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최인기 빈민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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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클레임=기록하는 빈민운동가 최인기 ] 서민들의 소소한 일상 가운데 깨알 같은 재미가 있다면, 동료들과 퇴근 후 생맥주를 즐기며 하루의 스트레스를 날려 버리는 일이다. 코로나로 막혔던 규제가 서서히 풀리자 사람들은 을지로 노가리 골목으로 쏟아져 나왔다. 오랜만의 해방감으로 충만한 골목길에 봄이 온 것이다. 하지만 어떤이에게 오히려 서글픈 4월이라면?

사진=최인기 빈민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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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OB베어’에 모여드는 사람들이 있다. 지난 21일 새벽 4시 가량이다. 동틀 시간을 앞두고 건장한 이들이 을지로 노가리 골목으로 몰려들었다. 가게 문이 열리자 이들은 사람을 끌어내고 집기를 들어냈다. 가게를 운영하는 3대 성혁 씨와 2대 강호신씨는 주차장 셔터를 붙잡고 격렬하게 저항했다, 그들은 도로위로 내동댕이쳐졌고 울부짖었다. 을지OB베어가 용역들에 의해 42년 만에 철거되는 순간이었다.

사진=최인기 빈민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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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졌듯이 1980년 문을 연 을지OB베어는 노가리와 맥주를 선보였다. 언제부턴가 레트로 열풍에 편승해 을지로가 ‘힙지로’로 입소문을 타자 인근 상인과 노동자들이 이용하던 노가리 골목이 젊은이들이 찾는 명소로 떠올랐다. 눈치 빠른 ‘만선호프’는 인근 점포를 하나둘 밀어내고 세를 확장해 나갔다. 일대가 거대한 맥주광장으로 변하자 중구청은 조례를 개정하고 ‘지역 활성화 사업구역’으로 지정하여 ‘도로점용료’를 내는 조건으로 영업을 이어가게 했다.

사진=최인기 빈민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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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OB베어 주인장에 따르면 이곳은 지금처럼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저 소소히 주변 상인과 작은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하루의 노동을 끝내고 쉬는 곳이었다. 오비맥주의 전신인 동양 맥주가 모집한 프랜차이즈 1호점인 가게는 2015년 노가리 골목에 기여한 것을 인정받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됐다. 그리고 2018년 호프집으로는 최초로 중소벤처기업부가 뽑은 ‘백년가게’로 선정됐지만, 그때부터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세입자에게 장사가 잘되는 것이 오히려 화근을 불러왔다. 임대계약 연장 문제로 건물주와 갈등이 이어지다 건물주가 제기한 ‘명도소송’에서 을지OB베어가 패소하면서 가게를 내줘야 했다.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게 되었다. 문제는 강제집행 과정에서 폭력적인 상황이 발생해도 처벌 수위가 낮거나 이번처럼 야간에 불시에 들어와 증거를 확보하기란 쉽지 않았다. 개인 간 임대차 문제에 어디든 개입할 수 없었고 모든 게 법이란 이름으로 자행된 것이다.

사진=최인기 빈민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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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을지로 보존연대’에서 활동하는 안근철씨는 오래된 문화재는 아니더라도 근현대 유산 가운데 미래 세대를 위해 보존할 가치가 있는 유·무형 자산을 유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서울미래유산’이라는 제도가 만들어졌다고 전한다. 하지만 실제 자치단체나 일부의 홍보 수단으로 전락 되는 등 형식적 수준이 되었다고 지적하며 을지 OB 베어처럼 수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고 찾던 곳이 사라지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전했다.

사진=최인기 빈민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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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를 주시하던 또 다른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돈벌이 수단만 노리는 영업 형태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사람들이 나섰다. 추억과 기억을 아무렇지도 않게 훼손하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도 있다, 노가리 골목의 원조 가게를 빼앗고 11번째 만선호프 간판을 다는 것에 반대하며 ‘만선골목’이 아닌 을지로 노가리 골목을 지키자는 사람들이다. 이들 가운데 몇몇은 올해 전부터 ‘궁중족발’과 ‘노량진수산시장’ 등 도시를 둘러싼 인권과 생존권에 연대했던 사람들이다.

사진=최인기 빈민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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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을지OB베어를 되찾기 위해 밤마다 노가리 골목으로 모여든다. 노래하는 사람들은 무료로 공연과 문화제를 펼치고, 하루의 일과와 수업을 마치고 달려와 예배를 드렸으며, 한쪽 편에서 현수막과 피켓을 들며 자리를 지켰다.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SNS에 공유하기도 한다. “을지로 노가리 골목을 찾아주시는 시민 여러분, 을지OB베어를 지키고자 하는 시민들이 준비한 시간을 즐겁게 즐겨주세요. 그리고 잊지 말아주세요. 캔맥주 들고 함께 계서도 좋습니다. 만선호프 불매로 함께 이 골목을 지켜요!” 라는 외침이 골목에 잔잔히 울려 퍼졌다.

사진=최인기 빈민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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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뮌헨의 테레지엔비제 에서는 1810년도부터 매년 ‘옥토버페스트’ 라는 거리 맥주 축제가 개최된다. 이렇게 오래된 전통과 가게를 지키려는 노력은 한국에서도 보편적인 흐름이 되었다. 하지만 한계가 너무도 분명하다. 을지OB베어를 시작으로 자연스레 청계천 을지로 일대 지역 커뮤니티의 거점이 되었지만 언제 쫒겨나고 개발로 헐릴지 모를 일이다. 노가리골목과 오랜 공구상가의 역사와 문화를 계승하고 상점가를 지키며 네트워크를 넓혀가기 위한 활동을 하면 어떨까? 주인장은 건물주 만선호프 측과 대화를 하던 과정이었다고 한다, ‘상생’은 대화를 통해 서로 함께 도모하는 길을 찾고자 하는 것이고 그게 모두를 위한 길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만선호프에 앉아 영문도 모른 채 술을 마시던 사람들도 차츰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듯하다. 나침반이 사라진 세상이라며 술자리에서 분통만 터트리지만 말고 고통 받는 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면 좋겠다. 아주 작은 위로라도 함께 할 때 우리는 놀라운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기에 이웃의 상처 하나 허투루 넘기지 않으면 더욱 좋겠다. 누군가 붉은 장미를 가게 앞에 꽂아 놨다. 봄바람과 함께 꽃의 호기가 제법 볼만하다.

사진=최인기 빈민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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