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5000 상법 개정뿐 만 아니라…

[뉴스클레임]
최근 한국 증시의 '중복 상장 비율이 18.43%'에 달한다는 소식은 우리 자본시장의 고질적인 문제를 다시 한번 수면 위로 끌어올렸습니다. 이는 일본의 4%, 미국의 0.3%와 비교하면 충격적인 수치로, 한국 증시가 왜 만년 저평가에 시달리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지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복 상장이란 무엇이며, 왜 문제인가?
중복 상장은 이미 상장된 기업이 자회사나 특정 사업부를 분할하여 재상장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자금 조달의 용이성, 사업 부문별 특화 등을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이는 기존 주주들에게는'알맹이 빼가기'로 인식될 수밖에 없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주주 가치 훼손입니다. 모회사의 주식을 보유한 투자자들은 자회사의 성장에 대한 기대감으로 투자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회사가 분할되어 별도로 상장되면, 모회사의 가치는 희석되고, 투자자들은 동일한 사업 부문에 대해 이중으로 투자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이는 마치 하나의 사과를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 각각 다른 가격에 파는 것과 같습니다. 투자자들은 온전한 사과를 기대했는데, 쪼개진 사과 조각을 받게 되는 셈이지요.
■해외 주요국과 비교해보면 더욱 선명해지는 문제점
일본과 미국의 압도적으로 낮은 중복 상장 비율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이들 국가에서는 기업의 분할 상장을 매우 엄격하게 심사하며, 기존 주주들의 동의를 얻는 절차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이는 곧 주주 이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자본시장의 원칙을 지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반면 한국은 기업의 편의와 자금 조달에 무게를 두는 경향이 강해, 상대적으로 주주들의 목소리가 반영되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결국 한국 증시의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를 심화시키는 주범으로 작용합니다. 투자자들은 언제든 자신의 지분 가치가 희석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한국 기업에 대한 투자를 주저하게 되고, 이는 결국 낮은 기업 가치 평가로 이어집니다.
■중복 상장, 이제는 규제와 견제의 대상이 되어야 할 때.
한국 자본시장은 더 이상 기업의 편의만을 좇아서는 안 됩니다. 중복 상장이 기업의 성장에 필수적인 요소라는 주장은 더 이상 설득력이 없습니다. 오히려 소액 주주들의 희생을 발판 삼아 기업 가치를 인위적으로 부풀리려는 시도로 비춰질 뿐입니다.
이제는 중복 상장에 대한 보다 강력한 규제와 견제 장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분할 상장 시 기존 주주들의 동의를 의무화하고, 모회사 주주들에게 신주인수권을 부여하는 등 주주 보호 장치를 강화해야 합니다. 또한, 기업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높여 대주주의 이익만을 위한 의사 결정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감시를 강화해야 합니다.
한국 증시가 진정한 선진 시장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투자자 친화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입니다. 중복 상장이라는 병목 현상을 해결하고, 모든 참여자가 상생할 수 있는 건강한 자본시장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과감한 변화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한국 증시는 '만년 저평가'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