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와 약자의 대립을 유도하는 야수들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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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클레임]

류근이란 자가 강선우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향해 '상습 진보 씹선비'들 이라고 말하면서, 강선우를 옹호하는 보좌진의 이야기를 사회관계망서비스 (SNS)에 올렸다. 시인이라는 사람이 '극우'의 언어와 조금도 다르지 않는 발언을 하는 것은 뒤로하고, 이재명을 지명한 민주당 국회의원 하나 지키기 위해 어떤 사람들을 대립 시키고 있는지를 돌아볼 줄 모르는 파렴치함에 놀라울 따름이다. 약자와 약자의 대립을 유도하는 야수성을 시를 쓴다는 사람이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것을 보는 일은 정말 참담한 일이다. 그리고 그런 야수성은 윤석열 정권 때와 판박이 모습이 아닌가?

아무리 생각해도 민주당을 지지하는 문학계와 지식계는 비정상적인 야만이 지배하는 거 같다.

윤석열 정부 때 화물연대의 파업을 두고 연일 조선일보는 파업을 주도하는 민주노총이 파업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을 응징하겠다는 협박을 하고, 폭력도 난무한다는 기사를 올렸다. 

조선일보가 그런 기사를 연일 내보낸 것은, 화물연대가 파업을 하게 된 본질적인 문제를 흐리고 약자와 약자의 대립을 조장하여 비판의 대상을 제대로 찾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조선일보와 윤석열 정권이 벌렸던 '약자와 약자의 대립을 유도해 문제의 본질을 흐르는' 야수같은 짓은 지금껏 해온 일이라 놀랍지도 않았다.

허나 여기에 동조해 파업은 찬성하지만 이런 폭력은 정당화 될 수 없다는 글을 올리는 페친들이 있어 조금 놀랬다. 아직도 그런 찌라시 조선일보의 선동이 먹히는 것은 노동 혐오가 그만큼 뿌리 깊게 박혀 있다는 반증이기 때문이었다.

그럼 이해하기 쉽게 예를 들어 보자. 한 공장이 환경오염의 주범이라고 시민들이 폐쇄를 주당한다면 폐쇄를 주장하는 사람과, 그 공장이 폐쇄됨으로 인해 실직하게 되는 노동자는 서로 대립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이 사회다. 그러나 그 둘의 입장 대립이 과연 필연적인가? 기업이 오염 방지 시설을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국가가 지시하고 지원한다면 이러한 대립은 있을 수 없다. 더구나 환경 시설을 개발하고 생산해내는 공장을 짓는다든지 친환경적인 산업을 그 지역에 새로이 일으킨다면 실업을 줄이고 경제를 활성화하는 부가적인 효과도 가져올 것이다.

이것이 정부의 몫이다. 

그러므로 이 문제는 비판의 화살이 정부를 향해야 하는 것인데 시민과 노동자 간의 대립으로 유도하는 것은 누구인가? 바로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정부와 이윤 극대화에 생태계와 인간을 갈아 넣는 자본가들이다. 즉 정치, 경제 권력은 항상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해 약자와 약자를 싸우게 만든다. 

화물연대 파업도 저 경우도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윤석열과 조선일보가 보이는 야수성은 비판의 대상을 제대로 찾지 못하게 해서 자신에게 향하는 비판을 돌리기 위한 것이다. 또한 이것은 지금껏 남한 사회에서 자본과 결탁한 권력이 행해온 전통적인 '분할통치' 방식이다.

그럼 지금 민주당과 민주당 지지자들이 '강선우'를 지키기 위해 여론전을 펼치면서 방패막이를 쓰고 있는 '강선우를 지지하는 보좌진'이라는 프레임이 얼마나 악랄한 것인지 보이지 않나? 

이젠 좀 꿰뚫어 볼 때도 되지 않았나…… 2025년 한국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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