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길39코스

남항진해변에서 강릉 남대천을 건너 죽도봉과 강릉항으로 연결하는 솔바람다리다. 다리와 나란히 자전거 집라인이 설치되어 운영 중이어서 젊은이들의 함성이 끊어지지 않는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남항진해변에서 강릉 남대천을 건너 죽도봉과 강릉항으로 연결하는 솔바람다리다. 다리와 나란히 자전거 집라인이 설치되어 운영 중이어서 젊은이들의 함성이 끊어지지 않는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뉴스클레임]

해파랑길39코스는 강릉 남대천을 가로지르는 솔바람다리를 건너서 강릉의 거의 모든 해변과 경포호 둘레길을 걷는 15.8km의 길이다. 강릉을 대표하는 안목해변, 송정해변, 강문해변, 경포호, 경포해변, 사근진해변, 순개울해변, 순굿해변, 순포해변, 사천해변 등 9곳의 해수욕장을 거친다.

솔바람다리 건너편 낮은 봉우리 이름이 죽도봉이다. 소나무가 무성한 작은 봉우리다. 오래전엔 섬이었으니 죽도라는 이름이 아직 살아 있을 것이다. 솔바람다리와 나란히 달리는 집라인 위의 자전거에 앉은 젊은이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내달린다. 저 앞 안목해변은 젊은이들의 거리인 듯하다.

솔바람다리를 건너오면 안목해변에서 강릉 커피 거리가 시작된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솔바람다리를 건너오면 안목해변에서 강릉 커피 거리가 시작된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다리를 건너면 안목해변이다. 강릉 커피 거리가 시작된다. 아직 6월 중순이었지만 낮 기온이 30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래도 코로나19가 던져둔 공포의 그림자 탓인지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안목해변을 지나 송정해변에 들어서면 소나무 숲이 조금 더 울창하고 그 속에 잠시 사진 한 장 남길 만한 다양한 소품들이 마련되어 있다. 바닷가에서 웃고 떠들며 노는 사람들보다는 소나무 그늘 속에 가만히 앉아 있는 바다와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더 많이 보인다. 송정해변의 보물은 백사장이 아니라 울창한 소나무 숲이다.

안목해변에서 이어지는 송정해변은 백사장 가의 소나무 숲이 멋진 곳이다. 숲에선 기념사진 한 장 찍고 싶어지는 다양한 조형물을 만날 수 있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안목해변에서 이어지는 송정해변은 백사장 가의 소나무 숲이 멋진 곳이다. 숲에선 기념사진 한 장 찍고 싶어지는 다양한 조형물을 만날 수 있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송정해변에서 벗어나면 강문해변이다. 짧은 해변을 걸어 경포호와 바다를 연결하는 물길 위의 솟대다리를 건넌다. 이젠 경포해변이다. 호텔이 즐비하다. 길은 경포해변이 아니라 물길을 따라 경포호로 향한다. 이윽고 숲속의 풀냄새 그윽한 호숫가 오솔길이다. 오른쪽은 경포호, 왼쪽은 경포호 둘레를 흐르는 하천이다.

이미 다녀온 허균허난설헌기념공원을 지나면서 경포호 건너편까지 시야가 트였다. 대관령을 품고 있을 산줄기에 높고 낮은 산들이 가득하고 멀리 보이는 높은 산봉우리들은 안개에 젖어 있다. 호수 건너편엔 경포대가 편안하게 보인다. 멀리 보아도 아름답고 가까이 보아도 그렇다. 발아래 펼쳐진 연밭엔 연꽃 향이 그렇다.

송정해변의 숲을 벗어나 솟대다리를 건너고, 경포호와 바다를 연결하는 물길을 따라 경포호의 둘레길에 들어선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송정해변의 숲을 벗어나 솟대다리를 건너고, 경포호와 바다를 연결하는 물길을 따라 경포호의 둘레길에 들어선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경포호 둘레길은 약 4km다. 오랜 시간 흙과 모래가 밀려 들어오고 주변 개발이 이루어지며 메워져 12km의 호수 둘레가 많이 줄었다. 둘레길 주변엔 크고 작은 공원이 들어섰고, 아직 남아 있는 습지를 활용해 각종 친환경 시설이 들어서 있다. 연밭, 창포정원, 가시연습지, 수질정화습지 등이 대표적이다. 하천이 경포호 밖으로 흐르면서 습지에 물을 공급하고 습지에서 다시 호수로 흘러 들어간다. 둘레길 산책로에는 걸음걸음 지루하지 않도록 적당한 거리마다 시비가 있고 조각작품이 있다. 외지인들은 걷다가 기념사진 하나쯤을 남길만한 풍경이다. 

경포호 둘레길을 잠시 걷다가 들어선 은밀한 길에서 잠시 숲의 향에 취한다. 길은 허균허난설헌기념공원의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이어진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경포호 둘레길을 잠시 걷다가 들어선 은밀한 길에서 잠시 숲의 향에 취한다. 길은 허균허난설헌기념공원의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이어진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경포호 서쪽 머리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니 호수가 새로 들어선 고층 호텔을 품고 있다. 화강암을 곱게 다듬어 탁자와 의자를 만들어두었기에 앉고 보니 탁자 아래 빨간 단추를 누르면 노래가 흘러나온다. ‘사공의 노래’다. 

두둥실 두리둥실 배 떠나간다 

물 맑은 봄 바다에 배 떠나간다

이 배는 달 맞으러 강릉 가는 배

어기여 디여라차 노를 저어라

경포호 둘레길에서 시야가 벌어지며 대관령을 품은 산줄기가 장쾌하게 나타난다. 시선을 조금 당기면 호수 건너편 언덕 위의 경포대가 은근하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경포호 둘레길에서 시야가 벌어지며 대관령을 품은 산줄기가 장쾌하게 나타난다. 시선을 조금 당기면 호수 건너편 언덕 위의 경포대가 은근하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노래 잠시 듣고 물 한 모금 마시며 잠시 쉬었다가 경포대로 향했다. 이미 한 번 다녀간 곳이었지만 이곳에서 바라보는 호수의 경치가 일품이니 발품 팔아 올랐다. 살랑살랑 부는 바람에 잔물결이 일고 있었다. 거울처럼 고요한 호수는 오랜 시간 덕을 쌓아야 가능할 듯하다. 호수 건너편 허균허난설헌기념공원 근처의 숲까지 한눈에 바라보고는 아쉬움 남기지 않고 다시 길을 나섰다. 몇 년 전 왔을 때 거울 같은 호수를 한 번 보았으니 충분했다. 다시 바닷가로 나가는 길은 도로와 함께 가기 때문에 호수 건너편의 길만큼 호젓하지는 않다.

경포호 길이 끝나갈 무렵 홍장암 안내 표지가 있었다. 경포호 8경 중 ‘홍장암에 내리는 밤비’가 있어 유심히 살폈는데 표지석만 보일 뿐이었다. 절세의 미인이었다는 강릉 기생 홍장과 강원도 관찰사의 사랑놀이 이야기가 조형물과 함께 소개되어 있었다. 세월과 함께 세상이 변했으니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이야기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경포호 둘레길 4km를 걷다 보면 곳곳에 바라보아야 할 것이 많다. 습지의 연꽃과 부처꽃, 길가의 조각작품과 시비, 때로는 지나가는 이를 가만히 경계하고 있는 왜가리까지 걸음을 붙든다. 빠르게 걷지 말아야 할 길이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경포호 둘레길 4km를 걷다 보면 곳곳에 바라보아야 할 것이 많다. 습지의 연꽃과 부처꽃, 길가의 조각작품과 시비, 때로는 지나가는 이를 가만히 경계하고 있는 왜가리까지 걸음을 붙든다. 빠르게 걷지 말아야 할 길이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새로 건설된 고층 호텔 옆을 지나 다시 바닷가로 나섰다. 경포해변인데 이곳에서부터 북쪽으로 걸어 올라가는 바닷가는 세련된 숙소들이 많이 들어서 있다. 호젓한 소나무숲을 좋아한다면 남쪽의 송정해변이 으뜸일 것이고 편리하고 도회적인 휴양지를 좋아하는 이에게는 이곳이 적격이다. 

이미 걸어온 거리가 10km가 넘었고 기온도 꽤 높아서 피로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백사장과 푸른 바다가 좋긴 했지만, 이제는 솔바람 스치는 숲속이 더 편안했다. 바닷가의 숲과 도로를 넘나들며 사천진항까지 5km를 걸었다. 서쪽의 높은 산줄기가 따라오며 지쳐가는 발걸음을 응원하고 있었다. 어느새 바다보다 첩첩한 산이 더 좋아 보이는 길이다.

경포호를 돌아 다시 나온 바닷가엔 두 달 전 화재를 피하지 못한 소나무들이 보였다. 해변의 숲을 벗어나 도로를 따라 걷다가 해파랑길39코스가 끝나는 사천진 해변 가까이에서 다시 푸른 소나무 숲을 만났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경포호를 돌아 다시 나온 바닷가엔 두 달 전 화재를 피하지 못한 소나무들이 보였다. 해변의 숲을 벗어나 도로를 따라 걷다가 해파랑길39코스가 끝나는 사천진 해변 가까이에서 다시 푸른 소나무 숲을 만났다. 사진=오근식 객원위원

글쓴이 오근식=1958년에 태어나 철도청 공무원, 인제대학교백병원 그리고 건국대학교병원에서 일했다. 2019년 2월 정년퇴직하고, 제주 올레, 고창과 통영의 길과 섬을 걸었다. 이후 해파랑길 750km를 걷기 여행을 마치고 현재는 1,470km의 남파랑길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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