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 낚시이야기
사진출처: 낚시이야기

[뉴스클레임]

번역가이자 소설가였던 안정효 선생의 타계를 계기로 글쓰기의 ‘엄중함’을 다시 생각해본다. 글은 누구든 쓸 수 있다. 하지만 글을 잘 쓰기는 어렵다. 그래서 영국의 작가 서머싯 몸은 ‘글을 잘 쓰는 방법엔 세 가지가 있다. 그런데 그 세 가지가 무엇인지 아는 이는 하나도 없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글쟁이들은 글을 잘 쓰는 방법을 책으로 내기도 한다. 그러나 필자 자기만의 방법이다. 사람마다 글을 잘 쓰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자기가 쓰는 모국어의 특성을 빨리 알아차려야 하다는 건 모든 책의 공통점이다.

안정효 선생은 번역으로 글쓰기를 시작했다. 번역으로 자리를 잡은 뒤 소설을 썼다. 그의 책 가운데 가장 처음 읽은 것도 번역서인 콜롬비아 소설가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이었다. 월간 잡지라 불릴 만큼 번역서를 많이 냈다.

‘번역가 안정효’를 떠올리면 번역 실력은 곧 모국어 실력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그는 한국어에 대해 굉장히 엄격했다. 영어로 소설을 쓰고, 자신의 한글 소설을 직접 영어로 번역할 정도로 영어에 능했지만 그는 무엇보다도 한국어 특성을 잘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영어를 잘 알기에 ‘가고 있는 중이었던 것이다’ 같은 문장을 싫어했다. 문맥에 따라 ‘갔다’, ‘가고 있다’ 등으로 하면 그만인데 하면서 말이다. 나는 문학 강의 때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이다’는 만담가 장소팔이 무성영화 시대 때 변사들이 즐겨 쓰던 말투를 흉내 내서 장소팔 고춘자 만담 때 라디오 청자들을 웃게 하려고 쓴 말이니까 서술이나 묘사 문장에선 될 수 있으면 ‘것’을 쓰지 말라고 이른다.

그의 실천문학 현상응모작이었던 소설 ‘하얀 전쟁’의 원래 이름은 ‘에필로그를 위한 전쟁’이었다. 안정효는 이 제목에 무척 집착했다. 그런데 당시 심사위원장이었던 소설가 이문구 선생이 강하게 반대하면서 ‘에필로그를 위한 전쟁’은 가벼운 단편소설 같은 인상을 준다고 했다.

안정효 선생과는 일면식도 없다. 그런데도 인연은 있다. 그는 낚시 광이다. 낚시하면서 작품 구상을 많이 했단다. ‘미늘’ 같은 낚시 관련 제목의 소설도 있다. 수년 전 낚시 텔레비전에서 그의 낚시 기행을 찍었다. 그 다음 차례가 나였다. 

나는 낚시를 하지 않는다. 근데 진도 출신이기에 당연히 바다 낚시를 할 거라 여겨 나를 섭외했다. 나는 낚시를 못하기에 그 프로에 어울리지 않는다며 사양했지만 제작진은 막무가내였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내 핑계로 진도 기행을 하고 싶었던 듯. 그래서 2박 3일인가 진도를 돌아다니며 아버지가 낚시하던 저수지에 가서 옛날이야기를 하게 했고, 그런 뒤엔 읍내 낚시가게 사장과 나를 한 배에 태워 바다 낚시를 하게 했다.

나로선 처음 해보는 바다 낚시였다. 그런데 물고기들이 눈이 멀었는지 내가 낚싯대만 드리우면 학꽁치며 옥돔이 마구 딸려 올라왔다. 곁에서 조언을 해주던 낚시가게 사장 낚싯대는 줄곧 잠잠했다. 나중에 이 프로를 본 후배 소설가며 선배 시인이 나를 만났을 때 낚시 잘 하더라는 덕담을 했다. 그때 알았다. 낚시를 즐기는 작가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안정효 선생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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