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리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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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클레임]  연암 박지원(朴趾源 1737~1805)열하일기앞부분 도강록(渡江錄)’에 나오는 얘기다.

만주 땅에서 밤을 맞게 되자 사람들은 30여 군데에 횃불을 켜놓았다. 아름드리나무를 베어다가 먼동이 틀 때까지 환하게 밝혔다. 군뇌가 나팔을 한 번 불면(軍牢吹角一聲), 300여 명이 일제히 고함을 질렀다. 호랑이를 경비하기 위한 것이었다(所以警虎也).

조선 말, 우리나라를 여행한 영국 할머니 이사벨라 비숍(1831~1904)도 저서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에 이렇게 적었다.

호랑이와 귀신에 대한 공포 때문에 밤에는 거의 여행을 하지 않는다. 야행(夜行)할 경우 길손은 보통 몇몇이 서로 끈으로 묶고, 등롱을 밝히고, 횃불을 흔들며, 고함을 지르고, 꽹과리를 치며 길을 간다.

조선호랑이는 이마에 임금 왕()’자 비슷한 무늬가 있다. 중국 사람들은 그래서 조선 호랑이를 왕대(王大)’라고 부르며 무서워했다. 중국 발음으로는 왕따. 우리가 집단 따돌림을 왕따라고 하는 것과 같은 발음이다.

만주에서 사는 중국 사람들에게는 그 왕따가 공포의 대상이었다. ‘사람을 제물로 바치며 산신령처럼 숭배하기도 했다.

심지어는 죽은 호랑이를 보고도 덜덜 떨 정도였다. 어떤 조선의 사냥꾼이 호랑이를 잡았는데, ‘운반이 문제였다. 400kg이나 되는 호랑이를 혼자서는 도저히 옮길 수 없었다. 근처에 사는 중국 사람들에게 운반비를 주겠다고 해도 그들은 죽은 호랑이 근처에도 접근하려고 하지 않았다.

사냥꾼이 산돼지고기와 술을 대접하며 부탁하자 그들은 조건하나를 제시했다. 호랑이의 몸에 박혀 있는 탄환을 꺼내서 주면 운반하겠다는 조건이었다. 운반비도 받지 않겠다고 했다.

이유가 있었다. 호랑이를 사살한 탄환은 액운을 쫓아주는 부적이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중국 사람들 사이에서 비싼 값에 거래되고 있다고 했다.

이 호랑이가 만주인 중국 동북지역에서 주민들을 공격하고 있다는 소식이 잊을 만하면 들리고 있다. 사람 따위는 무시한 채 유유하게 돌아다니고 있다는 목격담도 보도되고 있다.

그런데 그 호랑이를 백두산호랑이라고 했다. 만주와 연해주, 남북한 등 광대한 지역을 지배하던 호랑이를 백두산호랑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지금도 지린성과 헤이룽장성 등 넓은 지역에 분포하고 있다는데도 백두산호랑이.

우리도 다르지 않다. 대전 오월드에 있던 백두산호랑이를 13일 경북 봉화의 국립백두대간수목원 호랑이 숲으로 옮겼다고 발표하고 있다.

그렇다면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 호랑이는 뭐라고 부를 것인가. 외국인들에게 인기인 호랑이 캐릭터 더피(Duffy)’의 원형은 호작도(虎鵲圖)’라고 했다. ‘호작도는 까치와 호랑이가 함께 등장하는 우리 민화다. 더피를 응용한 상품도 나오고 있다.

백두산호랑이는 백두산에서 서식하는 호랑이를 의미할 뿐이다. 만주벌판에서 포효하던 조선호랑이는 오그라들고 있다. 이른바 동북공정으로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를 왜곡하더니, 호랑이 영역까지 줄이는 셈이다.

조선호랑이, 한국호랑이라고 해야 할 호랑이를 우리 역시 백두산호랑이라고 부르고 있다. 조선호랑이를 스스로 지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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