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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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채기 칼럼 = 문주영 편집위원] “…호랑이와 귀신에 대한 공포 때문에 밤에는 거의 여행하지 않는다. 야행할 경우 길손들은 보통 몇몇이 서로 끈으로 묶고, 등롱을 밝히고, 횃불을 흔들며, 고함을 지르고, 꽹과리를 치며 길을 간다.…”

우리나라에는 호랑이가 ‘엄청’ 많았다. 조선 말 우리나라를 여행한 영국의 이사벨라 비숍(1831~1904)이 이렇게 밝혔을 정도다.

육당 최남선(崔南善․ 1890~1957)은 우리나라를 ‘호담국(虎談國)’이라고 했다. 호랑이가 많은 만큼 ‘호랑이 이야기’도 넘쳤다.

유명한 ‘무용총’ 수렵도에는 고구려 무사가 호랑이를 사냥하는 장면이 등장하고 있다. 우리 주변에는 수천 년 동안 호랑이가 있었다. 우리나라 국토도 ‘호랑이 형상’이라고 했다.

이 호랑이를 깎아내린 것은 알다시피 제국주의 일본이었다.

일본은 우리 땅을 ‘강제합병’하면서 호랑이가 아닌 ‘토끼’라고 우겼다. 호랑이 형상의 ‘꼬리’인 포항의 ‘호미곶(虎尾串)’을 ‘토끼 꼬리’로 비하하기도 했다.

자기들 실습선이 이곳에서 좌초, 모조리 익사한 사건이 발생하자 책임을 우리에게 전가하며 등대를 세우라고 압박하기도 했다. 결국 우리 예산으로 등대를 만들고 있었다.

토끼는 약한 짐승이다. 힘 있는 천적에게 사냥이나 당하는 짐승이다. 위험을 느끼면 겁을 먹고 도망치는 게 고작인 짐승이다.

그래서 토끼는 귀가 크다. 힘이 약하기 때문에 큰 귀로 미세한 소리도 놓치지 않고 듣기 위한 것이다. 그래야 천적을 피해 재빨리 도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토끼는 눈도 밝다. 캄캄한 밤에 달나라에서 방아를 찧을 수 있을 정도다. 그래서 토끼를 ‘명시(明視)’라고도 했다. 별다른 방어수단이 없는 토끼는 그 예민한 눈과 귀로 천적을 피하고 있다.

토끼는 다른 야생짐승과 달리 몸에서 냄새도 잘 풍기지 않는다고 한다. 들키지 않기 위해서다.

그런데, 제국주의 일본이 써먹던 그 토끼라는 표현이 21세기가 되어서도 들리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또 ‘집토끼, 산토끼’ 얘기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산토끼’를 공략하고 ‘집토끼’를 지키자는 등이다.

언론은 ‘이른바 토끼’라는 ‘수식어’조차 생략하고 있다. ‘인용부호’도 없이 그냥 토끼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렇다면 토끼는 아예 ‘보통명사’가 되고 있다. ‘관용어’처럼 통하고 있다.

대선이 3개월여 남았는데 벌써부터 ‘토끼’라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3개월 동안 지겹게 들릴 것이다.

유권자가 ‘약한 토끼’라면 선거판 마음대로 다룰 수 있을 것이다. 유권자를 아래로 보는 가벼운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이제는 좀 고칠 만한데 선거판에서 유권자는 여전히 ‘토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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