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클레임] 이 땅에서 60 년 하고도 몇 해 더 넘도록 사는 동안 늘 맞닥뜨린 건 비상식 내지 몰상식이었다. 그러기에 나는 이 땅엔 진보 세력과 보수 세력이 있는 게 아니라 상식 세력과 비상식 세력이 있다고 본다. 수구 꼴통과 자신의 기득권만 유지하려는 무리는 당연히 비상식 세력이다. 그들 틈바구니에서 자진하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게 참으로 용하다.
비상식자들이 들고 나온 ‘한 학기 한 권 읽기’ 폐지 방침. 그들은 한 학기에 한 권 읽기가 불편하다. 나도 처음엔 ‘상식적으로 생각하여’, 한 학기에 한 권보다 더 많이 읽자는 취지인 줄 알았다. 그래서 한 학기 한 권이라는 말에 붙들리는 것보다 더 많은 책 읽기를 권해야 하는 줄 알았다. 근데 더 많은 책읽기를 권하는 게 아니라 아예 한 학기 한 권 읽는 것마저 없애자는 얘기이네!
중고등 국어나 문학 교과서에는 시, 수필, 소설, 희곡이 실린다. 시나 수필 등 짧은 글은 작품 전체가 통째로 실리지만 소설이나 희곡은 부분을 발췌해서 싣는다. 독서의 맛을 아는 학생들은 부분만 실린 문학작품의 전체를 보기 위해 그 작품집을 구해 읽는다. 시는 한 편이 다 실리지만 그 시가 실린 시집 전체를 읽어 시인의 ‘긴 호흡’을 맛본다. 이게 일반적이고 상식적이다.
그러나 시험 선수들은 참고서와 자습서, 문제집만 보아도 시험을 잘 치른다. 그런 책엔 교과서 작품을 잘 분석해 내놓는다. 줄거리는 물론 주인공의 성격, 의성어나 의태어, 작가가 즐겨 쓰는 어휘 등 모든 것을 분석하고 해체해서 잘 설명해준다. 시험 선수들은 그것만 외운다. 시험 보는 데에 전혀 불편하지 않다, 오히려 답을 빨리 고른다.
근데 그게 문학 공부는 아니다. 온 작품을 읽으면서 앞 뒤 맥락도 살피며, 어떤 묘사 문장에 한참 동안 빠져 있기도 하고, 작가나 등장인물의 숨은 의도 등을 상상하면서 읽으면 더 재미있다. 그러나 우리의 학교에선 그럴 시간이 없다. 뭐든지 요약 정리해서 그냥 머릿속에 집어넣어야, 그게 ‘효율적인’ 공부란다. 언제 온 작품을 읽고 있느냐고 볼멘소리를 한다. 그런 목소리에 맞춰 한 한 기에 한 권 읽기를 빼자고 했을까? 참으로 자상스럽기 짝이 없는 비상식 어른들이다. 하긴 본인들도 그렇게 시험 선수를 거쳤으니...
90년대 말부터 이런저런 소설과 시가 교과서에 실려 있어 늘 중고등학교에 불려 다닌다. 교과서에 실린 내 작품을 배운 뒤 교사가 온 작품을 읽어보자고 하고선 마지막으로 작가를 불러 얘기를 듣자고 한다. 나는 일정만 맞으면 소 갈 데 말 갈 데 가리지 않고 20 년 넘게 전국을 누비고 다녔다.
청소년 시기엔 글을 쓰는 작가를 한번 본 것만으로도 평생 좋은 추억이 될 성싶어, 나는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인물을 구경 시켜주러’ 다닌다고 늘 우스갯소리처럼 말한다. 그게 진짜 문학 공부이다. 교과서에만 그치지 않고 온 작품을 읽은 뒤 작가에게 작품의 행간에 숨은 의미까지 물으며 상상력의 확장을 꾀하는 것. 청소년들에겐 그게 필요하다.
비상식적인 어른들은, 교과서 밖에서도 많은 교과 활동을 할 수 있는데 굳이 한 학기 한 권 읽기라는 말에 붙들려 있을 필요가 있을까라고 생각하는 듯... 그걸 폐지하면 책을 더 다양하고 폭 넓게 읽을 거라고 진짜로 믿는 걸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