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선우 사태에 보인 류*. 김*대 시인의 행태를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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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는 글쓰기는 대체로 어둡고 음습하고 또 이런 세상을 원망하는 부끄러운 자신을 정직하게 내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문학은 그런 고통조차도 밝은 웃음이어야 하며, '눈물' 조차도 반짝이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목울대를 아프게 누르는 눈물이 어떻게 반짝일 수 있는지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누군가 이런 어둡고  축축한 것은 불행을 전염시킨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불행을 전염시키는 것이 아닌 사람들이 가진 깊이 즉 슬픔을 이해하는 통로를 만드는 길이다. 이것은 문학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삶의 시간 중에 빛나는 순간들이 얼마나 될까? 한국 소설과 에세이에서는  '행복'  또는 '빛나는 인생' 즉 힐링을 말한다. 그러나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순간들, 그래서 우리가 견뎌야만 하는 시간들은 저 어둡고 음습한 그 밋밋한 시간 속에 인간의 진가가 담겨 있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한국 시와 소설을 읽는게 힘들었다.  '사기친다는' 생각 때문에. 그 옛날 다락방에서부터 글을 쓰려고 했을 때, 많이 읽었다. 무식해서, 지독하게, 고통스러울 만큼.

그러나 이제 나는 잘 모르겠다. 문학이 사람들과 고락을 함께 나누는 그래서 고통 속에서 희망을 찾고, 그 희망을 노래 부른다는 것은 '사기'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꿈꿀 줄 모르는 아이들이 늘어가는 세상에서, 우리는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그냥, 세상이 그러려니 해야 하나. 나는 아니 우리는 참 어려운 시간을 건너왔는데, 아이들은 왜 더 힘들게 살아야 하지. 물신과 자본의 탑 꼭대기에서 우리 아이들이 얻은 것은 공허와 아득한 절망뿐이기 때문이다.

이 공허와 아득한 절망이 가득한 세상에서 이 시대, 이 땅의 문학은 이런 현실 문제를 몸으로 고뇌하지 않고 자신들 문예를 끊임없이 특별취급해달라는 허위의식에만 빠져있다. 돈이 되지 않는 시인과 시를 쓰레기 취급하는 자본주의 나쁜점을 그들은 극복하려기 보다는 그대로 답습했다. 

지금 문학인들이 외치는 예술의 '낭만'은 과연 뭘까?

정말이지 이 세상에는 문학이나 예술에서 완전히 소외된 힘든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그 목소리를 세상과 소통시킬 상상력을 발동시켜 보는 것. 예술 활동의 모든 시간이 모두 이것으로 환원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들 없이는 감상적 조작에 불과한 유희 즉 지금 고상한 문학가들이나 문예 비평가들이 외치는 기만의 '낭만'이 될 뿐이다. 

삶과 정치가 실현되지 않는 한 문학은 실험될 수 없다.  이것을 망각할 때 문학은 필연적으로 에밀 시오랑이 말한 기만의 상황에 빠진다. '미적 언어의 기만. 평범한 슬픔을 기이하게 표현한다. 사소한 불행을 미화한다. 공허를 치장한다. 한숨 혹은 빈정거림을 꾸며서 언어를 통해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우스개로 만든다.

문학가들의 이런 '기만'에 대해 내가 왈가불가할 생각은 없다. 문제는 이중적 태도에 있다. 물질적으로는 시민을 자처하면서 정신적으로는 어떤 우월감을 주장하는 데 있다. 여기서 우월감이란 문학창작은 적어도 일반시민의 노동과는 구별되는 근본적인 무엇이라는 사고에서 나온 것이라 하겠는데, 사실 이런 우월감에서 나온 예술지상주의의 전제가 없다면, 막대한 공적 자금이 생활고에 시달리는 하층민이 아니라 문학가들에게 투여할 까닭도 없는 것이다. 이런 낯 뜨거운 이중성을 합리화 시키는 방편으로  '낭만'이라는 기만적인 가면을 쓴다는 것이다. 이런  문학가들의 모순된 자기규정이야말로 가장 비문학적인 얼굴임을 알아야 한다.

문재인 정권에서 내가 가장 절망한 것은 문학인들의 이기심(무지)과 야만이었다. 이재명 정부가 들어서자 이들은 문재인 정권 때와 똑같이 오로지 '내편 민주당 인사들은 무조건 옳다'를 외치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 정신에 꼭 찍어야 할 현실의 악센트를 상실했다. 

문재인 정권이나 이재명 정권의 안녕을 위해 담소를 나누듯이 글을 쓰는 것이 문학이 아니라 그 어떤 정권에서도 자본가가 만든 착취의 단두대 앞에 목을 내놓고 살아야 하는 이 어처구니 없는 부조리 앞에서 무력한 개인(문학에서 완전히 소외된 존재들)에게서 터져 나오는 외침이 문학의 분출이다. 

그럼 강선우 여가부  장관 내정자에게 쏟아진 아우성, 즉 권력의 부조리 앞에서 터져 나오는 목소리를 경청하고, 그 목소리가 사회의 편견과 권력의 힘에 사라지지 않게, 이 분출을 자신들 시, 소설, 인터넷 글쓰기에 현실의 악센트로 찍어줘야 한다. 

그런데 이 외침은 듣지 못하고 귀와 눈은 위로만(민주당 권력) 향하고 있는 것은 문학인들이 현실을, 삶을 떠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아름다움을 아름답게 잡아 두기 위해, 보는 것을 모두 돌로 굳힌다는 메두사의 대가리'가 되고 싶은 관념주의 예술을 경계해야 한다며 생을 마감한 어떤 시인의 말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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