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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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클레임]  나라가 기울던 1908년, 단재 신채호(申采浩·1880∼1936)는 ‘을지문덕’이라는 책을 집필했다. 그러나 자료가 부족했다. 신채호는 단편적으로 남아 있는 역사 기록을 깡그리 뒤져야 했다.

“다행이도다, 을지문덕이여. 몇 줄의 역사가 남아 있도다. 불행이어라, 을지문덕이여, 어찌 서너 줄의 역사밖에는 남지 않았는가.”

책에서 신채호는 ‘영웅’을 강조했다.

“한 나라의 강토는 영웅이 몸을 바쳐 장엄하게 한 것이며, 한 나라의 민족은 영웅이 피를 뿌려 보호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정신은 산과 같이 서 있고 그들의 은택은 바다와 같이 넓다.…”

당시 수나라 양제는 고구려를 정벌하겠다며 무려 113만의 대군을 동원했다. 겁을 주기 위해 200만이라고 부풀렸다. 고구려로 출정하는 군사의 행렬이 960리에 뻗쳤다. 장장 400km나 되었다. 서울∼부산 거리를 군사로 꽉 채운 것이다.

하지만 고구려에는 을지문덕이라는 ‘불세출의 영웅’이 있었다. 을지문덕은 그 많은 적을 맞아서도 태연했다. 오히려 시 한 수를 보내 수나라 장수를 조롱하고 있었다. “싸워서 이긴 공이 높으니 그만 그치기 바란다(戰勝功旣高 知足願云止).”

‘살수대첩’에서는 30만5000의 수나라 군사 가운데 생존자가 고작 2700에 불과했다. 99% 이상이 전멸한 것이다. 세계 전쟁사에서 ‘전무후무’한 압승이었다.

수나라의 병부시랑 곡사정이 고구려로 망명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병부시랑은 오늘날 국방부 차관급인 고위 관리다. 그랬으니 일반 군사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전투 의욕을 상실하고 있었다. ‘고구려 공포증’이었다.

고구려는 을지문덕을 구심점으로 똘똘 뭉쳐서 승리하고 있었다. 반면 영웅이 없는 수나라는 지리멸렬이었다.

수나라는 영웅이 아쉬웠다. 나라를 구해줄 ‘구국의 영웅’이 아니었다. 오히려 수나라를 뒤집어줄 영웅이 간절했다. 나라는 망하든 흥하든 관심 밖이었다. 중요한 것은 살아남는 것뿐이었다.

실제로, 수나라의 민생은 전란과 학정으로 도탄에 빠져 있었다. 890만 호에 이르던 인구는 200만 호 수준으로 격감하고 있었다. 죽은 백성도 적지 않았지만 먹고살 곳을 찾아 이리저리 흩어졌기 때문이다.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나고, 도적은 끓고 있었다.

뮤지컬영화 ‘영웅’을 200만 관객이 관람했다는 소식에 돌이켜보는 과거사다. ‘영웅’은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 후 순국하기까지 과정을 다룬 영화라고 했다.

보도에 따르면, 관객들은 ‘영웅’에 열광하고 있다. 관람하면서 흘린 눈물을 닦은 ‘젖은 휴지’를 찍어 올리는 ‘폭풍 오열’ 인증과, 잊지 못할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고 다짐하는 ‘역사 공부’ 인증, 안 의사와 독립군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한 ‘팬 아트’ 인증 등이 잇따르고 있다고 한다.

왜 이렇게 열광하는 것일까. 물론 ‘뛰어난 작품’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더 있다. ‘영웅 부재’이기 때문이다. ‘영웅의 출현’을 기다리는 심정이 반영된 게 아닐까 싶어지는 것이다.

알다시피 경제는 난국이다. 잔뜩 치솟은 물가는 민생을 고달프게 하고 있다. 여기에다 북한은 핵탄을 ‘기하급수’로 늘리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나라꼴이 뒤숭숭한 상황이다.

그런데 난국을 수습할 영웅은 나타나주지 않고 있다. 정치판은 오로지 싸움질이다. 그래서 더욱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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