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박상률 작가
사진=박상률 작가

[뉴스클레임]

오래 전 1970년대에 가수 박인희가 부른 ‘그리운 사람끼리 두 손을 잡고/마주 보고 웃음 지며 함께 가는 길~’이라는 노래가 입 속에서 웅얼거린다. 요즘 주변 사람들이 자꾸만 세상을 버리고 가는 이들이 많아서 그런 듯. 이런저런 인연이 있지만, 난 워낙 사람을 잘 안 만나는 인간인지라 그리워하고 애만 태운다. 그러기에 그리운 사람은 더욱 모두 숙세의 인연이 있다고 믿는다.

올해 떠난 것은 아니지만 기일을 맞아 떠오르는 분들도 많다. 먼저 녹색평론의 김종철 선생. 살아 생전 두 번밖에 뵙지 않았지만 생태적 삶과 관련해서 늘 떠오르는 분이시다. 본디 문학평론가이시기에 생태와 문학적 삶에 대해 이런 저런 책에다 말씀을 많이 남기셨다. 마침 요즘 루쉰의 자료를 뒤적거릴 일이 있어 루쉰에 대한 선생의 언급도 기억난다.

루쉰의 글 가운데 우수한 창작(소설)은 몇 편 안 된다. 잡감문(잡문)이 아니었다면 루쉰이 중국의 혼돈과 어둠에 맞서서 가열하게 싸우는 게 불가능 했을 터이다. 이를 두고 김종철 선생은 ‘시인은 시만 쓰고, 소설가는 소설만 써야 한다는 생각은 착각 중에서도 가장 어리석은 착각이다. 좋은 작가는 잡문을 (잘) 쓰는 사람이다.’고 하셨다.

다음으론 소설가 조해일 선생. 김종철 선생은 그래도 두 번씩이나(?) 뵈었지만 조해일 선생은 한 번도 뵙지 못하고, 글만 주고받았다. 그러나 조해일 선생 역시 내 글쓰기의 스승이시다(지금은 글을 안 쓰기에 ‘전직 소설가’라 자칭하셔서 그 엄격함에 감동!)

조해일 선생은 1970년대에 중편소설 ‘아메리카’를 통해 미국의 실체를 일찌감치 ‘독특하게’ 파악해내셨다. 또 곧잘 대중소설 내지 통속 소설로 치부되는 장편 ‘겨울여자’는 당시 사회의 어두운 면을 그린 풍자 소설로 여겨진다. 선생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셨다. 조해일 선생 4주기 추모식에 가지 못하고 책만 받고 말았으니 선생께 죄송하기만…

요즘 또 숙세의 인연을 느끼는 분은 내 고향 진도 출신의 황청원 시인. 이분은 내가 대학 초년생일 무렵 이미 승려시인으로 문단에 나오셨다. 일찌감치 함자를 알고 있었지만, 4,50 년 넘게 서로 만나지 못했다. 굳이 만나려고 했으면 그가 10년 넘게 진행하던 라디오 방송 시간이 되길(끝나길?) 기다렸으면 된다. 그때 마침 나도 그 방송국의 다른 ‘프로’에 고정 출연하고 있었으므로… 하지만 나는 워낙 숫기가 없어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런 선배를 최근에 만났다. 처음 만났지만 전생 때부터 알고 지낸 것처럼 익숙하고 편안했다.

수필가 피천득 선생은 당신의 대표작 ‘인연’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라고 썼다. 나는 김종철 선생은 두 번 만났고, 조해일 선생은 한 번도 못 만났고, 황청원 시인은 한 번 만났다. 가수 박인희의 노랫말처럼 내가 그리워하는 분들은 모두 ‘~가슴엔 하나 가득 그리움 이네~’의 대상이다.

사진=박상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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