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클레임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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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손흥민은 더 이상 토트넘 홋스퍼의 7번이 아니다. 10년 동안 익숙했던 그의 이름과 등번호는 런던 북부의 하얀 유니폼을 벗고, 한 권의 책처럼 아름답게 덮였다. 아시아 출신이라는 꼬리표는 어느덧 자랑거리가 됐고, ‘레전드’라는 두 글자 앞에 단 한 명의 이견도 없게 만든 축구 인생이었다.  

보통의 우상들은 신화 속 인물처럼 신비롭다. 어쩐지 우리와 다른 세계의 사람 같고, 닿기 어려운 거리의 사람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손흥민은 달랐다. 그의 축구는 철저히 ‘현실’ 위에 있었고, 성실함과 인간미라는 가장 보통의 가치로 가장 위대한 경지에 올랐다.  

프리미어리그 공식기록만 봐도 그렇다. 출전 333경기, 127골, 71도움. 아시아 선수로는 단연 압도적인 수치이고, 프리미어리그 전체를 놓고 봐도 ‘위대한 공격수'로 분류되는 데 전혀 손색이 없다.  

그가 진짜였던 이유는, 기록을 넘어 경기의 흐름을 바꿨기 때문이다. 반 템포 빠른 침투, 공간을 만드는 움직임, 특유의 양발 슈팅, 그리고 누구보다 명확한 골 냄새. 이는 돋보이는 재능이라기보단 반복된 연습과 집중의 산물이었다.  

모든 선수는 나이를 먹는다. 하지만 손흥민은 달랐다. 그가 리그에 데뷔했던 2015년부터 작별을 선언한 2025년까지, 프리미어리그에서 그보다 더 많은 경기를 뛴 선수는 없었다. 꾸준함은 곧 신뢰였고, 신뢰는 리더십이 되었다.  

2025년 5월, 유로파리그 결승전 무대에서 주장을 맡은 그는 말할 수 있었다. “나는 이 클럽의 레전드다.”  

그 말은 자의적인 수사가 아니었다. 17년 만의 메이저 트로피를 들어올린 캡틴이었고, 마지막까지 책임을 다한 인물이자, 팀의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준 선수였다. 그가 남긴 유산은 당장 기록보다도 인상으로 남을 것이다.  

번리전에서 70미터 단독 질주로 수비수 6명을 무너뜨린 그 장면. 골든 부츠를 공동 수상했을 때의 미소. 패배해도 고개 숙이지 않았던 자세. 그리고 웸블리에서 마지막 인사를 하며 들었던 트로피의 높이까지.

에디 하우 뉴캐슬 감독은 그를 가리켜 “진짜 프로였다. 어렵고 힘든 일이란, 오래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어쩌면 그것이 손흥민을 가장 잘 설명하는 문장일지도 모른다. 그는 오래했고, 또 부드럽게 위대했다.  

당분간 토트넘의 7번은 비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누군가는 결국 그 자리를 채울 것이다. 문제는 유니폼이 아니라, 채울 수 없는 공백이다. 손흥민이 만들어 온 그 모든 시간이 만든 정서적 유산은 수치로도, 영상으로도 완전히 담을 수 없다.  

‘레전드’라는 단어는 종종 가볍게 쓰이곤 한다. 그런데 손흥민에게는, 그 말이 결코 부족하지 않다. 그가 EPL을 떠났다고 해서, 그의 시간이 끝난 건 아니다. 앞으로도 수많은 유소년 선수들이, 수많은 축구 팬들이 “손흥민처럼”을 말할 테니까.  

그의 퇴장은, 결국 또 다른 시작이다. 그러니, 떠나보낼 준비를 했던 우리가 이제 마음껏 말할 수 있다.  

“손흥민은 우리의 레전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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