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 대책 비판과 노동계·전문가의 대안 제시
진정한 변화는 노동자 참여와 책임 강화에서 출발

[뉴스클레임]
최근 잇따른 공공기관 산재 사망 사고는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안전관리 강화 대책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지난 26일 참여연대에서 열린 공공운수노조 기자회견에서 노동계와 전문가들은 기재부 대책이 기존 정책을 부분 보완하는 데 그치고, 산재 사망 원인의 근본적 해결책을 담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무엇보다 안전 정책 수립 과정에 노동자 목소리가 배제된 점과 경영평가 중심의 ‘정량적 점수’에 의존하는 현실이 반복되는 죽음을 막지 못하는 주된 문제로 지적됐다.
■ 기재부 대책, 평가·규제 강화에만 치중
기재부는 지난 22일 중대재해에 대해 기관장의 책임을 강화하고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안전관리 비중을 확대하며 안전관리등급제를 안전성 중심으로 개편하겠다고 발표했다. 또한 안전경영 법제화, 안전 관련 투자 우대와 인센티브 제공을 약속했다.
그러나 전문가와 노동계는 기재부의 이 같은 대책이 ‘평가와 규제’에 집중해 실질적인 현장 안전 강화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점을 우려한다. 한인임 정책연구소 이음 이사장은 “안전관리 활동에 대한 지원이 빠진 안전관리등급제는 현장 안전 강화에는 역부족이며 오히려 안전전담 인력을 현장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고 있다”고 진단했다. 평가 지표가 경영평가와 연계되면서 현장 직원들은 서류 업무에 치중하게 됐고, 체계적인 사고 예방과 실질적 안전 강화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 노동자 참여 배제, ‘보여주기식’ 안전 거버넌스 문제
노동조합은 대책 수립부터 철저히 노동자 의견이 배제된 점에 심각한 문제를 제기한다. 위험을 매일 감당하는 현장 노동자들은 산재 위험 요인을 가장 잘 알고 있지만 이들의 목소리는 대책 논의에 반영되지 않는다.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은 “중대재해 사고조사 과정에서 피해자와 노동조합의 참여가 전혀 보장되지 않고 회의가 형식적이며, 2차 하청업체가 실질적 협의체에서 배제되는 등 소통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결국 안전협의체가 실질적 기능을 못 하는 ‘보여주기식’ 기구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안전관리 거버넌스 구축과 강화, 그리고 노동자·시민 참여를 기반으로 한 열린 이행 점검과 보고 시스템이 절실하다. 한 전문가는 “공공기관 별로 마련된 안전경영위원회가 명목에 그치지 않도록, 실질적 책임과 권한을 부여하는 제도적 혁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원청의 직접 책임 강화와 고용형태 단일화 요구
안전사고의 상당수가 간접고용 노동자에게 집중되는데도 현행 기재부 지침은 원청의 간접적 책임만 규정하는 한계가 있다. 이는 실효성이 떨어지는 안전관리 체계의 핵심 문제다. 노동계는 원청 기관이 고용형태에 관계없이 모든 사업장 노동자 안전에 직접 책임을 져야 한다고 촉구한다.
근본적으로는 공공기관의 상시지속업무를 직접고용으로 전환하고, 안전관리 영역에 간접고용 노동자를 포함하는 운영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 이를 통해 안전관리 인원 배치, 안전관리비 집행, 산재사고 집계 체계 등이 한층 강화될 것이다.
■ 안전활동수준평가 절대평가와 지원 강화 필요
현행 안전관리등급제는 상대평가 방식을 채택해 기관 간 줄 세우기 양상을 보이고, 평가자의 주관성 개입 문제와 국민 알 권리 차원에서도 한계가 뚜렷하다. 안전정책 전문가들은 현장 활동 중심의 안전활동수준평가 질을 대폭 제고하며 절대평가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평가 미준수 기관에 대해서는 원인을 분석해 지원을 제공하고, 고의적 미준수 시에는 경영평가 반영 등 강제수단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자회사, 출자회사, 외주, 하청 등 모두의 안전 활동을 통합 관리·평가하는 시스템 구축이 필수적이다. 행정안전부가 이미 2019년도 지방공기업 경영평가에 외주업체의 안전사고 예방 노력과 재해율을 포함하도록 한 사례가 이를 뒷받침한다.
■ 안전경영책임보고서 현실화와 안전예산의 투명성 확보
현재 경영평가에 큰 영향을 미치는 안전경영책임보고서는 산재사고 사망자 수만 반영하고 부상자 및 질병 관련 데이터는 누락하는 한계가 있다. 특히 하청 노동자의 안전은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 일부 기관은 안전예산의 2/3를 청사 시설관리 용역비로 투입하는 등 안전예산의 부적절한 집행도 문제다.
따라서 안전예산 구체 기준 마련과 기관별 위험성 평가 표준화가 필요하다. 안전인력 기준 정립과 함께 도급 사업장의 위험성 평가 참여 확대도 필수 과제다.
“죽음 없는 일터를 위해서는 노동자와 대화하는 것이 첫걸음”이라는 공공운수노조 강성규 본부장의 호소는 기획재정부가 ‘평가 중심’에서 벗어나 노동자 참여와 실질 지원 강화에 중심을 둔 안전관리 혁신을 이뤄야 한다는 절박한 요구를 대변한다. 산재 사망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공공기관 안전관리 체계를 근본부터 재설계하고, 현장 노동자들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에 행정력과 예산을 집중해야 한다.
