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노동자 정기 실태조사
보건의료기관 종사자 10명 중 6명 "직장 내 폭언·폭행·성폭력으로 인한 피해 경험"

뉴스클레임DB
뉴스클레임DB

[뉴스클레임]

2019년 직장 내 괴롭힘 금지제도가 시행됐다. 사용자나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등을 이용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는 행위를 금지하는 법이다. 시행된 지 5년이 지난 지금, 직장 내 괴롭힘은 줄어들었을까? 현실은 전혀 아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됐지만 갑질 피해자에 대한 보호장치는 여전히 미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지난달 21일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2분기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한 43명 가운데 41.9%가 신고 이후 불리한 처우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근로기준법은 사용자가 괴롭힘 신고자 또는 피해자에게 해고는 물론 직무재배치, 성과평가, 집단따돌림 등 불리한 처우를 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위반 시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 규정도 있지만 현실에선 지켜지지 않는다.

보건의료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태움'으로 직장을 그만두고, 치료를 받고, 세상을 떠나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 보호자와 환자 등에게 폭언, 폭행, 성폭력을 당해 힘듦을 호소하는 노동자들도 수두룩하다.

실제 극단적 선택을 한 의정부 을지대병원 간호사에게 '태움'을 한 혐의로 기소된 선배 간호사가 항소심에서도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바 있다.

을지대병원 '태움' 사건은 2021년 11월 의정부 을지대병원 소속 신입 간호사가 병원 기숙사에서 극단적 선택으로 숨진 채 발견되며 알려졌다. 고인은 숨지기 직전 친한 동료와 남자친구에게 '태움' 피해에 대해 호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해당 사건으로 을지대병원이 '1년 동안 퇴사할 수 없고 다른 병원으로 이직할 수 없다'는 특약 조항 등을 걸어 논란이 됐다.

당시 보건의료노조는 "의정부 을지대병원의 근로계약서 특약을 보면 1년 동안 퇴사할 수 없고 다른 병원으로 이직도 할 수 없도록 돼 있어 ‘노예 계약’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논란이 됐던 을지대병원의 특약 조항(1년 동안 퇴사할 수 없고 다른 병원으로 이직할 수 없다)은 지난 2021년 11월 당시 삭제 조치됐다.

보건의료노조가 보건의료노동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정기 실태조사에서도 보건의료기관 종사자의 10명 중 6명이 직장 내 폭언, 폭행, 성폭력으로 인한 피해를 경험한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1년 동안 폭언, 폭행, 성폭력 중 하나라도 경험했다고 답한 비율은 전체 응답자의 60.9%로 집계됐다.

이 중 폭언이 60.3%로 가장 많았다. 이어 폭행 13.3%, 성폭력 8.6% 순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보건의료노동자들이 겪는 폭언, 폭행, 성폭력이 사회에 드러나면서 정부, 노동사회, 보건의료노조 등에선 직장 내 괴롭힘 근절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언, 폭행, 성폭력을 하나라도 경험한 노동자는 2011년 61.4%에서 지속적으로 증가해 2019년 약 70%까지 달했다. 2024년 현재 약 60% 수준으로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감소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폭언의 경우 간호직에서 10명 중 7명 꼴의 매우 높은 수준의 경험율을 보였다. 

이어 간호조무직 53.4%, 기능직 및 운영지원직 44.2%, 사무`행정직 41.6%, 보건직 40.0%, 약무직 35.2%, 기술직 21.1%, 연구직 16.9% 순으로 나타났다.

폭행 및 성폭력 경험률 모두 간호직, 간호조무직, 기능직 및 운영지원직, 보건직, 사무`행정직, 기술직의 순으로 조사됐다.

특히 성별에 따라 최근 1년 폭언, 폭행, 성폭력 피해를 경험한 비율이 크게 차이가 났다.

여성의 경우 폭언, 폭행, 성폭력 경험률은 각각 65.2%, 14.6%, 10.0%로 나타났다. 폭언과 폭행은 남성의 약 2배가량, 성폭력은 약 4배가량 높았다.

폭언, 폭행, 성폭력의 주된 가해자는 세 유형 모두 환자`대상자였다. 

폭언의 경우 환자와 대상자가 43.1%, 보호자 27.8%, 의사 16.0%, 상급자 9.0%, 동료 5.9% 순으로 높게 나타났다.

폭행은 환자`대상자가 87.4%에 달했다. 이어 보호자 10.4%, 동료 2.3%, 상급자 1.5%, 의사 1.2% 순이었다.

성폭력 또한 환자`대상자가 76.2%, 보호자 10.6%, 의사 5.5%, 동료 4.3%, 상급자 3.3% 순으로 조사됐다.

폭언, 폭행, 성폭력을 경험했음에도 대다수는 이를 참고 넘겼다. (앞서 기자회견)

이번 조사에서도 폭언, 폭행, 성폭력을 경험한 응답자를 대상으로 피해 발생시 대응 방식에 대해 조사한 결과, 참고 넘기거나 직장 상사나 동료 등 주위에 도움을 요청 등이 가장 많았다.

직장 내 노동조합이나 고충처리위원회 등에 요청하거나 법적 대응 또는 외부의 제도적 장치에 요청하는 등 의료기관 내외의 제도적 절차의 활용 수준은 모든 피해 유형에서 2% 미만이었다.

보건의료노조는 "대체로 참고 넘기거나 주변에 하소연, 의료기관 내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수준의 매우 소극적인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면서 "의료기관 차원에서의 조직 내 예방교육, 피해 발생시 공식적 절차를 통한 조치의무 실행, 조직문화의 개선 등의 적극적 예방활동 및 대응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폭언, 폭행, 성폭력을 경험한 피해자는 별도의 보호조치도 제대로 제공받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1년 내 폭언, 폭행, 성폭력 경험자를 대상으로 피해 발생 시 피해자 보호를 위한 조치들이 이뤄졌는지 조사한 결과, 피해 경험자의 대부분이 별도의 피해자 보호조치를 제공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피해 발생시 업무 일시 중단, 휴게시간 부여, 가해자와 분리 조치, 치료 상담 지원 등 여러 조치가 있음에도 이를 제대로 제공받지 못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가해자와 분리 조치가 14.6%가 피해자 보호조치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이어 업무 일시 중단 7.1%, 휴게시간 부여 5.1%, 치료 상담 지원 1.8%, 유급휴가 1.3% 순으로 조사됐다.

보건의료노조 "지난 2019년 7월 직장 내 괴롭힘 금지제도 시행 이후, 제도 시행 이전의 약 70% 수준의 직장 내 괴롭힘 경험률이 약 10%p 가량 감소한 60% 전후의 수준을 보인다는 점에서 의료기관 내 긍정적인 제도적 효과가 있었다고 판단된다"며 "보다 적극적인 제도적 보완 및 시행을 통해 보건의료산업 종사자의 안전하게 일할 권리 보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폭행 등을 경험한 노동자들이 제대로 보호조치를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해선 "2018년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으로 감정노동자에 관한 사업주의 건강장해예방조치 의무가 신설됐다. 이에 후속 조치로 적절한 치료 및 상담 지원 등을 위해 필요한 지원을 하게 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미조치시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 부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피해자들은 마땅히 받아야 할 의무 조치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법제도적 피해보호와 건강하게 일할 권리보장을 위한 적극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저작권자 © 뉴스클레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