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 객원위원
이정현 객원위원

[뉴스클레임] ESG니 RE100이니 생소한 용어들이 마치 일상어처럼 사용되고 있다. 환경이나 지구온난화와 관련된 용어다. 이런 용어가 많이 나오는 것 자체가 그만큼 문제 인식은 해도 실천이 어렵다는(혹은 하기 싫다는) 것을 방증한다. 

사실 친환경 사회를 만드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너무나도 단순해서 무책임하다고 느낄 정도로 간단하다. 결국은 ‘돈’이다. 요금 인상.

가격이 올라버리면 사람들은 어떻게든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갖은 수를 다 쓴다. IMF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절약하고자 갖은 방법을 썼던 추억이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담배 꽁초에 남은 연초마저 탈탈 털어서 한 개피로 만들어 폈다는 경험담이 유머처럼 돌아다니던 시절이었으니… 그리고 그 가격이나 상승세가 지속되면 기존의 시스템까지 바뀌게 된다. 보통의 경우는 외부에서의 공허한 외침이지만, 시민들 스스로 필요성을 느꼈을 때의 사회적 영향력은 가히 경이적이다.

예를들어, 한국의 분리수거율은 독일 다음으로 높은데(2013년 기준, 독일 65%, 한국 59%), 이것은 배출하는 쓰레기마다 비용을 부과하게 되면서 변화한 결과다.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4년부터 ‘쓰레기 종량제’ 정책이 본격적으로 시행된 것.

물론 도입 초기엔 엄청난 국민적 저항이 있었다. 쓰레기를 돈 주고 버린다는 개념 자체가 없던 세상이었으니 더욱 그러했다. 시대가 시대인지라 정부의 권위가 아직 강한 편이었고, 국민들도 SSKK 문화(시키면 시키는대로 하고 까라면 까는)에 익숙했기 때문에 비교적 빠르게 정착됐다.

시민들 입장에선 없던 지출이 새로이 추가된 것이지만, 조금이라도 비용을 줄이고자 했던 시민들은 열심히 방법을 모색했다. 어차피 돈 주고 산 종량제 봉투라면 더 많이 담아서 버리는 것이 이득이기에, 봉투에 가득 채웠고, 또 열심히 압축해서 버렸다. 재활용이 가능한 쓰레기는 분리배출 해 양을 줄였다. 이로 인해 배출되는 폐기물의 양은 극적으로 감소됐고(시행 3년 후 27% 감소), 쓰레기는 압축된 덕분에 폐기물 처리 효율을 높였다. 이후에도 지속적인 노력을 더해 대한민국은 분리수거율 세계 2위를 달성하기도 했다. 이제는 오히려 시민들이 나서서 더욱 분리수거를 잘 할 수 있게 해달라며 정부와 기업에 요구를 하는 수준에 까지 이르렀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낭비하는 행위에 대해 ‘물 쓰듯’이라고 한다. 이 속담이 아직까지도 남아있을 수 있는 것은 여전히 수도요금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이미 20년 전부터도 전문가들은 수도요금의 현실화 및 인상 요구가 있었으나 여전히 저렴한 편이다. (2021년 기준, 영국의 1/4, 미국의 1/3, 일본의 1/1.6)

현재의 수도요금이 영국 수준으로 비쌌다면, 싸이의 흠뻑쇼 입장권은 지금보다 몇 배는 했을 것이고, ‘물 쓰듯 한다’는 속담은 지금처럼 낭비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아껴쓴다’는 의미로 바뀌었을지 모른다.

수도꼭지 앞에 절수 스티커와 여기저기 절수 포스터를 붙이는 프로파간다 행위 보다, 수도요금을 올리는게 훨씬 경제적이고 효율적이다. 비용도 들지 않고, 오히려 수익이 늘어나기까지 한다.

앞서 말한 분리배출된 폐기물들이 자원화가 안 되거나 재활용 제품이 잘 소비가 안되는 것도, 사용하던 전자/가전 제품이 고장나면 수리해서 쓰기 보단 그냥 버리고 새로 사버리는 것 또한, 돈 때문이다.

거칠고 칙칙한 재생용지보다 매끈하고 새하얀 신생펄프가 저렴하고, 수리 비용 보다 새 제품을 구입하는게 저렴하고, 폐기물을 자원화 하는 것 보다 단순 소각이나 퇴비화 시켜버리는 것이 저렴(보조금을 투입하기도 했으나 거꾸로 처리업체의 부패와 방만을 낳았다.)한게 현실이니, 사람들이 싸고 편한걸 선택하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들에게 아무리 도덕적 비난과 탓을 해도 소용이 없다. 시민 모두가 그 가격의 갭을 뛰어넘을 만큼의 신념이 가득한 이데올로그가 아니라면야, 돈 들여가며 백날 정책 홍보를 한들 효과가 없을 수 밖에 없다.

최근 논란이 되는 전기요금도 마찬가지다.

요금 인상의 명분은 익히 알고있듯이 러-우크라 전쟁으로 인한 유류 공급 문제와, 설상가상으로 코로나 등 세계 경제의 불안으로 인해 원유값이 폭등하고, 이로 인한 한전의 막대한 적자라고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전기요금 인상은 에너지 사용량 절감효과를 불러올 것이다.

게다가 한국의 전기요금은 수도요금과 마찬가지로 저렴한 편(2020년 기준, 가정용은 독일의 1/3, 일본의 1/2.5, 산업용은 이태리나 독일, 일본의 약 1/2)인데다, 탈화석연료(혹은 탈핵)와 차세대 전력 시스템을 정착시켜야 하는 전기 에너지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더욱 높은 폭의 전기요금 인상은 피할 수 없는 냉엄한 현실이다.

앞서 언급한 사례들 처럼 전기요금이 오르면, 시민, 기업, 정부 구분 할것 없이 비용 절감을 위해 앞다퉈 변화할 것이다. 전기 소비량을 줄일 것이고, 제품을 고를 때 에너지효율 등급이 높은 제품을 고르고, 스마트 그리드나 ESS(Energy Storage System, 에너지 저장 장치)의 구축을 나설 것이다.

일부는 일본의 사례를 언급하며, 일본은 일찍이 차세대 전력 시스템을 갖췄다고 성토하기도 하지만, 일본이 특별히 우수한 민도를 가지고 있거나 정부나 기업들이 현명했다기보단, 전기 민영화로 인한 높은 가격의 전기요금 탓에 생존을 위해선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해야만 했을 뿐이다. 그러니 한국도 충분히 가능하다, 전기요금을 올리면.

이러한 솔루션은 대중적 저항과 반발이 클 수 밖에 없다. 실제로 물의 경우는 인권적인 측면에서라도 쉽사리 가격을 올리지 못해왔다. 전기요금 인상은 일반 가정도 가정이지만 기업에도 큰 타격을 줄 것이고, 물가 상승과 소비 감소로 인한 경제적 혼란이 올 것을 예상할 수 있다. 누구라도 그런 정치적 경제적 부담을 져내기란 결코 쉽지 않을 터.

문재인 전 대통령은 민주당 출신 대통령 답게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동물 같은 PC(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 이슈들을과 함께 환경 이슈도 그럴듯하게 언급했지만, 결국 제대로 된 변화 하나 명확하게 이뤄내지 못했다.

그리고 이어진 윤석열 정부. 타이밍 좋게 한전 적자 이슈가 터져나오고, 전기요금 인상이 확실시 되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전기료 인상은 대통령의 몽니나 전임 대통령 핑계대기, 한전의 뻔뻔함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미래의 역사가들은 친환경 사회로의 문을 연 대통령으로 평가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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