 수준입니다. 내년 1인 가구 기준중위소득이 207만 7892원으로 결정됨에 따라 1인 가구 생계급여 즉 기준중위소득의 30%가 62만 3368원으로 확정됐습니다. 올해에도 기준중위소득 상승률이 물가상승률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채 책정됨으로써, 수급자들의 팍팍한 삶은 내년에도 나아지지 않을 전망입니다” 라고 말한다.

이 제도는 모든 국민의 인간다운 삶에 필요한 최저생활을 보장한다며 2000년부터 시행되었다. 하지만 그후에도 생활고와 병마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사람은 줄지 않았다. 여러 가지 문제가 많지만 법이 만들어지고 대표적으로 ‘부양의무자 기준’을 둘러싸고 폐지의 목소리가 높았다. 교육급여와 주거급여 등이 폐지되었지만, 2021년 10월 생계급여에서 부양의무자의 재산을 9억 이하로 연소득은 1억 이하로 완화하는 데 그쳤다. 그리고 2022년 1월 의료급여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의 부분적 완화가 이뤄졌고, 기초연금 수급 노인에 한하여 부양의무자 기준이 완화하였을 뿐 완전한 폐지는 되지 않았다. 이 밖에도 엄격한 재산 기준을 적용해 현재 사는 집의 보증금마저 소득으로 환산되고 있다. 일방적인 근로 능력 평가로 인해 가난한 사람이 권리를 보장받기에 문턱이 여전히 높고 까다롭다.

최인기 빈민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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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부터 지금까지 ‘빈곤철폐의 날’은 매년 지속해서 치러지고 있다. 10월 15일 오후 2시경 종로구 청계천 근처 영풍문고와 보신각 사이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가을 초입 사람들 옷차림도 눈에 띄게 달라졌다. 계절의 변화를 실감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게 바로 가난인 듯 하다. 날씨가 추워지면 이들의 어깨는 더욱 움츠러들 것이다. 하지만 이날 행사에 참석한 약 400여 명의 집회 참여자들은 “가난을 개인과 가족의 책임으로 떠넘기는 사회 구조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 높였다. 노점상 철거민 그리고 장애인과 홈리스 등이 서울시청 주변을 행진하며,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했다. 반빈곤 운동에 함께하는 시민사회단체와 진보정당 그리고 아시아 각국에서 참석한 사람들도 자신의 요구를 피켓에 적어 적극 동참했다. 무엇보다 시혜를 넘어 모두의 연대가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보여준 대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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