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길43~44코스

[뉴스클레임]
해파랑길43코스는 하조대해수욕장에서 출발해 수산항까지 9.3km의 길이다. 비교적 짧은 코스다. 출발 후 1km 정도 지나서 바닷가를 벗어나 작은 도로를 따라 걷는다. 후반 3km를 바다를 보며 걷지만, 역시 찻길을 따라 걸으니 기억에 넣어둘 만한 풍경은 없었다. 그리고 도착한 수산항은 주변을 공원으로 가꾸고 카누, 보트, 스노클링, 요트, 배낚시 등 각종 바다체험을 위한 관광항으로 변하고 있었다.
밋밋한 길이라도 걷다 보면 기억에 남을 경험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비 오고 다음 날이었다. 걷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길이 곧 바닷가를 벗어났다. 바람에 실려 오는 축축한 숲 향기가 좋았다. 큰길 아래 자전거길을 따라 걷는데 차들은 분주하게 지나가지만 서늘함마저 느껴지는 그늘 속은 한가하고 상쾌했다. 물에 빠지기 전까지는.

초록의 잎과 가끔 보이는 제비꽃이 잘 어울린 길이다. 저 앞에 길 위로 물이 흘러넘치는 모습이 보였다. 길도 어느 정도는 물에 잠겼다. 가까이 가 보니 걸어서 건너도 발이 물에 잠길 듯하지는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길가의 풀포기를 밟으며 걸었다. 물에 잠긴 길에 송사리들이 놀고 있었다.
다음 풀포기를 밟는 순간 발목까지 물에 잠겼다. 송사리들이 놀라서 반대편으로 냅다 도망친다. 당혹스러움도 잠시, 어차피 빠졌으니 그냥 첨벙첨벙 걸었다. 아내도 그렇게 따라오고 있었다. 물을 건너고 신발을 벗어 양말을 쥐어짜고, 수건으로 발의 물기를 닦아낸 뒤 볕에 말렸다. 신발 속의 물까지 어느 정도 찍어내고는 다시 양말과 신발을 신고 걸었다. 그늘을 벗어나 걸으면서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쉬는 참에 신발을 벗어보니 어느새 뽀송뽀송 말랐다.

수산항의 모습은 깨끗하게 정리된 공원이었다. 이곳의 체험 요금표가 안내되어 있었다.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보트, 카누, 요트, 스노클링, 낚시 등의 해상 체험 활동과 미역과자, 해초 비누, 문어 빵, 바다 양초 만들기 등도 안내하고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아직 힘을 쓰고 있던 때여서 항구엔 사람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잠시 눈길만 주고 빠져 나왔다.

수산항에서 이어지는 해파랑길44코스는 속초의 설악항 근처의 속초해맞이공원까지 13.3km의 코스인데 낙산해수욕장과 관동팔경 중의 한 곳인 낙산사가 핵심이다.
수산항에서 해변의 도로를 따라가는 3.5km의 길은 양쪽에 울창한 소나무 숲이 일품이다. 소나무 숲속에서 나오면 곧 양양 남대천을 건너는 낙산대교다. 남대천이 바다를 만나느라 물의 흐름이 느려지면서 나타난 모래톱엔 많은 새가 앉아 있다. 물고기를 닥치는 대로 잡아먹는 텃새가 되면서 유해 조류가 되어가고 있는 가마우지도 많이 보인다.

남대천 북쪽 해변이 낙산해수욕장이다. 백사장 가까이 수많은 숙소와 상점들이 가득해 여름 휴가지로는 손색이 없는 곳이다. 이곳은 해변의 도시다. 개발이 계속 진행 중이어서 백사장 근처에 방풍림으로 조성되었던 소나무숲이 차츰 사라지고 있다. 백사장과 바다는 충분히 보면서 걸었으니 아직 남아 있는 성긴 소나무 숲 아래를 살피며 걸었다. 갯완두꽃이 갯메꽃 덩굴과 함께 어울렁더울렁 보라색 꽃을 자랑하고 있었다. 언젠가 다시 왔을 때는 사라진 후 일지도 모르니 한 송이 한 송이 눈에 담았다.

낙산해수욕장 끝에 그리 높지 않은 산 위에 낙산사가 있다. 잠시 숨을 고르며 오르면 우뚝 솟은 해수관음상이 보인다. 의상대로 향한다. 정자 위치가 하조대와 많이 닮았다. 다만, 의상대 주변의 나무들이 잘 정리되어 좌우의 경치가 잘 드러나 있다. 아름답다. 특히 왼쪽 홍련암까지 이어지는 해변의 경치는 정자 주변의 소나무와 함께 한 폭의 그림이다.
의상대를 나서서 홍련암으로 걸어가며 문득 돌아보니 의상대와 주변의 커다란 소나무 몇 그루 그리고 절벽이 그림이다. 홍련암 뒤의 언덕까지 걸어가서 보아도 여전히 의상대와 소나무는 그 멋지게 어울린 풍경을 감추지 않는다. 과연 관동팔경이다. 의상대에서 바라보는 홍련암, 홍련암에서 바라보는 의상대 중 어느 쪽이 더 아름답다고 말할 수 없다.

낙산사가 있는 산을 돌아 걸어 나가면 양양 최북단에 있는 정암해변이다. 정암해변 북쪽 끝에 있는 물치항 역시 양양 최북단의 항구다. 정암해변은 아직 충분히 개발된 해수욕장은 아니다. 해변에 숙소 건물 몇 동이 서 있을 뿐 다른 편의 시설은 아직 부족하다. 해변 모래 역시 더 정리되어야 한다. 이 해변은 조금 거칠지만, 그 나름의 매력이 있다. 특히, 해변 남쪽에서 물치항까지 약 2km의 산책로가 훌륭하다. 해변 남쪽은 백사장이 좋고, 북쪽은 몽돌해변이 좋다. 파도 소리와 함께 들리는, 몽돌 구르는 소리가 멋진 곳이다.

물치항을 지나면 쌍천교를 통해 아직은 강이 되지 못한 물길을 건넌다. 설악산의 동쪽 계곡물이 모두 모여 흐르는 이 물길 위의 다리에서 바라보는 설악산 풍경 역시 이 근처에 왔다면 꼭 보아야 한다. 특히, 맑은 날 오후 설악산 능선으로 해가 넘어간 직후에.

글쓴이 오근식=1958년에 태어나 철도청 공무원, 인제대학교백병원 그리고 건국대학교병원에서 일했다. 2019년 2월 정년퇴직하고, 제주 올레, 고창과 통영의 길과 섬을 걸었다. 이후 해파랑길 750km를 걷기 여행을 마치고 현재는 1,470km의 남파랑길을 걷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