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리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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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말 개혁가 김옥균(金玉均․ 1851~1894)은 문장이 뛰어날 뿐 아니라 글씨도 달필이었다. 그림은 일류로 일컬어졌고, 가무와 음곡도 잘했다. 거문고를 능숙하게 연주했고, 노래 솜씨도 좋았다. 심지어는 ‘도박’에도 일가견이 있었다고 한다.

김옥균이 젊은 시절 하인과 함께 돈 100냥을 가지고 상경하고 있었다. 도중에 주막에서 하루를 묵게 되었는데, 소란한 소리 때문에 눈을 떴다. 하인이 허락도 없이 골패(骨牌) 도박판에 끼어들었다가 100냥을 모두 날리고 걱정이 되어서 투덜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김옥균은 별 말 없이 하인을 물러나게 하고 그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도박판에 있던 ‘판돈’을 싹쓸이해버렸다.

김옥균은 그러고 나서 도박을 하던 사람들에게 돈을 모두 나눠졌다. 그러면서 “노잣돈으로 필요하니 내 돈만 찾겠다”며 자신의 돈 100냥만 회수했다는 것이다.

도박판은 빠져들면 헤어나기가 쉽지 않은 판이다. 김옥균의 하인도 ‘상전’의 돈까지 가지고 도박을 하고 있었다.

이 도박을 근절시킨 사또의 얘기가 있다.

어떤 관리가 지방의 사또로 부임, 관내 순시에 나섰다. 모든 게 괜찮았지만 도박꾼이 많은 게 문제였다.

사또는 아전을 불러서 엄하게 명령했다.

“반상(班常)을 가리지 말고 죄다 잡아들여라.”

사또의 명령에 따라, 집집마다 뒤져서 도박꾼을 체포했다. 사또는 이들을 꾸짖었다.

“생업 제쳐놓고 할 짓이 없어서 도박이냐”고 타이르면서 “다시는 도박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풀어주겠다”고 했다.

풀어주는 대신 ‘조건’이 있었다. 또 붙들려오면 ‘사람 아닌 소 새끼’가 될 것이라는 조건이었다.

그렇게 풀어줬지만 도박은 오히려 더 늘었다. ‘나는 소다, 소 새끼다’하고 자백(?)하면 풀어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사또는 얼마 동안 지켜보다가 다시 체포령을 내렸다. “소 새끼를 잡아왔으니 모두 소 우리에 가둬라”고 지시했다. 도박꾼들은 소처럼 꽁꽁 묶여서 갇혔다.

이튿날, 사또는 “소를 아주 싼값에 판다”는 방을 붙였다. 소장수는 물론이고 구경꾼도 잔뜩 모여들었다.

사또는 묶여 있는 도박꾼을 끌어내 ‘경매’에 붙였다.

“여기 소 새끼가 이렇게 많으니 골라서 사 가라.”

도박꾼의 가족은 모두 ‘사람값’ 아닌 ‘소값’을 치르고 이들을 사들여야 했다.

그런데 ‘한 마리’는 팔리지 않고 있었다. 이유를 물었더니, 가족이 없는 ‘고아’였다. 사또는 그 ‘한 마리’는 그냥 풀어줬다.

이후 이 고을에서는 도박꾼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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