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률 작가
박상률 작가

[뉴스클레임] 올해가 2022년이니까 1980년부터 42년이 흘렀는데도 바로 어제 겪은 일 같다. 

내 삶의 물길을 바꾼 5.18. 지극히 평범한 상대 졸업생의 삶을 살았을 나를 글쟁이로 살게 한 5.18...

광주에서 대학 4학년 때 겪은 5.18. 광주의 바람과 햇살을 견딜 수 없어서 서울로 도망치듯(?)하여, 대학원은 서울에서 다닐까 싶었는데, 뜬금없이 서울에서 오월 동인 시집을 만났으니, 이런 게 운명이라면 운명! 내가 자주 가던 서점(신림동 동방서적)에서 오월 동인 시집을 만나지 않았다면 글을 쓰고 살지 않았으리라.

오월 동인 시집을 보고 나니 시가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그간 중고등학교 교과서 시에만 갇혀 있었으니 시가 내 흥미를 못 끌었던 건 당연지사. 오월 동인 시집을 읽은 뒤 나도 모르게  뭔가 끼적였다. 끼적이고 났더니 후련했다! 그렇게 시작했다. 나의 시작(詩作)은. 

차츰 내 글쓰기의 영역은 넓어졌다. 시에서 시작하여 희곡으로 소설로 동화로.

80년 5.18 때나 지금이나 나란 사람은 소심하고 혈기방장하지 못하여 남을 이끌지 못한다. 아니 남 앞에 나서는 것조차도 부담스러워한다. 오죽하면 국민학교 어릴 때에도 ‘차렷, 경례!’하는 게 싫어 급장(반장)을 석 달 넘게 한 학년이 없었을까... 하지만 옳다고 여기면 그 줄에서 이탈은 하지 않는다.

죽는 날까지 5월을 끌어안고 살 운명이기에 적지 않게 5월을 이야기로 담아냈다. 한 이야기 끝나면 이제 그만 써야지 했는데 어느새 새 이야기를 또 시작하곤 했다. 

오월 동화 때문에 공격도 많이 받았다. 소설가 이외수 선생이 입바른 소리를 해 공격을 많이 받을 때 나는 이외수보다 더 나쁜 놈이란 말을 들었다. 이외수는 어른 독자 소설만 썼는데, 박아무개는 청소년소설에 동화를 써 말랑말랑한 아이들 머릿속을 흐려놓는 나쁜 놈이 암약하고 있다고.

이외수 선생처럼 대가 셌다면 나도 맞대꾸를 하며 싸웠을 것이다. 나는 소심한데다 혈기방장하지 못하여 기껏 ‘나는 암약하지 않았는데... 내놓고 책을 펴냈는데... 이제 알겠소. 당신네들이 책을 안 읽는 사람들이란 것을... 내 책들이 적지 않게 팔렸는데 암약이니 뭐니 하는 소리를 하는 걸 보면...’. 그러면서 ‘십알단’ 무리가 ‘회개’하라며 물어뜯을 땐 ‘나는 날마다 회개도 하고 참회도 하고 반성도 하고 성찰도 하니 내 걱정은 마시오...’라고만 대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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