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이 보내는 하와이의 며칠은 우리가 매해 몇 번이고 준비하는 제사상을, 차례상을 다시 보도록 한다. 우리는 누구를 기리고 있는 것일까. 우리가 기리길 원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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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어려워졌지만 추석은 집안 행사 중 가장 많은 사람이 모여 가장 화려한 밥상(차례상)을 차리는 날이다. 집안사람들, 특히 집안 여자들이 밥상에 가장 많은 수고를 쏟는 날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엄마, 큰어머니, 작은어머니와 함께 전을 뒤집고, 제기에 음식을 담고, 예법에 맞게 차례상을 차리고, 제사를 지내고, 다시 상을 물리고 나면 문득 궁금해진다. 방금 우리가 기린 저 한자 이름의 주인은 누구지?

“하와이를 여행하며 기뻤던 순간, 이걸 보기 위해 살아있었구나 싶게 인상 깊었던 순간을 수집해 오기로 하는 거예요. (중략) 엄마가 젊었던 시절 이 섬을 걸었으니까, 우리도 걸어 다니면서 엄마 생각을 합시다. 엄마가 좋아했을 것 같은 가장 멋진 기억을 가져오는 사람에게…”

『시선으로부터,』도 집안의 어른 심시선을 기리는 이야기다. 유언에 따라 심시선의 기일을 챙기지 않은 지 10년, 장녀 명혜는 어머니의 제사를 지내자는 의견을 낸다. 그것도 시선이 젊은 시절을 보낸 하와이에서. 시선을 닮아 주관이 뚜렷한 명혜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는 명혜의 동생, 자식, 조카들은 명혜의 의견을 따라 하와이에서 각자 시선을 위한 것을 마련해 제사상을 차리는 데 동참하기로 한다.

훌라춤을 배우고, 화산의 흔적을 쫓고, 무지개를 사진에 담고, 두려워하던 서핑을 배워 한계를 극복하면서 각자의 시간을 보내느라 바쁜 와중에 명혜의 딸 화수는 쉽게 숙소를 나서지 못한다. 몇 달 전의 사고 후유증 때문이다. 화수의 직장과 갈등을 빚은 거래처 사장이 화수의 사무실에 염산 테러를 하고 자살한 사고가 있었다. 화수는 그날 이후 몸은 회복했으되 마음이 낫지 않아서 잠을 많이 자고 밥을 먹지 않는 식으로 증상이 이어졌다. 오랜 시간 준비하고 어렵게 방을 나선 화수의 마음을 이끈 것은 팬케이크다. 폭신하고 따뜻한 팬케이크를 먹으며 화수는 자신 안에서 어떤 부분이 채워지고 있다는 걸 느낀다. 동시에 할머니 시선을 생각한다. 시선이 자신에게 준 조각을, 시선이 겪어 온 고난 같은 것을.

시선은 그 시절 흔하지 않은 독일 유학생으로, 미술 평론가 혹은 칼럼니스트로 대중에게 알려진 사람이다. 전쟁으로 가족이 몰살당하고 도망치듯 택한 하와이행이었다. 그곳에서 저명한 미술가 마티어스 마우어를 만난 것은 시선을 살게도, 죽기 전까지 괴롭게 하기도 했다. 마우어는 시선의 그림을 보고 독일에서 공부할 수 있게 도왔지만 시선과 함께하는 내내 심리적으로 학대했고, 가끔은 신체적으로도 폭력을 행사했다. 시선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마우어를 떠나자 마우어는 자살했다. 이 일을 두고 대중은 ‘삶보다 사랑을 택한 예술가의 아름다운 죽음’으로 봤고 그래서 시선을 오래도록 미워했고, 시선은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어떤 자살은 가해였다”라고 회고했다.

그 문장은 화수에게도 들어맞았다. 시선은 자식을 먹여 살리려 많은 방송에 출연했고, 많은 글을 썼다. 그런 기록이 남아 딸들을, 손녀들을 돌봤다.

“할머니는 할머니의 싸움을 했어. 효율적이지 못했고 이기지 못했을지 몰라도, 어찌 되었든 사람은 시대가 보여주는 데까지만 볼 수 있으니까.”

가족은 여행의 마지막 일정으로 마티어스 마우어가 그린 시선을 보러 미술관에 간다. 그림 속 시선은 여성 ‘뮤즈’를 보는 남성 예술가의 ‘시선’을 그대로 따라 벗은 몸이다. 그림 속에서도 시선은 당당함이랄지 고집 같은 것을 꺾지 않았다. 그것이 그 그림의 제목 「My small perky Hawaiian tits」에 심란했던 가족의 마음을 낫게 한다.

하와이에서의 시간은 어떻든 시선을 떠올리게 했다. 시선의 책을 읽으며 시선의 ‘시선’, 시선이 젊은 시절 골몰했던 주제를 탐구하고, 시선의 취향을 떠올리며 시선을 위한 커피를 내리고, 시선을 포함한 가족에게 맛보여주고 싶은 도넛을 공수하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그렇게 시선의 제사상이 완성된다.

이들이 보내는 하와이의 며칠은 우리가 매해 몇 번이고 준비하는 제사상을, 차례상을 다시 보도록 한다. 우리는 누구를 기리고 있는 것일까. 우리가 기리길 원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우리는 어떻게, 그들을 기려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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