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클레임]
지내기 마땅한 봄에 석 달을 통영에서 보내겠다고 와서, 바닷가를 걷던 첫날 굳이 어디에 가서 무엇을 보겠다는 생각을 버렸다. 오른쪽에 바다를 두고 걷는데 소리쳐 부르면 누군가 듣고 대답할 듯 바다건너의 미륵산과 한산도가 가깝게 보인다. 통영에선 경치 아름다운 곳을 찾아갈 필요가 없다. 통영 어디에 서 있던 그곳이 속칭 ‘뷰 맛집’이기 때문이다.

점심시간이 지나가고 있을 때 통영여객선터미널과 맞은편의 서호전통시장이 눈에 들어왔다. 시장에 들어가 적당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려 했는데 이 시장을 소개하는 간판이 발길을 붙들었다.
서호시장 터는 일제강점기부터 시작해 광복 후에 매립이 끝난 곳이었다.

국가 소유가 되어 황무지로 방치되어 있던 땅에 일본에서 귀향한 사람들이 모여들어 터를 잡고 가게를 하나씩 열면서 시장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서호만을 매립해 새로 생긴 땅에 생긴 시장이라는 뜻으로 사람들은 새터시장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간판 아래 부분에 백석의 시 한편이 적혀 있었다.

[통영1]
녯날엔 統制使 (통제사)가 있었다는 낡은 항구의 처녀들에겐 녯날이 가지 않은 千姬 (천희)라는 이름이 많다.
미역오리같이 말라서 굴껍질처럼 말없이 사랑하다 죽는다는
이 千姬 (천희)의 하나를 나는 어늬 오랜 客主집(객주집)의 생선가시가 있는 마루방에서 만났다.
저문 六月 (유월)의 바닷가에선 조개도 울을 저녁 소라방둥이 불그레한
마당에 김냄새 나는 비가 나렸다.
1930년대 중반 백석이 통영 출신 여성과의 결혼 허락을 위해 통영에 왔었다. 그러나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가 사랑했던 ‘난’이 그의 친구와 결혼을 하면서 그는 사랑도 잃고 친구도 잃었다. 이러한 사연과 함께 백석은 통영1과 통영2라는 제목의 시를 남겼다. 그리고 ‘난’의 외사촌 오빠인 서병직 씨에게 또 한 편의 시 (남행시초(南行詩抄)2 –통영)를 전했다.

[남행시초(南行詩抄)2 –통영]
통영 장 낫대들었다
갓 한 닢 쓰고 건시 한 접 사고 홍공단 단기 한 감 끊고 술 한 병 받아 들고
화륜선 만져 보려 선창 갔다
오다 가수내 들어가는 주막 앞에
문둥이 품바타령 듣다가
열이레 달이 올라서
나룻배 타고 판데목 지나간다 간다
- 서병직(徐丙稷)씨에게-
서호시장 입구에서 백석을 만나고 나서 시장 안에 들어가 여행자 누구도 기억해 주지 않을 어느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통영에선 맛집 찾아다닐 필요 없다. 그 어느 식당이든 기대 이상의 음식을 마주한다. 서호시장의 이 식당도 그랬다. 만족감에 잠시 시장을 돌아보고는 다시 거리로 나와 어슬렁어슬렁 걸으며 통영을 눈에 익혔다.

▶글쓴이 오근식=1958년에 태어나 철도청 공무원, 인제대학교백병원 그리고 건국대학교병원에서 일했다. 2019년 2월 정년퇴직하고 걷는 여행 중이다. 퇴직 첫 해 제주에서 1년 동안 걸었고 다음엔 고창에서 석 달 걸었다. 그리고 세 번째 여행지가 통영이었다. 현재는 부산 오륙도 선착장에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750 킬로미터의 해파랑길을 걷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