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대교 위에서 바라보는 미수항과 호수보다 더 잔잔한 그 앞바다는 그대로 그림이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통영대교 위에서 바라보는 미수항과 호수보다 더 잔잔한 그 앞바다는 그대로 그림이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뉴스클레임]

아침 햇살이 눈부셔 잠에서 깼는데 전날 미륵산 숲속에서 꽃을 살피며 오래 걸은 탓에 종아리에 아직도 피로감이 남아 있었다. 비바람이라도 불면 창 너머의 미륵산과 강구안을  바라보며 게으름 필 핑계가 될 터인데, 화창한 봄날이었다.

통영 여행자 누구도 가지 않을 길을 걷자고 집을 나섰다. 일단 통영대교를 걸어서 건너자. 그 위에서 세상의 어느 항구보다 평화롭고 아름답게 보이는 서쪽의 미수항을 보고, 그간  궁금했던 통영생태숲을 보기로 했다.

통영생태숲을 오르다 바라보니 통영운하 위의 통영대교가 더욱 육중하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통영생태숲을 오르다 바라보니 통영운하 위의 통영대교가 더욱 육중하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집을 나서 봉수골 입구까지는 눈에 익은 길이었다. 그 다음엔 미륵산 케이블카를 향해 차들이 쌩쌩 달리는 길이었다. 햇빛이 강해지면서 지루함이 느껴질 즈음 통영대교 앞에 섰다. 밤에는 형형색색의 조명으로 물들어 아름답게 보였는데 다만 육중한 다리일 뿐이었다.

다리 중간쯤 이르렀을 때 대형 덤프트럭이 지나갔다. 다리가 출렁거렸다. 내가 딛고 서 있는 곳이 흔들리니 무서움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가는 곳마다 출렁다리를 설치하는 까닭을 알겠다. 

통영대교 위에서 바라보는 미수항 풍경은 아름답다. 고요하고 평화롭다. 미륵산에 기대어 좌우의 야트막한 산과 북서쪽으로 열려 있는 바닷길 밖의 크고 작은 섬들은 그림이다. 통영의 화가 전혁림의 그림이 문득 떠오른다.

자연 상태의 숲을 약간 손질해 만든 통영생태숲은 찾아오는 이들이 한가하고 평화로운 소풍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자연 상태의 숲을 약간 손질해 만든 통영생태숲은 찾아오는 이들이 한가하고 평화로운 소풍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차를 타고 통영대교 앞에서 신호를 기다릴 때마다 궁금했던 ‘통영생태숲’은 얕은 산등성이에 잘 다듬은 공원이었다. 본래 자라던 나무와 풀숲 사이에 길을 내고 쉼터를 만들었다. 조경용 나무도 추가해서 심고 꽃밭과 작은 습지도 조성했다. 한겨울이 아니라면 언제 와도 숲속 그늘에서 편안함을 얻을 수 있는 곳이었다.

생태숲을 벗어나 산으로 향하면 꽤 매력적인 소나무와 그 너머의 울창한 숲이 반긴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생태숲을 벗어나 산으로 향하면 꽤 매력적인 소나무와 그 너머의 울창한 숲이 반긴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생태숲을 지나니 잠깐 새에 남도의 무성한 숲 속으로 텀벙 빠져들었다. 위치와 숲길 안내도를 살펴보고 있는데 ‘어므나아’하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린다. 나무 계단 옆에서 금난초가 환하게 웃으며 올려다보고 있었다.  

금난초와 은난초는 꽃의 색만 다른 쌍둥이 야생난이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금난초와 은난초는 꽃의 색만 다른 쌍둥이 야생난이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제주에서 1년 여행 중 2020년 봄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오름을 걷다가 길가에서 이 금난초를 처음 보았다. 그 때 아내는 출산한 딸과 외손녀를 보살펴주기 위해 잠시 제주를 떠나 있을 때였다. 며칠 후 아내가 돌아오자 함께 그 길을 다시 걸었다. 금난초를 보자마자 아내는 ‘어므나아’ 하는 감탄사를 몇 번이나 쏟아냈다.

통영생태숲에서 북포루까지의 숲속에서 금난초, 은난초와 함께 오솔길을 빛내주고 있던 골무꽃이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통영생태숲에서 북포루까지의 숲속에서 금난초, 은난초와 함께 오솔길을 빛내주고 있던 골무꽃이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골무꽃을 살피고 옥녀꽃대를 만나며 걷다보니 사람들이 잠깐이면 걸어내는 숲길을 한나절 넘게 걸어 명정고개를 만났다. 통영 시내를 향해 고갯길을 내려가면 충렬사와 명정이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 명정고개는 1603년 통영에 삼도수군통제영이 생기기 이전부터 있었다 하니 400년 넘게 양쪽 마을 사람들이 넘나들던 통로였다.

400여 년 동안 명정고개에서 사람들을 안내하다 1970년 초 어느 날 땅 속에 묻혔다가 다시 발굴된 돌장승이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400여 년 동안 명정고개에서 사람들을 안내하다 1970년 초 어느 날 땅 속에 묻혔다가 다시 발굴된 돌장승이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고갯마루 길섶에 작은 돌장승 둘이 보호 철책에 갇혀 있었다. 얼굴엔 눈, 코, 귀, 입의 형체가 없다. 안내문에 따르면 ‘1970년경 길 넓히는 공사 과정에서 이곳의 돌탑과 장승이 매몰되었으며 1993년 장승 1기를 발굴했으나 머리부분이 손상되어 동일 모양으로 제작하여 나란히 세웠다’고 한다. 발굴 당시 머리 부분이 없던 돌장승도 옆에 세워져 있었다.

북포루는 세병관을 중심에 둔 삼도수군통제영을 둘러싼 통영성의 일부였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북포루는 세병관을 중심에 둔 삼도수군통제영을 둘러싼 통영성의 일부였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명정고개에서 명정과 충렬사가 있는 방향을 잠시 바라보다가 북포루로 향했다. 북포루까지는 잘 정리된 숲속 길이 이어졌다. 산자락엔 야생의 나무와 풀과 덩굴이 뒤엉겨 있으나 오솔길은 누구라도 안전하게 걸을 수 있도록 잘 가꾸어져 있었다. 그리고 북포루에서 통영을 내려다 보았다. 아내의 감탄사 ‘어므나아’가 ‘우와아’로 바뀌었다.

장담하건대 통영 전체가 보이는 최고의 풍경은 북포루에 있다. 동피랑, 서피랑 그리고 미륵산 위에서 바라보는 어떤 풍경도 북포루와는 비교할 수 없다. 통영에 와서 통영 시가지와 바다와 하늘과 섬들이 어울린 최고의 순간을 보려거든 당연히 북포루에 올라야 한다.   

북포루에서 바라보는 통영의 풍경은 최고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북포루에서 바라보는 통영의 풍경은 최고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글쓴이 오근식=1958년에 태어나 철도청 공무원, 인제대학교백병원 그리고 건국대학교병원에서 일했다. 2019년 2월 정년퇴직하고 걷는 여행 중이다. 퇴직 첫 해 제주에서 1년 동안 걸었고 다음엔 고창에서 석 달 걸었다. 그리고 세 번째 여행지가 통영이었다. 현재는 부산 오륙도 선착장에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750 킬로미터의 해파랑길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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