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영의 ‘가난한 도시생활자의 서울산책’ 읽고 길 떠나기

[뉴스클레임]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성철’에게 부탁할 일이 있어 사무실에 들렀다. 그는 "공공임대주택 예산 삭감 5조 7천억을 돌려놔라!" 는 주제로 농성을 벌이고 있는 국회 앞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고, 대신 ‘아랫마을’ 사람들과 ‘윤영’이 점심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갈비탕에 밥을 말아 다 비울 즈음 저자 '윤영'에게 ‘가난한 도시생활자의 서울 산책’이라는 좀 긴 듯한 제목의 책을 받았다. 먼저 컬러풀하고 아기자기한 삽화의 표지가 눈에 확 띄었다. 저자에 따르면 그림 하나하나에도 의미가 담겨 있단다. 용역도 있고, 고양이도 있고, 자신도 있단다. 자세히 보니 신문 같기도 하고 유인물 같은 걸 들고 있는 한 사람이 보인다. 그 옆에 빨간 자전거는 내 것이라 우겼다. 아니면 말고…
내 자리로 들어와 커피 한잔 빼 들고 따뜻한 가을 햇볕 드는 창가에 앉아 첫 장을 펼쳤다.

낯익은 사람들과 익숙한 장소가 등장하자 책을 접지 못하고 서서히 스며들었다. 평화로운 마을이 엿보이다가도 곧 용역반이 들이닥치기도 한다. 홍대 앞 왁자지껄 두리반을 거쳐 14년 전 참사가 벌어진 용산 앞까지 걷는다. 이날의 현장에 있었던 철거민들이 당시의 참혹한 풍경을 들려준다. 아현동은 가짜 레트로는 범접할 수 없다고 말하는 노점상들의 이야기와 어머니와 함께 살던 1981년생 철거민 박준경 님의 슬픈 사연을 들려주고, 청계천과 국일 고시원을 지나 광화문에서는 1842일 동안 장애인이 이곳에서 눈물겨운 농성을 벌인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저항의 성과물로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종로 대로변 뒷면에 숨겨진 마을 돈의동의 김동선 님처럼 ‘도시를 함께 만들어 왔지만 아무런 지분을 얻지 못한 가난한 이들’ 에 대한 애틋한 사연도 빠트리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잠실 포장마차 김영진 님의 이야기까지 책 속에는 잊을 뻔한 열 한명의 사람들과 장소를 둘러싼 내용이 마음을 움직이며 차곡차곡 담겨 있다.
이 책에서도 언급했듯이 서울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빠른 변화를 경험했다. 끊임없이 헐리고 새것이 들어섰으며 지금도 멈추지 않는다. 과거의 흔적이 미끈하게 지워진 오늘의 서울은 더 과거를 회상시키지 못한다. 집과 도시, 그리고 공간이 재산증식의 수단으로 전락하였기 때문이다.
“이 무수한 주거 전쟁들의 마지막에는 단지 이사가 아니라 집을 빼앗긴 사람들,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렇게 사람들이 떠난 자리를 새롭게 차지한 사람들은 쫓겨난 사람들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걸 나는 무엇보다 내 자신의 무지를 통해 알 수 있었다. 누군가의 삶이 위태로울 때 바로 옆 내 삶은 그토록 평온했다는 것이 두렵다. 타인의 희생 위에 만들어진 평화는 가짜일 텐대, 이 평화를 의심 없이 즐겼던 시간은 진짜로 달콤했기 때문이다.”
134쪽에 밑줄을 그었다. 삶에 쾌적이 행간에 잘 드러나 있어 미소 짓게 했다. 작가는 네 살 때 상계동 주공아파트에 살았다는 것을 알았다. 2010년 ‘빈곤사회연대’ 활동을 시작하며 경의선숲길 종착지 인근의 반지하 방에 살았다는 것도 알았다. 이렇게 작가는 자신의 기억을 소환한다. 단순히 관찰자와 의무감으로 쓴 글이 아니고, 해당 공간에 대한 사건의 해석뿐만 아니라 개인의 감정과 지역을 둘러싼 서사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 있게 어우러져 있는 건 그 스스로 실천적인 활동을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고 일구어낸 성찰이기 때문에 소중하다 할 것이다.
반빈곤 운동은 거친 일이고 고되다. 뭔가를 쓴다는 것은 정신적 경제적 스트레스로 지쳐 있을 때 ‘평정심’을 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나아가 그 결과물이 운동적 성과물이 될 수 있다면 ‘꿩 먹고 알 먹기’가 아닐까? 윤영은 나에게 “이제 더 쓰지 않을래요” 라고 말했지만 나는 “쉽지 않을걸요”라고 응대했다.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자신의 활동을 평가하고 객관화시켜 뭔가를 써 내려가고 있을 것이다. 그게 꼭 출판물일 필요는 없다. 쓰고, 찍고, 그리며, 활동의 과정을 남기면 이 또한 누군가에게 실천의 영감이 되리라.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한다.
어떤 책은 책장에 꽂아 둔 채 숙제하듯 읽다가 끝내 포기하는가 하면, 펼치자마자 다 읽어야 속이 풀리는 책이 있다. 바로 이 책이다. 반빈곤 활동가의 시선으로 바라본 ‘도시와 공간’을 둘러싼 이야기, 자신의 체험이 온전히 묻어있는 기록물인 이 책은 260페이지로 사진과 글이 시원시원하게 편집되어 읽기에 편하다. 사회과학서적을 출간하는 ‘후마니타스’에서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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